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라

새벽지기1 2017. 9. 11. 07:09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의 마지막 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바울은 로마의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핍박했을 때 붙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바울은 자신의 생애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고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유언과 같은 서신을 써서 보낸 것이 디모데후서입니다. 사도 바울의 간절한 마음 상태가 잘 나타나 있고, 1~4장 말씀 전체를 통해 무엇보다 ‘복음을 굳게 지킬 것’을 거듭 강권하고 있습니다. 1장 14절에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 고난 받을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1장 8절에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굳게 지켜 그 안에 거하고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기를 즐겨하며, 그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이 디모데후서의 주된 메시지입니다. 2장 말씀에서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는 사람들을 세 가지 모습으로 비유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 명령에 따르기 위해 개인의 영달과 목숨마저 아끼지 않는 군사의 모습입니다. 둘, 규칙을 지키며 끝까지 달려가는 경주자의 모습입니다. 셋, 결실을 거두기 위해 땀 흘리며 수고하는 농부의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을 통해 복음으로 고난 받는 사람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주님께 드려라

본문 말씀은 복음을 위해 고난 받을 것과 고난 받는 자가 기억해야 할 것과 무엇에 중심을 둬야 할 것인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먼저 8절 말씀을 읽습니다.  “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세주로 영접한 후에 삶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옛 사람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절에 다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은 사고 방식이 많이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쳐오면 문득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있길래…’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합니다. 항상 예수님을 생각하고 있지만, 자신을 끊임없이 예수님께로 돌리지 않는다면 옛날로 돌아가기 쉽습니다. 조금 늦은 나이에 신학 공부를 하신 친구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예전에 술을 좋아했습니다.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저는 ‘고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신학교에 진학했기 때문에 사회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그 부분이 좀 아쉽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은 오히려 ‘그게 좋은 겁니다’라면서 자신의 고충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힘든 일이 생기면 예전에 맛을 봤던 시원한 맥주가 생각난다고 말했습니다. 한 잔 마시면 기도도 잘되고 일도 잘 될 것 같은 유혹을 받는다고 고백했습니다.

 

고난의 순간마다 주님에게로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은 순간마다 주님 앞으로, 말씀 앞으로, 십자가 앞으로 나가는 일입니다. 긴장을 늦추지 말고 영적 안테나를 곧추세워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세상은 우리의 영적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하기 위해 영적으로 고난 받는 세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첫째, 8절 말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영광을 위해 고통과 절망과 저주의 십자가를 통과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 사도 바울은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다윗의 씨’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후손인 것은 그분의 인성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다윗 왕국의 후손으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죄의 삯으로 사망하면 끝이 나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속죄 제물이 되셔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자로서 인간이 느끼는 슬픔과 기쁨, 아픔과 고독 등을 모두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존재로 머무신 게 아니라 인간들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사실, 쉽게 얻어지는 것 중에 가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가치 있는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지난주부터 온누리교회 교역자들이 모여 정신 건강과 집중력 강화를 위해 검도를 시작했습니다. 여성민 목사님이 검도 공인 3단이고, 성도님들 중에 검도 유단자들 몇 분을 모시고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에 저는 검도복을 입었을 때 약간 거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검도는 죽도로 상대방을 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앉는 자세부터 가르쳐 주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마룻바닥에 앉아서 교육 내용을 들은 후 일어서는데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생각보다 힘든 것이 검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검도를 ‘다모’처럼 하려면 많은 준비를 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진정 가치 있는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이 나도록 기도하신 후에 완성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실 만큼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고통, 제자들에게 배신당하는 고통을 치르고 나서 이루신 구원입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제자들을 향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못 자국난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주십니다. 그것을 보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확인한 제자들은 기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모든 고난을 겪으신 후에 부활하셔서 구원을 이루신 값진 일입니다. 우리는 그만큼 값진 구원을 주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희생하셔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엔 우리를 향하신 사랑, 은혜, 축복이 있습니다.

