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막 2:1)
나병환자 치유사건 이후로 외딴 곳에 머물러 계시던 예수님은 다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몰려들던 사람들이 모두 물러간 것인지, 아니면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한 종교 지도자들이 시비를 걸지 않는다는 확신이 섰는지, 또는 예수님의 고유한 영적인 시각으로 어떤 때를 감지하신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예수님이 사람들의 마을로 들어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게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듯이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하기는 했지만 다시 사람들 곁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있어야 할 자리는 자신의 영성을 정화하는 광야, 사막 같은 은둔처가 아니라 민중들이 시끌벅적하게 살아가고 있는 저자거리였습니다.
저는 앞에서 몇 번에 걸쳐 민중을 조금 비판적인 시각으로 설명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결코 비판을 위한 비판은 아닙니다. 비록 기대할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런 사람들을 통한, 또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뭔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지성인들의 위선과 착각을 민중들의 어리석음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죄인들이라고 여겼던 바로 그런 사람들을 예수님이 친구로 여기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어찌 겉으로 드러난 교양의 차이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민중들의 삶에서 읽을 수밖에 없는 광적인 욕망을 단지 생명의 에너지만으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은 민중 스스로가 아니라 생명의 영인 성령으로부터 주어진다는 사실이 곧 그리스도교 신앙의 토대라는 말씀입니다.
곱든지 밉든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현실적인 삶은 하나님의 구원 활동에서 그 무엇과도 대치할 수 없는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남의 등만 치려는 사람들, 아무 것도 없으면서 잘난 척 하는 사람들, 사기꾼과 조폭들, 알코올과 마약 중독자, 우울증환자, 그런 사람들이 함께 꾸려가고 있는 그런 세상으로 예수님은 들어가셨습니다. 그런 세상이 바로 복음이 자리해야 할 가장 중요한 현실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이 한적한 곳에서 다시 가버나움으로 들어오셨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두 가지 신앙적 실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광야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입니다. 광야는 수직적인 경험이고 마을은 수평적인 경험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수직적인 차원과 수평적인 차원에 대해서 많이 들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들었다는 것과 그것을 자기 삶의 내용으로 체화(incarnation)한다는 것은 다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보에 대해서 대충 들어서 아는 것 같지만 실제 삶의 경험으로, 그런 능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건 죽은 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스도교 신앙의 수직적인 차원은 주변의 사람들이 완전히 배제된 단독자 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직 홀로 생명 사건과 조우하는 것입니다. 절대고독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성서의 인물들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수평적인 차원은 자신과 이웃의 일치 경험입니다. 복음서는 하나님 나라의 가장 전형적인 표상을 “밥상 공동체”로 그립니다. 더불어 먹고 마시는 경험은 바로 일치입니다. 마틴 부버가 말하는 “나와 너”의 관계, 또는 분별심을 버리라는 불교의 가르침도 이와 비슷하겠지요.
제가 보기에 수직적인 차원과 수평적인 차원은 근본적으로 신비입니다. 자기집중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수직도, 수평도 인식할 수 없고,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한적한 곳에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의 중심입니다.
주님, 이 세계와 더불어 하나님과 하나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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