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4

인간의 교만

새벽지기1 2017. 11. 20. 08:48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성격, 취미 또는 가치관 역시 다르다. 의복, 자동차, 가구 또는 장식구가 다양하는 것은 그만큼 사람의 취미가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심리학자들이 크게 내향적이고 외향적이라 구분할 뿐 실제는 세밀하게 구분된다. 이것은 국가, 지역, 문화, 시대, 세대, 가정 또는 개인마다 다르다고 봐야 한다. 이것을 하나로 묶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철학자들이다.


철학자들은 그 시대의 산물이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고대철학자들은 자연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점차적으로 절대자와 인간 자체에 관해 관심을 가졌다. 절대자, 즉 신과 인간을 주제로 삼는 경우는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신, 즉 하나님에 대한 인간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불가지(不可知,unknowable)는 아니지만 불가해(不可解,incomprehensive)이다.


이 둘의 차이는 대단하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이게 알려주시는 것으로도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것을 불가지론이다. 그것으로 그분을 이해하고자 해선 안 된다는 것이 불가해론이다. 철학자들은 불가지나 불가해도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알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도, 이해할 수 있다고 덤벼든다. 아니면 성경 자체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를 아예 무시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거나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기도 한다. 하나님 없는, 즉 무신론자로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간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더욱이 인간이 하나님을 창조했다고 신성모독죄를 함부로 조잘거린다. 피조물이 창조자가 되고, 창조자를 피조물로 만드는 희귀한 일들이 20세기에 일어난다.


좀 더 자세하게 그들의 억지 주장들을 살펴보면, ① 하나님에 대해 기록된 성경의 합리성을 주장했다. 오직 성경중심을 주장하는 종교개혁의 사상을 무더뜨린다. 이성으로 성경을 판단하겠다는 만용을 부렸다.
② 과연 이성은 믿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하나님을 대신한 이성은 과연 합리적인 판단하자는 혁명이 일어났다.③ 인간 이성에 대해 믿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의지에 관심을 갖기에 이르러 복잡하고 무대답의 인간에 대해 촉구하였다.④ 인간을 신으로 만들고 나니 그것에 대한 이론들이 각자 다르고 일치할 수 없었다. 나름대로 입맛에 따라 스스로 신임을 가상하는 것이다. 누구든 신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이들의 견해들을 분석해보면, ① 인간의 죄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펠라기우스주의의 부활이다.②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영지주의의 부활이다.③ 하나님을 인정하더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다. 아리오스주의의 부활이다.④ 인간이 하나님이 되는 소찌니주의의 부활이다.


이에 따라 17세기 청교도들은 성경, 칭의, 삼위일체, 삶을 매우 중시했다. 인간은 바벨탑을 쌓을 수 있다고 여기는 사회과학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 노력 자체도 하나님으로부러 나온 것이다.
이런 노력이 인간으로서 최선이라고 본다. 하지만 사후의 심판과 하늘나라에 대해 결코 고려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