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남창우목사

“예배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 (사무엘상4:1~11)

새벽지기1 2018. 9. 14. 06:10


“예배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

 

설교일시 : 2018. 3. 4

설 교 자 : 남창우목사

성경말씀 : 사무엘상4:1~11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불안정합니다, 이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안정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정신적 안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신적으로 안정이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불안정 합니다. 그래서 사회가 불안정하고 가정도 우리 자녀들도 불안정 합니다. 정신적 안정이 모든 삶의 근본입니다. 어느 사회학자는 이러한 정신적 안정의 요소를 네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일, 취미, 사랑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배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학자는 목사가 아니며 더구나 기독교인도 아닙니다. 그러함에도 예배를 가장 주요한 요소로 꼽고 있는데, 맞습니다. 예배가 근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사회가 안정을 찾으려면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가 없으면 안정도 평안도 승리도 없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예배의 관점에서 보고자 합니다. 오늘 나눈 말씀의 내용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상황입니다. 이제까지의 모든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매우 혼란스런 상황입니다. 그 원인은 언약궤가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결론이 났습니다. 언약궤가 함께 한 상황에서 항상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며 여리고성을 함락할 때에도 언약궤기 함께 했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언약궤를 모셔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뻐했고 블레셋은 낙담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패배했습니다. 더구나 언약궤마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바라봅시다.

불신자들의 눈에 비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 모습은 어떠합니까?

예배에 실패한 모습이 아닐까요? 예배에 실패하면 삶에서도 실패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언약궤를 빼앗겼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지 않으심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이 죽었습니다. 예배를 인도한 지도자가 없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나요? 예배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의 타락했고. 예배의 형식은 있지만 바른 예배가 없었습니다. 예배를 받으실 하나님은 아니 계셨고 생명을 건 예배도 없었습니다.

 

세상 가치를 위해서도, 자기 신념을 위해서도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 생명의 하나님은 진정 우리의 최고의 가치일진대, 우리에게는 바로 그분을 섬기는 목숨을 건 예배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명을 위해 자신을 드렸지만 우리는 그러한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입었지만 그분을 위한 생명을 건 예배가 없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영어 Blessing은 Bleed와 관련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보혈을 근거로 축복을 받은 우리입니다. 우리의 모든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예배, 영적 예배(럼12;1)를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에서 실패하면 삶도 실패합니다. 우리 모두 이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와 나라 삽니다. 우리가 삽니다. 우리 자녀들이 삽니다.

 

현 사회문제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예배하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 안에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참된 예배가 있다면 어떻게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겠습니까? 한국교회 안에 예배가 많이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신자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바른 예배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가 없습니다. 바른 예배를 모르면 예배를 실패하며 당연히 모든 삶에서 실패합니다. 목숨을 건 예배가 없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Me Too'운동은 예배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도 당했다’ 가 ‘나도 도움 받았다’ 로 바뀌는 사회와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생명의 근원됨을 서로 고백하는 그런 ‘Me Too’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모든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가 회복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예배자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바로 예배하는 참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예배를 드려야 우리의 기도가 응답 됩니다. 진정한 예배가 있어야 정의가 바로 섭니다. 바른 예배를 드리면 살고 허접한 예배를 드리면 죽습니다. 바른 예배를 드리면 승리하고 허접한 예배를 드리면 실패합니다. 바른 예배를 드리면 행복하고 허접한 예배를 드리면 불행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 따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나의 신앙고백과 적용

 

교회와 가정과 나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이 나라를 돌아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바른 예배, 목숨을 건 예배를 생각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여 바른 예배를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나의 믿음의 여정을 돌아보면 예배에 얼마나 많이 실패하였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예배 실패의 모습 가운데 나의 모습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배를 받으실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그분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무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며 살아 왔는지 다시 돌아봅니다.

 

‘예배가 곧 나의 삶이 되게 하소서‘라는 기도제목을 갖고 살아왔지만 여전히 헛된 예배를 드린 적이 많았습니다. 예배를 나의 욕망 충족의 수단으로 살아왔습니다. 나의 의를 세우며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는 그런 예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였는지 돌아봅니다. ’삶이 곧 예배가 되게 하소서‘라고 읇조렸지만 나의 삶 가운데 진정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을 나의 삶의 최고의 자리에 모시고 살아왔는지 돌아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다시한번 나의 예배의 삶을 돌아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원컨대 믿음의 고백이 삶으로 증거 되며, 예배가 나의 삶의 최고의 가치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구별된 장소에서 구별된 시간에 주님과 깊이 만나며, 공적예배를 통하여 주님을 높이며, 믿음의 교제를 통하여 주님의 주되심을 고백하며 나눌 수 있길 소망해 봅니다. 바른 예배가 바른 삶의 근본임을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받으실만한 영적 산 예배되길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