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권성수목사

지금은 협(協) 할 때

새벽지기1 2018. 1. 19. 09:46


우리나라는 지금 특별히 세 가지 위기에 부딪혀 있다. 분쟁 위기와 안보 위기와 경제 위기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했다. 충격과 경악과 슬픔 속에서 조문과 애도의 거대한 물결이 일었다. 장례식 이후 책임 논쟁과 함께 불거질 정치적 분쟁과 국론 분열이 매우 걱정스럽다. 이것이 분쟁의 위기다.

북한 정권은 다시 핵 실험을 강행하고 미사일을 쏘았다. 우리나라가 PSI에 가입하자 북한 정권은 군사적 타격 위협까지 하고 있다. 아무리 ‘벼랑 끝’ 전술이라고 들어 넘기고 싶어도, 가슴이 서늘하다. 이것이 안보의 위기다.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우리나라도 허우적대고 있다. 요즈음 주식과 환율과 무역수지가 조금 개선되는 것 같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우리 경제가 늪을 빠져나오기까지 앞으로 상당 기간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이것이 경제의 위기다.

세 가지 위기를 뒤집어 보면 해결은 간단하다. 국민 통합, 국가 안보, 경제 회복을 이루면 된다. 해결의 방향은 간단하지만 해결을 위해서는 무진 애를 써야 한다. 우리 기독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한자로 ‘協’이 있다. ‘화합할 협’이다. ‘열 십’(十) 자에 ‘힘 력’(力) 자 세 개가 붙어 있다. ‘協’ 속에 해결책이 다 들어 있다.

우리 기독인들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十)에서 우리의 죄 때문에 죽기까지 하셨다.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와 우리 민족의 죄를 회개하고 청산해야 한다. 우상숭배, 불효, 살인과 미움, 간음과 음란, 도적질과 ‘돈 사랑’, 난무하는 거짓말, ‘좀 더’ 원하는 탐욕 등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특별히 반목과 대립과 분쟁과 분열과 증오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국론 통합에 힘(力)을 모아야 한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사람을 합하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합하고, 친구와 원수를 합하는 것이다. 이념과 이권과 분파를 뛰어넘은 화해와 포용이 필요하다. 노대통령 장례 이후에 국민들이 후폭풍을 일으키도록 자극하는 일체의 선동을 중지해야 한다. 수백만의 추모 및 장례 인파를 특정 이념 지지로 오해하고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국론 통합에 힘쓴다고 하면서 자기모순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국론 통합 운운하면서 교단의 내적 갈등과 분쟁을 종식시키지 못한다면 이것은 국가 앞에서 교회와 교단의 수치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에 소속된 ‘우리’가 법만 가지고 싸우지 말고 포용과 사랑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 ‘우리’는 편을 가르고 싸우면서 ‘나라’ 보고는 하나로 뭉치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우리는 분열을 노리는 선동도 하지 말고, 분열 선동과 책동에 동조하지도 말아야 한다. ‘뭉치면 살고 싸우면 죽는다’는 일념으로 뭉쳐야 한다.

우리는 국가 안보에 힘(力)을 모아야 한다. 안보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동시에  국토방위에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우리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고 대비해야 하지만, 공격을 받았을 때 적절하게 응전하면서도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구분하기 힘들 때가 있지만, 그래도 구분해서 북한 주민의 생존권 확보를 위해서는 계속 지원해야 한다. 북한 핵에 대응하는 조치도 멀지 않는 장래에 강구해야 한다. 우리가 언제까지 미국의 핵우산을 의존해서 살 것인가? 북한이 핵무기를 테러집단에 팔아 북한이나 테러집단이 핵폭탄을 서울과 도쿄, 뉴욕, 런던, 파리 등에 던진다면 세계는 불바다가 될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우리는 경제 회복에 힘(力)을 모아야 한다. 사치와 과소비는 일체 하지 말아야 한다.  주머니를 꽁꽁 묵고 소비를 억제하지도 말아야 한다. ‘경제가 어렵다, 어렵다’ 떠들지도 말아야 한다. 선교비와 구제비를 축소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요셉의 행정능력과 다윗의 용기와 솔로몬의 지혜로 나라살림을 잘 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국론 통합과 국가 안보와 경제 회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십자가(十)의 복음임을 기억해야 한다. ‘노대통령이 죽었데’, ‘북한이 핵 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았데’라는 ‘나쁜 소식’은 한두 시간 안에 전 국민의 귀에 시끄럽도록 전달되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데’라는 ‘좋은 소식’은 왜 이리도 전파되지 않는가. ‘너는 가서 승전 소식을 전해라’고 하는 전언을 가지고 42.195㎞를 달려갔던 고대 희랍의 병사를 생각해 보라. 천국 복음을 전하라고 파송된 우리가 전하러 가지도 않고 가서도 입을 다물고 있으니 이 무슨 수치인가.  

복음이 전파되지 않으니 우리 민족의 언행심사에 하나님을 모시는 영성이 없거나 약하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대로 사는 도덕도 약하다. 분쟁 위기, 안보 위기, 경제 위기는 근본적으로 여기서 나온다.

우리는 더욱 열심히 사랑을 나누면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우리는 정치계와 경제계와 연예계의 ‘스타’가 자살하고 자살이 영웅을 만드는 기가 막힌 현상을 보고 있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바로 살면서 영적으로 무지한 백성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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