좋은 말씀/-묵상

예수님 중심의 신앙(마 19:13-30)

새벽지기1 2023. 3. 13. 07:01

(모세 공동체 감사 예배, 2023,3,12)

 

예수님을 믿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부패한 우리가 거룩한 주님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예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사실이 없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예배하는 여러분에 주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모세 공동체 감사예배로 함께합니다. 우리 교회의 한 축을 감당하고 있는 모세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우리 교회는 빨리 성장하고자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직 말씀이 주는 개혁을 통하여 부흥의 은혜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주의 성령께서 부흥의 은혜를 주시기를 사모하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힘들 수 있는 여러 요소가 있습니다. 봉사와 재정에 여러 가지 쏠림현상이 있습니다. 마치 하는 사람만 계속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지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흔들림 없이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본질, 종교개혁 정신에 따른 교회를 세우려고 하는 성도들이 있기에 교회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모세 공동체의 헌신은 참으로 감사합니다. 모세 공동체의 신앙이 견고할 때 교회는 주님을 맞이하는 교회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모세 공동체는 물론이고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입니다. 어제 묵상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에게 의미있는 말씀이기에 어제 올리지 않았습니다. 본문의 주제는 천국과 영생입니다. 본문은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3-15, 16-22, 23-27, 28-30절입니다.

 

13-15절은 천국이 어린아이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데려오자 제자들이 꾸짖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힘드심을 보고 아이에게까지 시간을 낼 수 없는데 눈치없이 데려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꾸짖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태도를 막으시고 어린 아이들을 내게로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그런 후에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천국이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태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어린아이라는 의미는 사회적 약자를 의미하고, 말씀에 순수하게 순종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순수하게 부모의 손에 의하여 순종하여 따라 온 아이들과 같이 말씀에 순종하는 이에게 천국을 선물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아이를 천시하였던 당시의 문화를 생각한다면 대단히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16-22절은 또 한번의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에게 부자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마태의 기록을 생각하면 잘 알려진 부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온 이유는 영생을 얻고자 함이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고자 함입니다. 어린아이와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청년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어찌 내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부자 청년은 선한 일을 통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선한 일은 하나님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선행을 통하여 영생을 얻을 수 없음을 말씀합니다. 그러시면서 영생을 얻으려면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자 청년은 어느 계명이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십계명의 5계명 부처 10계명을 말씀합니다. 그러자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다 지켰다고 말합니다.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청년에게 가지고 있는 모든 재물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합니다. 그러자 청년이 재물이 많음으로 근심하여 떠납니다.

 

부자 청년의 문제는 십계명의 1,2계명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물질이 하나님의 자리에 놓여 있었습니다. 영생보다 물질이 더 중요하였습니다. 물질 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결국 선행을 통하여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구원의 가르침을 줍니다. 이때 제자들은 충격을 받습니다. 이것이 23-27절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부자가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은데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은 참으로 기존의 생각을 뒤엎는 일이었습니다.

 

이 말에 제자들은 당혹감에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고 질문합니다(25). 아주 정직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하여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의 답은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지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합니다. 가난하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오직 은혜로 됩니다. 그래서 부자인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이를 증거로 기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제자들이 얻을 것은 무엇이냐는 베드로의 질문에 영생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하였습니다.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새롭게 되는 날을 알려줍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되는 날입니다. 그날에 제자들은 하늘 보좌에 앉으신 주님과 함께 열두 보좌에 앉아 심판자로 있을 것임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사도요한이 본 계시록의 환상에서 다시한번 확인 됩니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4:2,4)”

 

제자들이 누릴 영광입니다. 그러면서 일반적인 가르침을 주십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29)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중심으로 사는 이들에게 약속된 선물입니다. 이 땅에서도 제자들 즉 주의 종들은 여러 배의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부자 청년이 받지 못하였던 영생을 받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된다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은 지금 믿음이 좋다고 교만하지 말고, 믿음이 연약하다고 낙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자녀를 끝까지 인도하시고 영광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믿음의 진보를 위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믿음의 경주를 감당해야 합니다.

 

천국에서 시작하여 영생의 모습으로 말씀이 끝났습니다. 본문은 여러 이야기를 통하여 천국과 영생의 문제를 말씀하였습니다. 영생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받습니다. 어떠한 행위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어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다고 고백할 때 영생이 주어집니다.

 

영생을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에 이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심판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에는 구원과 심판이 이뤄집니다. 그때 심판 주는 예수님과 열두 제자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어린아이와 부자 청년 그리고 제자를 비유하면서 어느 자리에 설 것인지 말씀합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보이는 것을 위하여 살 것인지, 예수님 중심으로 살 것인지 결단해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제자는 예수님께로 다가왔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에게서 떠나갔습니다. 그 시작은 별거 아니지만 그 결과는 심판과 영생입니다.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영생이 약속되어져 있습니다. 물론 고난이 동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떠난 인생에게는 잠시의 즐거움이 있지만 그 끝은 심판입니다. 부자청년은 예수님을 떠나서 많은 물질로 신나게 살았을 것입니다. 효도도 하고, 남을 돕기도 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오직 돈에 있었습니다. 돈이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돈이 있어야 교회 봉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답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돈이 아니라 예수님이 중심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없는 봉사는 자기 욕망을 채우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문제가 터지면 부자청년 처럼 예수님을 떠나게 됩니다. 자신을 위하여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지 예수님 중심의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 중심의 삶은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고 순종하고 따라갑니다.

 

오늘 모세 공동체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은 예수님이 중심입니까? 오늘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은 어떠하십니까? 삶의 중심이 예수님입니까? 예수님 중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떠나가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재물의 유무, 권력의 유무로 신앙의 길을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중심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모세 공동체 여러분이 빛과소금 교회를 건강하게 세울 수도 있고, 무너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 맞이하는 교회로 세울 수 있고 한순간에 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중심으로 신앙하느냐 사람과 물질 중심으로 신앙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다시 한번 부탁하고 소망하는 것은 예수님 중심의 신앙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떠나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님께 가까이 하는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주시는 복을 여러 배 받는 모세 공동체와 성도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