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5-17)
회요일에 묵상하였던 말씀입니다.
본문은 사람의 창조와 사람에게 부여된 선물과 의무와 명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15-17절까지는 매우 의미있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아담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15절의 말씀처럼 다스리며 지키는 모든 권한을 주었습니다. 즉 인간에게 막강한 권력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이 권력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은 권력이 아닙니다. 이 권력이 누구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알려주는 장치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모든 것을 다 주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을 둠으로 모든 권력이 누구로부터 왔음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독재자라는 이름을 참으로 싫어합니다. 독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 사용하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재는 언제나 썩은 냄새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사회는 반드시 법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법위에 권력이 있으면 독재가 됩니다. 백성위에 권력이 있으면 독재가 됩니다. 또한 백성 위에 법이 있으면 그 역시 법독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백성위에 아무것도 없으면 무질서가 됩니다. 그러기에 이 세가지가 잘 조회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나마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모습입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잘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견재 수단입니다. 권력은 법과 백성앞에 있을때 비로소 건강해 집니다. 동일하게 법과 백성도 견재 장치가 있을때 자신의 위치를 알고 교만하거나 어리석지 않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이러한 견재수단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는 인간에 부여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징표입니다. 자신을 바로 알때 비로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너지면 혼란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인가? 바로 아는 것이 참된 신앙인 것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자신이 누구인가 아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더구나 교회에서 목사가 누구인지아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목사가 자신의 위치를 바로 알지 못하고 스스로 견재 수단을 파기하면 그때부터 독재자 시작되는 것입니다. 독재는 그야말로 저주의 화신이 되어 다가오는 것입니다.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초법적 신앙을 강요합니다. 그래서 이상한 행동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단들의 모습가운데 잘 나타나는 것이지만 정상적인 교회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종종 보여 집니다. 어쩌면 한국 교회의 아픔이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를 거부하면 정녕 죽으리라는 경고의 말씀은 살아서 다가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존재는 하나님의 참다운 사랑의 선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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