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9월 17일
예배당 건물 하나 짓는 데만 7백년 가까이 걸렸다는 독일 쾰른대성당. 쾰른 중앙역을 유레일로 통과했거나 그곳에 가 본 사람이라면 우선 그 엄청난 규모에 압도되고, 내부의 화려한 장식에 벌어진 입을 다물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직도 한쪽에서는 신축과 보수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교회가,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전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의 사진 뒷 배경으로 활용되거나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고적 취급을 받는 것으로 그치고 있음은 이방 순례객의 마음을 여간 씁쓸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유적 취급받는 교회
서구교회가 이미 오랫동안 퇴락의 길을 걸어왔고, 그나마 교회에 나오는 사람도 대부분 노인층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유명한 몇 교회에만 가 봐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 거대한 예배당들이 장엄한 파이프오르간 소리만큼이나 무거운 역사에 눌려 있고, 그래서 예배당 안에 들어서면 겹겹이 쌓인 세월의 흔적을 공기에서부터 감지할 수 있음을. 사람이 살아서 숨쉬지 않는 교회, 호화스러운 각종 성물로 가득 장식돼 있으면서 텅빈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교회, 그저 한바퀴 둘러보고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교회란 한낱 거대한 기념비적 유물일 뿐이다. 관광입장료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은 모이기에 열심인 것 외에 마땅히 보여줄 게 없는 우리에게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또 다른 자화상이기도 하
다.
우리의 자화상
서구교회가 교인없는 텅빈 유적지로 변해 가고 있다면 우리의 교회들은 기복주의와 개교회주의의 병이 점점 깊어만 가고 있다. 교인들로 넘쳐나는 대형 교회들 상당수가 개교회주의에 안주하고 있는 증거는 세계 50대 교회 가운데 한국교회가 무려 23개나 포진하는 초대형화 현상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선교 2세기에 접어든 한국교회가 전체 기독교회를 아우를 수 있는 문화 형성에 실패하고 사회적 고립 마저 자초하고 있는 것은 ‘구원’의 문제보다 사사로운 복락에 봉사하는 기복주의 신앙으로 변질되는 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기복주의’라는 병
그는 이 논문에서 한국교회의 잘못된 기복주의를 대표하는 경향으로 △교회 신축을 위한 부흥회 등 교회의 내적 필요에 의해 열리는 특별의례, △대학입시를 위한 기도회 등과 같은 내 교회 식구들의 복락을 비는 행사의 성행, △복받기 위한 헌금을 부추기는 행태와 직분에 따른 헌금액 배분, △목회자에 의존해 복을 비는 현상의 심화, △기도원에 의한 치유와 축귀(逐鬼) 등 귀신에 대한 과도한 관심 등 다섯 가지를 들었다.
물론 한국교회, 특히 대형 교회 전체를 이 같은 잣대로 잴 수는 없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선교와 교육, 봉사의 조화 속에 균형있는 튼튼한 성장을 계하면서 한국과 세계를 ‘하나의 교구’로 삼아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럽의 대표적인 교회인 독일 교회의 경우도 텅빈 교회당 안과는 대조적으로 밖의 풍경은 너무나 딴판이다. 1백년이 넘게 매 2년마다 도시를 순회하며 열리고 있는 ‘독일교회의 날(Kirchentag)’ 행사만 봐도 독일교회 아니 서구교회가 가진 또 다른 얼굴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그들의 자유분방함 가끔 우리의 상식선을 뛰어넘기도 하지만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정연한 질서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고, 개회예배가 열리는 광장에 아침부터 모여 들기 시작하는 수 십 만명의 개신교인들의 모습을 보고 나면 유난히 수(數)에 민감한 한국교회도 할 말을 잃게 된다.
서구 사회와 문화 전반에 깔린 기독교회의 저력은 이제 수 백년된 교회 건물을 빠져 나와 자유와 평화, 검약과 질서의 든든한 디딤돌로 제 몫을 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는 파워가 넘쳐나나 사회를 향해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조롱거리가 되기 십상인 우리 교회와는 너무나 대비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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