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권성수목사

법과 정치의 선용

새벽지기1 2018. 1. 2. 16:17


회의를 하다가 보면 가끔 “법이요!” 하는 발언이 나온다. 그것은 의제나 의사 진행이 법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법대로 하자는 발언이다. 그런 발언이 나올 경우 사회자는 의사 진행을 일단 중지하고 그 회원의 발언 내용을 모든 회원들이 듣도록 한다. 구태여 “법이요!”라는 발언이 없어도 회의에서 법적인 사항을 놓고 논의가 될 때가 있다.

총신 총장 선출과 관련하여 지난 해 제주 총회의 결의에 따라 총신 운영이사회가 몇 차례 진행되는 동안에 총회의 결정이 합법이냐, 불법이냐에 대한 법리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총회가 재단이사들의 사퇴를 결정한 것이 국가의 교육법에 맞는가? 재단이사들의 사퇴 결정이 총회법에는 맞는 것이라면, 국가법과 총회법 중에 어느 것이 우선인가? 총장 후보 추천을 위한 7인 위원회 조직이 총회의 특별위원회 조직에 대한 규정에 맞는가? 7인위원회가 총장 후보를 추천한다는 결정과 이사회 임원회가 총장 후보를 추천한다는 총장 선출 규정이 같은 총회에서 동시에 통과되었는데, 이것은 자가당착적인 결정이 아닌가? 이사들이 사퇴하는 시점이 총장이 물러나는 11월 24일인가, 아니면 11월 말인가? 재단이사회가 정한 총장 대행과 이사장 대행이 합법적인가, 아닌가? 질문과 논쟁이 꼬리를 문 것이 사실이다.

대다수의 이사들과 전국 교회는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이제나 저제나’ 총장이 세워지려나 기대도 하고 우려도 했었다. 그러나 ‘저제도 이제도’ 총장은 세워지지 않고 지루하고 지치게 하는 법리논쟁만 계속되는 것을 보고 실망과 좌절과 분노마저 느끼게 되었다. 총장 선출과 관련하여 좌초에 걸린 총신과 미로에 빠진 총회를 건질 길은 없는가?

총신 총장 선출과 관련해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두 진영이 서로 상대방을 향해서 ‘네 탓’이라고 공방한다는 것이었다. 서로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는 공방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현재 작년에 비해 상당히 많은 부분이 해결된 것 같기도 하지만, 현재대로 간다면 그런 공방이 다음 총회까지 갈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 총회는 끊임없는 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고 말 것이다. 두 진영이 법리논쟁을 계속할 경우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법 정신을 살리면서도 정치적인 지혜를 아래와 같이 모으는 것이라고 본다.

첫째, 주님과 교회와 총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법과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법과 정치를 개인이나 집단의 이권을 위해 악용하는 소수의 손에 방치하고 방관하지 말고, 법과 정치를 주님의 영광과 교회와 총회의 발전을 위해 선용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둘째, 중요한 회의 현장에 법률 전문가들을 동석시켜 자문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국가법과 총회법을 잘 아는 법률 전문가들이 회의 자리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 의제와 결의의 합법성을 짚고 넘어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 “법이요!” 하는 발언이 나올 경우 발언자에게 “헌법 몇 조 몇 항에 있는 법인가? 어떤 규정에 있는 법인가?” 하는 질문 과정을 반드시 거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가령 70세 정년의 문제에 있어서 어떤 회원이 “71세 생일 전 날까지가 법이요!”라는 발언을 했을 때, “그것이 어느 법의 어느 조항인가?” 하는 질문이 반드시 있었어야 했으리라고 본다. 교육공무원의 경우 퇴임하는 해 생일이 있는 그 학기 말에 퇴임을 하는 것이 ‘법’이고, 교회는 생일이 있는 그 해 말에 은퇴하는 것이 ‘법’으로 여겨져 왔었기 때문이다.

넷째, 어떤 결정에 법적인 문제가 있다면, 모든 법적인 문제들을 한꺼번에 다 내어놓고 논쟁을 하든지 논의를 하든지, 아니면 정치적으로 조율을 하든지 해야 할 것이다.

가령 총장 선출에 관한 제주 총회의 결정에 법에 맞지 않는 요소들이 있었다면, 총회 이후 첫 번째 이사회에서 제주 총회의 총장 선출에 관한 결의사항 중에 법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모든 요소들을 일시에 다 내어놓고 논의를 했어야 했다. 이사회 때마다 논쟁거리를 한두 개씩 들고 나와서 총장 선출을 아예 하지 못하게 하고, 법리논쟁만을 하게 만드는 것은 법적으로 공의롭지도 못하고 정치적으로 지혜롭지도 못한 처사다.

다섯째, 법리논쟁의 배후에 정치논쟁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법리논쟁이 벌어질 때 정치적인 조율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가령 국가법이 우선인가, 총회법이 우선인가 하는 법리논쟁이 벌어질 경우, 관련 당사자들이 한 자리에 앉아서 국가법도 최대한 살리고 총회법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협상을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은 질서를 위한 것이라면, 정치는 화합을 위한 것이다. 법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에 이해 당사자가 함께 부딪혀 있을 경우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면서 총회의 발전과 화합을 위한 대타협과 대포용의 정치협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질서를 위한 법과 화합을 위한 정치를 지혜롭게 아우를 때 주님이 말씀하신 법 정신인 의(義)와 인(仁)과 신(信)이 실현되지 않겠는가. 교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법과 정치를 선용하는 법을 익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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