 

고난을 참아낸 사도 바울 

 둘째, 사도 바울은 주님을 위해 고난 받은 자신을 이야기합니다. 9, 10절 말씀입니다.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실제로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심지어 복음 때문에 동족에게,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고난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은 매여 있는 몸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죄는 우리의 육신을 가둘 수 있지만,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지 못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고난을 주고 가둘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가둘 수도, 막을 수도, 제한할 수도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는 복음으로 인해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합니다. 순교자의 육신은 땅에 묻히지만 그가 생전에 외치고 증거했던 하나님의 말씀은 가둘 수도, 묻을 수도, 제한할 수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에 그런 능력이 있다면서 그 능력의 복음을 전하라고 강권합니다. 10절에서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기 위해 모든 고난을 참는다고 고백합니다.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 중보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홀로 신앙 생활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는 분들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의 말처럼 그들이 주님을 믿게 되는 날까지 모든 고난을 달게 받으시길 바랍니다. 슬프고 억울하며 아프겠지만, 그들이 구원받는 그 날까지 모든 어려움을 견뎌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손과 옆구리의 흔적을 보여주시며 제자들에게 사랑을 표현하신 것같이, 사도 바울도 고난의 흔적을 갖고 있다고 강변합니다. 비록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받고 매였고 우리가 복음을 위해 어려움 가운데 처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도, 막아지지도, 소멸되지도 않습니다. 영원불멸하신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모든 성도님들이 즐거이 고난에 참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고난에서 승리한 성도 

 셋째, 성도들이 받는 고난을 이야기합니다. 11~13절 말씀입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아마 이 말씀은 초대 교회 당시에 찬송가의 한 구절이나 유행하던 인용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네 구절이 서로 대구(對句)를 이루고 있습니다. 두 구절은 진실하고 신앙으로 인내하는 내용이고, 두 구절은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그릇 행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으면 함께 다시 살 것이요, 참으면 함께 왕 노릇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죽고, 복음을 위해 고난을 참으면 주님과 함께 살고 다스린다고 뜻입니다. 한편 이 말씀은 세례와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6장 3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모든 죄가 죽고 주님과 같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고 고난을 참으면 주님과 함께 살고 다스리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으면 주님과 함께 다시 사는 놀라운 신비가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으면 다시 주님과 함께 살고 주님과 함께 고난을 참으면 왕 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12절 하반부에 만약 우리가 주님을 부인하면 주님께서도 우리를 부인하신다는 말씀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 33절을 통해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면 주님께서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부인하십니다. 우리가 뿌린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신실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믿고 따라갈 때 연약하여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우리가 행한 대로 갚지 않으시고, 심은 대로 거두지 않으십니다. 이에 대해 어느 주석가는 주님께서 우리의 어떠한 죄도 모두 용서하시는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심판하겠다고 하신 것을 행하시는 신실함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가 주님을 부인하는 삶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고난 없는 축복은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신실하게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으면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 고난을 참으면 왕국을 다스리게 하십니다. 축복은 고통을 통해, 생명은 죽음을 통해, 결실은 수고를 통해 임하시는 것입니다. 고난 없이 얻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십자가 없이 생명의 면류관은 얻어지지 않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군사들이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역경을 헤치고 전진하는 것처럼, 경주자가 승리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고된 훈련을 견디는 것처럼, 농부가 결실을 얻기 위해 수고의 땀방울을 아끼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기꺼이 고난에 참여해 이겨내야 합니다.  비록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고난과 핍박 가운데 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하라’며 고난에 참여함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강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셨고, 주님을 따르는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따르는 우리도 고난에 참여해야 합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나고 고든 장군이 상원의원에 출마해 후보 등록할 때였습니다. 당시 입후보하기 위해 주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고든 장군이 적합한 인물인지에 대해 찬반 투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 의원 중에 남북전쟁에 함께 참여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든 장군의 입후보를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투표가 진행되자 반대표를 행사하기 위해 고든 장군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고든 장군의 얼굴에 난 흉터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반대표를 던지려고 했지만 반대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의 얼굴에 난 흉터를 잊고 있었습니다. 조국을 위해 정의와 용기로 싸운 그의 상처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를 반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곤 그는 찬성표를 던지게 되었습니다.

 

고난을 이겨낸 값진 부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고, 더구나 불신자들 가운데서 신앙 생활하기란 힘이 듭니다. 하지만 그런 중에 받는 고난은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의 흔적을 보여주신 것같이, 우리도 주님에게 그에 상응하는 고난의 흔적을 보여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신실하지 못해도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사랑이 변치 않는 것처럼, 용기를 갖고 주님을 위해 고난에 참예해 이겨내야 합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 부활의 영광을 얻기 위해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하나님!우리의 삶 가운데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 고난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죄인과 같이 매인 사도 바울의고백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의 복음을 위해 고난을 참으며, 

주님의 영광 중에 왕 노릇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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