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어거스틴

[어거스틴 참회록169] 제2의 유혹, 지식욕

새벽지기1 2017. 10. 4. 08:12


제10 권 고백




35. 제2의 유혹, 지식욕.

여기에 다른 형태의 유혹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더 위험한 것입니다.
즉 그것은 육체의 유혹에 근거를 둔 것으로서
당신을 떠나서 정욕의 노예가 되려는 자들이 즐기고 행락하는 정욕인데
이것이 우리의 영혼 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지식이니 학문이니 하는 미명을 쓴 허망한 호기심입니다.
그것은 지식욕 안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지만
모든 감각속의 인식이라는 점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눈이므로
성경에서는 이를 가리켜 안목의 정욕이라고 합니다.

사실 본다는 역할은 본래 눈이 하는 일이지만
우리들은 그 동사를 다른 감각에 대해서도 흔히 이용합니다.
그것은 이들 감각을 인식의 필요에 이용할 경우입니다.
예컨데 어떻게 번쩍이는지 들으라든가,
어떻게 비치는지 냄새를 맡아라든가
어떻게 빛나는가를 맛보아라고 하지 않고
얼마나 눈부신가를 만져보라고도 말하지 않으며
이런 경우는 모두 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단순히 어떻게 빛나는가를 보라
ㅡ 이것은 오직 눈만이 느낄 수 있습니다.ㅡ 라고 말하며
또한 어떻게 울리는가를 보라, 어떤 맛인지 보라,
어떻게 판단하는지 보라 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감각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경험은 보통
지금 말한 것처럼 안목의 정욕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본다는 역할에 대해서 으뜸을 차지하는 것은 눈이지만
기타의 감각도 무슨 인식에 대한 것을 더듬는 경우에는
눈과 흠사한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또 감각에 의해서 움직일 경우
쾌감이 하는 것과 호기심이 하는 것의 구별이 명확해집니다
쾌감은 아름다운 것, 좋은 소리가 나는 것,향기로운 것, 맛있는 것,
부드러운 것을 추구하지만 이에 반해
호기심은 그것과는 상반되는 것을 시험삼아 추구합니다.
그것은 굳이 불쾌감까지도 침고 견디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험해 보고 싶다거나 알고 싶다는 욕망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갈가리 찢겨진 시체를 보고 무서워 떠는 것이 어떻게 즐거움이 되겠습니까?
그래도 사람들은 송장이 어디 있다고 하면 뛰어가서 보고는 슬퍼합니다.
더구나 꿈에 나타날까봐 두려워 합니다.
생시에 누가 억지로 가서 보라고 했듯이
혹은 아름다운 것에 대한 소문이나 되는 것처럼 거기에 끌려갑니다.

그밖에 다른 감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모두 말하자면 길어질 것이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이 병적인 호기심 때문에 외계의 자연에 숨겨진 것을 탐구해 내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요
인간이 오직 알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이 호기심 때문에 사람들은 같은 의도하에 마술의 술법을 통하여
어리석은 지식을 깨닫고자 문제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호기심 때문에 종교에 있어서조차도 기적적인 일과 표적을 구하는데
이것은 구원받으려는 데서 생긴 행위가 아니라
오직 알아 보고 싶은 마음에서 생긴 것입니다.

위험으로 가득 찬 이 거대한 숲에서 실상 나는 많은 것을 마음 속에서 버렸습니다만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당신이 자비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매일같이 이런 것들이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으므로
그러한 것에 정신이 쏠려서 바라본다든가
허무한 생각을 채울 생각은 없다고 감히 말할수 있을 때가 언제이겠습니까?

물론 나는 영화 구경에 마음 쓰는 일도 없고
별의 운행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또 나의 영혼은 망령에게 회답을 청한 일도 없습니다
나는 모든 더러운 종교의식을 배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나의 하나님이시여,
당신을 겸손하고 순수하게 섬김이 마땅한데
저 악마는 온갖 술수를 다 써서 기적을 청해보라고 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안과 깨끗하고 티없는 조국 예루살렘을 통해서 당신에게 빕니다.
지금 내가 그러한 꾐에 넘어가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더 멀리 떨어져 있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누군가의 구원 때문에 애원할 경우에는
나의 목적과 의도는 앞의 경우와는 매우 다릅니다.
그리고 바라는 바를 행하시는 당신은 나에게 당신을 흔쾌히 따르는 능력을 주시고
앞으로도 계속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극히 하찮은 일들에 있어서조차
우리들의 호기심은 늘 유혹에 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얼마나 자주 유혹에 빠지는지 모릅니다.
아무도 그 횟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처음에는 그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견디며 듣다가
어느 틈에 자진해서 귀를 기울이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젠 토끼를 쫒는 개 구경을 하기 위해 원형 극장에 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간혹 들을 지나가다가 그런 일이 생겼다면
무엇이든 중대한 생각을 하다가도 중지하고 그 뜀박질에 정신이 쏠릴지도 모릅니다.
설사 타고 가던 말 머리를 돌리지 않는다 해도 마음은 기울어질 것입니다.
이 경우 당신께서 내 약함을 보시고 당장 깨우쳐 주시지 않는다면
즉 그러한 환상에서 당신에게로 옮아갈 생각을 주심으로써
아주 무시해 버리고 자나가도록 인도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가만히 앉아서 도마뱀이 파리를 잡는 것을 지켜본다든지
거미가 거미줄에 뛰어든 파리를 잡아 먹는 모습에
정신을 빼앗기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
작은 동물이라고 해서 이치가 다를 것은 없지 않습니까?

나는 그런 것들을 보면 거기에서 만물을 오묘하게 다스리시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당신을 찬양하려고 마음 먹은 것은 아닙니다.
쓰러져 곧 일어나는 것과, 쓰러지지 않는 것은 그 성질이 다릅니다.

나의 생활은 그러한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희망은 오직 하나 당신이 베푸시는 자비뿐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런한 종류의 것을 담는 그릇이 되어 허무한 것의
거대한 무리를 운반할 때에는 기도는 종종 중단되거나 방해를 받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보시는 앞에서 마음의 소리를 당신의 귀에 조금씩 쏟아내고 있을 때
어디선지 하찮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그처럼 소중한 일을 중단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