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12일
기독교백화점에서 성도들에게 줄 선물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는 찬양테이프를 백화점 주인으로부터 선별 받아 샀습니다. 책방 주인은 ‘친구가 신도시에서 목회를 하는데 이 찬양을 매일 듣고 기도해서 큰 땅을 주님으로부터 받고 교회당을 건축했다’는 간증까지 들려주셨습니다. 그의 간증에 반 설득 반 믿음을 가지고 저는 찬양을 들었습니다. ‘주님이 주신 땅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때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 땅을 취하리니 취하리니(아멘)’
이 찬양은 정말 ‘하나님께서 땅을 주실 것’이라는 흥분과 ‘얼마후면 넓은 주차장에 휴식공간까지 마련하는 교회당이 세워지겠지’라는 확신과 더 나가서 그동안 감추어왔던 ‘부동산 목회가 최고’라는 나 스스로 믿는 잠복신학(?)에까지 나가게 만들었습니다. 겨울이 녹아가면서 주변에서는 교회당을 건축하는 망치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망치소리는 목회자의 마음을 이렇게 때리는 것 같습니다. ‘부동산 목회가 최고다, 땅! 부동산 목회가 최고다, 땅 땅 땅!’ 요즈음 목회자들에게는 옛 어른들과 달리 4방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책방, 골방, 심방, 그리고 복덕방.
사람들은 큰 것을 좋아하고 새 것을 당연히 좋아합니다. 구멍가게보다 대형 할인마트를 선호하고 옛날 목욕탕보다 에덴의 문화혜택과 로마말기의 풍요에 접근할 수 있는 찜질방을 더 좋아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그런 문화적인 이유로 크고 잘 지어진 교회당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교회도 건물만 지으면, 자리만 잘 잡으면 목회를 성공할 수 있다는 ‘부동산 목회론’이 등장한 것 같습니다. 혹 자리를 잘 잡지 못해 전전긍긍 버텨야 하는 목회자들은 ‘나도 저 자리에 들어가면 큰 목회 할 수 있을텐데’ 하며 스스로 위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목회자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부동산 목회가 최고라는 속마음과 작은 교회가 아름답다고 설교하는 겉 입술의 이중성 때문에 겪는 딜레마일 것입니다. 물론 모든 것을 초월해서 소신 목회를 하시는 분들에게는 별 갈등거리가 아닐지 모르지만 개척을 준비하거나 개척에 실패해서 이리저리 자리를 찾아 방황하는 목회자들에게는 부동산 목회는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관심이 지나쳐 근심이 되고 근심에 마음을 빼앗겨 영적 침체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실적(fact) 상황을 어떡하란 말입니까?
부동산 목회는 요즈음처럼 개척 성공이 어려운 시절에 분명 교회가 정착하는데 한 몫 한다고 봅니다. 그만큼 망할 확률이 적다는 것이죠. 또한 자리를 잘 잡으므로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에게도 불편함이나 게으름에 대한 핑계거리가 되지 않는 이점도 있습니다. 목회에 적절치 못한 자리와 건물은 사역의 한계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부동산 자체에 목적을 둔다는 데 있습니다. 부동산에 몰두하다보면 하나님 없이 스스로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불신앙에 빠질 수 있습니다. 또한 한 영혼을 사랑하기보다는 빠른 길과 많은 숫자라는 우상에, 그리고 지름길을 찾다가 그만 좁은 길이 아닌 넓은 길이라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나 잘났다’라는 자기 야심이라는 올무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로또 열풍의 배후에 돈이라는 우상이 있는 것처럼 부동산 목회의 배후에는 한 사람의 영혼 사랑이 아닌 숫자 사랑, 스피드 사랑이라는 육적 감각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동산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정직하게 자주 물어야 합니다. 이것이 목회의 생존전략인지 아니면 목회의 생계전략인지, 이것이 영혼구원을 위한 열심인지 아니면 자기 영광을 위한 특심인지 말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은 건너뛰고 땀도 없이 얼른 채우려하고 실패가 보이면 재빨리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픈 상처를 도려내시더라도 무쇠같은 감각을 두들겨 패서라도(땅땅땅) 우리를 정금으로 만드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 하나님께서는 오랜 시간과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우리에게 완전한 승리와 진정한 성공을 마련해 주시고자 합니다. 우리는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며 또한 우리에게 맡겨진 달란트대로만 충성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결혼의 평생 목표가 ‘내 집 마련’이 아닌 것처럼 교회도 예배당 짓는 게 지상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주보 표지에 멋진 예배당 조감도를 싣고 성도들에게는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기도하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건물의 소유 여부가 아니라 교회가 바르게 서서 교인들 각자 성전이 되어 세상 속에서 성도답게 살아가라고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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