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권성수목사

타성(惰性)에서 야성(野性)으로

새벽지기1 2018. 3. 4. 08:17


원숭이 네 마리가 한 방 안에 갇혔다. 그 방의 중앙에는 장대가 세워져 있고, 그 장대 꼭대기에는 바나나 한 다발이 걸려 있다. 특별히 굶주린 원숭이 한 마리가 장대 위로 뛰어올라갔다. 원숭이가 꼭대기에 거의 올라갔을 때 머리 위에 찬물이 쏟아졌다. 꿱 하는 소리를 지르면서 원숭이는 장대 밑으로 내려갔다. 다른 원숭이들도 각기 장대 위로 올라가다가 찬물을 덮어썼다. 원숭이들은 몇 번 시도하다가 그만 바나나를 포기해버렸다.

원숭이 네 마리 중에 한 마리만 빼내고 새로운 한 마리를 그 방 안으로 집어넣었다. 새로 들어온 한 마리가 장대 위로 올라가자마다 다른 원숭이들이 뒤따라 올라가서 장대 밑으로 끌어내렸다. 새로운 원숭이는 ‘장대 위로 올라가지 말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새로운 원숭이는 몇 번 시도해 본 후에 찬물 샤워(shower)가 없어도 바나나를 포기해 버렸다.

원숭이 네 마리를 한 마리씩 새 원숭이로 교체시켰다. 새로 들어온 원숭이마다 ‘장대 위로 올라가지 말라’는 동일한 교훈을 받았다. 새로 들어온 원숭이들 중에는 장대 꼭대기까지 올라간 원숭이가 없다. 찬물 샤워를 받는 지점까지도 올라가지 않았다. 원숭이들은 왜 장대에 올라가지 말아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전례에 따라 장대에 아예 올라가지 않았다. 물을 쏟지 않아도 어떤 원숭이도 장대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원숭이들의 문제가 무엇인가? 장대 위로 올라가려던 야성이 사라지고, 이유도 없이 장대 위로 올라가지 않는 타성에 빠진 것이다. 물벼락을 맞으면서도 장대 꼭대기에 올라가서 바나나를 가져오려는 야성이 없어진 것이다. 장대 꼭대기에는 바나나 다발이 있어도 야성을 잃은 원숭이들에게는 보기 좋은 그림에 불과했다.

어떤 나라나 대륙의 역사들을 보면 기독교가 들어가기 전의 전(前)기독교 시기가 있다. 그러다가 복음이 들어가면 처음에는 고전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강한 생명력 때문에 기독교가 도약하는 시기가 온다. 이후 기독교는 현상유지를 하다가 서서히 쇠퇴기에 빠진다. 쇠퇴기기가 지난 후에 후(後)기독교 시기가 시작된다.

지금 유럽은 후(後)기독교 시기에 빠진 지 오래 되었다. 유럽인들은 기독교를 모르면서도 다 안다고 하고 기독교에 대한 모든 것을 야유하는 후(後)기독교 시기에 빠진 것이다. 유럽인들에게 전도하면 “우리는 다 안다. 하나님도 알고 예수도 알고 기독교도 안다. 그러나 다 믿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지금 미국은 일부 급성장하는 교회들이 있지만, 대부분 교회들은 본격적인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지금 한국은 일부 급성장하는 교회들이 있지만, 전반적인 현상은 정체기와 쇠퇴 초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왜 짧은 성장기를 지나 정체기와 쇠퇴 초기에 접어들었는 평가를 듣는가?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정체와 쇠퇴를 극복하는 비결은 없는가?

한국교회가 정체와 쇠퇴에 접어든 것은 한국교회가 야성을 잃고 타성에 빠졌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전도와 선교에 열심이다. 예배도 잘 드린다. 교제도 하고 교육과 훈련도 한다. 봉사와 사역도 잘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으로는 야성을 잃었다. 심지어 야성을 잃은 것조차 모르는 교회들이 많이 있다.

예전의 한국교회는 황무지에 던져 놓아도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을 힘차게 펼쳐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야성을 잃었다. 목회자 후보생들이나 목회자들이 기존 교회만 찾고 편하게 목회하려는 타성에 젖어 있다.

남한만 해도 국민의 80% 이상이 비(非)기독교인들이다. 북한은 대부분의 동포가 비(非)기독교인들이다. 전 세계에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은 수십 억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주님의 시각으로는 전 세계가 황금벌판이다. 북한도 황금벌판이고, 남한도 황금벌판이다. 황금벌판에 추수할 곡식들은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도전적이고 능동적인 추수꾼들이 적은 것이다.

황금벌판을 보지 못하는 것은 타성에 빠졌기 때문이다. 기존 교회만 보는 타성 때문이다. 황금벌판을 보아도 추수하러 나가지 않는 것은 야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을 황금벌판에 추수꾼들로 보내셨다. 하나님은 자기의 사역에 전념할 때 모든 일을 책임지겠다고 하셨다. 지금은 황금벌판에 뛰어 들어가 천국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야성적 생명사역자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한국교회를 정체와 쇠퇴에서 벗어나게 하는 비결은 야성의 회복이다. 한국교회를 다시 도약하게 하는 비결은 정글형 야성이다. 사육사가 던져주는 먹이만 받아먹는 동물원의 야수들이 아니라, 정글을 누비면서 먹이를 찾아먹는 야수들이 필요하다. 기존 교회만 바라보지 않고, 교회와 교인이 전혀 없는 지역에 들어가서 불신자들을 신자들로 만들고 그들을 양육 교육 훈련하여 사역자들로 만드는 정글형 야성 사역자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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