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스테반황

전가와 전이

새벽지기1 2019. 6. 5. 12:35

 

전가와 전이 (8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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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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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에서 전가(Imputation)는 복음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마틴 루터의 신학을 요약하면 전가이다. 즉, 신자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되는데, 예수님과 연합할 때(즉, 언약이 맺어질 때), 예수님의 의는 믿는 신자에게, 신자의 죄는 예수님에게 '전가'된다. 따라서 예수님 안에 있는 신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인'이다. 이는 예수님의 완전한 의가 법적으로 그 신자에게 전가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율법을 범한 죗값을 치러야 하는데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그의 죗값을 대신 담당하여 치르셨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이다. 따라서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죗값을 치를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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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교회에서 거의 언급하지 않는 개념은 전이(Impartation)이다. 흔히 신사도 운동에서는 안수를 통한 전이 현상을 말함으로 ‘전이’는 심하게 곡해되었다. 또한 카톨릭 교회는 사람이 태어나 영세를 받으면 거듭나게 되면서 거룩한 생명이 전이 된다고 가르친다. 이에 개신교에서는 ‘전이’라는 용어 자체를 위험하게 보게 되었다. 물론 카톨릭은 복음을 통해 성령이 하시는 일을 영세라는 예식으로 대치시킴으로 복음과 성령의 역사를 거슬렀다. 이러한 죄는 성령 모독죄에 해당한다. 하지만 개신교는 성령이 복음과 함께 일으키는 전이의 사실을 등한시함으로 인하여 개신교 성도들은 법적인 확신을 누리는 반면 삶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즉, 전가로 인한 즐거움을 누리지만 전이로 나타나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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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는 예수님의 생명이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임하였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신학 용어이다. 거듭난 자는 예수님의 생명, 즉 영생을 소유한 자임을 말한다. 전이된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의 믿음을 통해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 신자의 삶이다(참조, 갈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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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신자는 완전하게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이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며 나아가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기에 '충분하다'. 이 생명이 없다면 신자의 삶은 오직 위선 밖에 없으며 세상 사람들과 본질상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성도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지녔기 때문에 성령으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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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와 전이는 '십자가의 도'에 의해 서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자는 십자가의 도를 깨달아 전가를 알게 되며, 전가를 깨달은 자들은 자신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재하고 있음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면서 그 생명을 삶 가운데 나타내게 된다. 즉, 그리스도와 똑같은 생명의 속성이 나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를 통해 나타나기 위해서는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나는 믿음을 통해 내가 죽고 그리스도를 살게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