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기독교개혁신보컬럼

사람을 세우는 일 / 손종국 목사

새벽지기1 2020. 9. 29. 06:47

 

1999년 10월 26일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을 당했다가 회복기에 접어든 한 청년이 1919년 시카고에 있는 작은 아파트 하나를 빌렸다. 그가 그 집을 고른 것은 근처에 유명한 작가 셔우드 앤더슨의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앤더슨은 널리 격찬을 받은 소설 「윈저버그, 오하이오」를 집필했으며 젊은 작가들을 잘 돕는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다.


두 사람은 금방 가까워졌으며 2년 동안 거의 매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함께 식사를 하고 멀리 산보도 나갔으며 기교에 대해서 밤늦게까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젊은이는 자기의 습작들을 종종 앤더슨에게 가져갔으며 그 노련한 작가는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비평을 가했다. 그러나 그 젊은 작가는 결코 낙심하지 않았다. 매번 그는 경청하면서 조심스럽게 노트에 메모해 갔으며 그런 다음 원고를 향상시키기 위해 타자기와 함께 살다시피 하였다. 그는 자신을 방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셔우드 앤더슨을 만날 때까지는 어떻게 글을 쓰는지 조차 몰랐다.” 이 청년은 헤밍웨이였다. 그 후에 앤더슨은 뉴올리온즈로 이사가서 거기서 또 한 청년을 도왔다. 그는 윌리엄 포크너였다…그리고 극작가 토마스 울프와 존 스타인백이라는 젊은이와 함께 작품 활동을 했다. 앤더슨의 문하생 중 세 명이 노벨 문학상을, 네 명이 퓰리처 문학상을 탔다. 유명한 문학 평론가 말콤 카울리는 앤더슨을 평하기를 「다음 세대의 문체와 비전에 자신의 자취를 남긴 그 세대의 유일한 작가」라고 했다』(「사람을 세우는 사람」, 하워드 핸드릭스, 117-9쪽).

 

나에게는 많은 스승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혼자서 성경공부를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신 강도사님과 본문의 재창조를 알게 해준 성경학자, 학문의 길을 소원하게 하셨던 목사님과 전도사님, 예수님을 소개해준 친구와 목사님. 그리고 대학시절에는 영적 성장에 눈을 뜨게 한 선배와 철학하는 재미와 깊이를 알게 하셨던 교수님, 사회과학자들에 대한 갈증을 갖게 도전하셨던 교수님. 이제는 사회인이 되어서 나의 길을 개척하며 걸어갈 때 전문성에 대한 강한 자의식을 도전하였던 기업과 전문직업의 선각자들, 세상을 관조할 수도 있음을 알게 해 준 여러 시인과 수필가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의 아름다움과 진지한 노력을 가르쳐준 형제와 자매들. 이 모든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만났기에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께 늘 감사를 드린다.

 

그런데 이제는 스승을 선택하기 보다는 제자를 선택하는 자리에 있게 되었다. ‘목사님 같은 스승을 만나기 위해 33년을 기다렸나 봅니다’라는 고백에서부터 ‘목사님은 내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셨습니다’라는 감사와 ‘목사님과 편지를 하다보니 제 책상에는 편지봉투가 쌓여갑니다’라며 교제를 기뻐했던 제자들. 이제는 선교사가 되고, 목회자가 되며, 대학교수가
된 이들이나 가정주부가 되어서 아이들을 잘 기르고 있다는 소식들을 접하면서 나의 자랑, 기쁨, 소망이 된 그들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다시금 다짐해 본다. ‘지금 나에게 연결된 이들에게 더욱 마음을 쏟자. 그하여 그들에게 성장이라는 변화를 만들어 주자.’

 

모든 것을 거두는 결실의 계절에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거둘 수 있는 열매가 무엇이 있는가? 혹은 물질이나 명예일 수도 있겠지만 그다 나로 인하여 바로 서고 나의 눈물과 땀을 인해 자신의 길을 씩씩하게 살아내는 제자들이 얼마나 있는가? 주변을 둘러보고 사람에게 관심을 갖자. 그리고 그들에게 나의 물질과 시간과 경험을 투자하여 충성된 사람으로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