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그런즉 깨어 있으라!(마25:1-13)

새벽지기1 2017. 9. 9. 10:11


그런즉 깨어 있으라!(25:1-13)


본문

1.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서론

먼저 마25장 전체의 내용과 주제를 알아야 합니다.

25장은 앞24장과 마찬가지로 세상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내용입니다.

열처녀 비유(1-13)’성도들에게 종말을 항상 대비하는 자세를 가지라는 교훈을

달란트 비유(14-30)’종말적 삶의 자세는 맡은 일에 충성하라는 교훈을

양과 염소비유(31-46)종말적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라는 교훈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중 본문 열처녀 비유는 재림을 대비하는 성도의 올바른 태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은 진리나 교리에 대한 메시지가 아니라, 성도의 종말적 자세에 관한 교훈입니다.

이 열처녀 비유는 유대 사회의 결혼 풍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비유에 나타난 용어부터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 비유에서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을,

맞으러 나간 신부의 들러리인 열 처녀는 성도들을 나타냅니다.

열 처녀가 준비한 은 성도들의 신앙의 모습들,

기름은 등불(성도의 삶)을 지속적으로 밝혀줄 수 있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미련한 다섯처녀들이 등을 준비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은

성도 중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자들(딤후3:5)임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사람들은 성도라하는 이름은 있지만

실제로 성령의 어떤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명목상 크리스찬들을 가리킵니다.

이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또는 다섯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신랑을 기다리는 열처녀의 준비 상태가 어떠냐가 핵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있는 슬기로운 다섯처녀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본론

그러면 왜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할까요?

첫째, 영적 잠을 자는 것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유대인의 결혼 풍습을 간단히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정혼(약혼)을 하게 되는데 결혼하기를 원하는 남자가 여자 부모에게 찾아가

그 부모에게 상당한 지참금(bride price)을 지불함으로서 결혼 계약이 확립되는 것입니다.

이 때부터 두 사람은 아내와 남편으로 간주됩니다.

29장 야곱은 라반의 두 딸과 결혼하기 위해 지참금 대신 14년간을 일해야 했습니다.

결혼 계약이 성립되면 남자가 여자에게 포도주를 한 잔 따라 주는데

여자가 그것을 받아 마시면 결혼을 승낙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약혼을 마치면 신랑이 모든 것이 준비되면 신부를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납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신부된 교회에 하신 말씀과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2-3)“

집으로 돌아간 신랑은 신부를 데리고 올 준비를 하게 되는데,

약혼기간은 보통 1년에서 2년 정도라고 합니다.

혼인 날짜는 보통 남자의 아버지의 권한에 속해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이 다 준비된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아들을 신부에게로 보내게 되며,

그 때가 언제인지는 신랑도 모르고 신부도 모름니다.

신부도 그 때를 묻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이 다 준비되면

곧 신랑이 혼인잔치를 위해 데리러 올 것이라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신부는 언제든지 신랑이 데리러 오기만 하면

즉시로 떠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신랑의 도착 시간이 종종 한밤중이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결혼을 앞두고 이제 신랑이 신부를 맞으러 신부의 집으로 오게 되는데

신랑이 신부의 집에 도착하게 되면 신랑의 들러리들이 쇼파르(뿔나팔)을 불어대며

신랑이 왔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큰 소리로 외칩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6)

신부 들러리들은 등불을 들고 신랑행렬을 맞이합니다.

이 때 오래 기다리려면 등불에 사용할 많은 기름이 필요하게 되는데

오늘 본문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 등불을 밝히기 위한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 낭패를 당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가 무엇입니까?

제가 얼마 저녁 때 서울에서 황당한 일을 당했습니다.

운전경력 30년 만에 처음으로 신호위반 범칙금과 벌점을 먹었습니다.

어스름한 저녁이었는데 좌회전시에 유턴을 한 것이 죄였습니다.

보통 좌회전과 유턴은 동시 신호인데 그곳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황당하고 억울하지만 모르고 했다고 죄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세 교회 수도사들에게 7대 죄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컨대 교만, 시기, 분노, 나태(게으름), 탐욕, 식탐, 정욕입니다.

나태 즉 게으름도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태와 가장 가까운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잠을 자서는 안 될 때 잠을 자는 것입니다.

군인에 경계를 잘 못하면 그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지 않고 영적인 잠을 자는 것은 죄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와 정혼한 신부입니다.

정혼한 신부가 어떻게 결혼식 날 나태하게 잠을 잘 수가 있습니까?

우리 모두 정결함과 거룩함으로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할까요?

둘째, 영적 잠을 자는 것은 직무유기이기 때문입니다.

 

25장 달란트 비유에서 주님은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 이렇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26)‘

주님은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악하고 게으른 종어떻게 하십니까?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르 갊이 있으리라 (30)’

악하고 게으른 종은 하나님의 일을 게을리 했기 때문에 내 쫓김을 당합니다.

그러면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왜 악하고 게으른 종일까요?

그것은 (투자)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래 게으름이란 단어는 헬라어 <아케이디아>에서 온 말입니다.

(no-아니다)+키도스(care-돌보다)는 뜻으로 <돌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게으름은 1차적으로 자기를 돌보지 않는 것입니다.(자기관리 결여)

2차적으로는 자기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안일하고 나태한 사람이 자기 본분을 다 할 수 있을까요?

안일하고 게으른 농부가 풍년을 맛볼 수 있을까요?

그것은 넌센스입니다.

영적으로 잠자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잠을 자는 사람이 직분을 성실히 충성되게 수행할 수 없습니다.

사사시대 엘리제사장이 그랬고(삼상3-4),

이스라엘 왕국을 완성한 다윗이 그랬습니다.(삼하11)

엘리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그 영광스러운 직분을 소홀히 했습니다.

그는 성전관리(법궤관리)를 소홀히 함으로 직무를 유기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극악한 두 아들들에게 법궤를 관리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입니까?

엘리 제사장은 나이가 들어 눈이 어두웠습니다.

하지만 육신의 눈이 어두운 것보다 더 큰 죄는 영적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사무엘하11장 시작하는 부분을 읽겠습니다.

1.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2.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성경은 다윗이 침상에서 일어난 시각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녁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게으름은 어떤 특정한 사람만이 범하는 죄는 아닙니다.

당대 하나님이 인정한 최고의 왕 다윗도 게으름이란 사단의 간계에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왕의 직무를 다하지 않고 범죄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은 영적 잠을 잤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신부 들러리들에게 등불을 들고 신랑행렬을 맞는 일은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일입니다.

이 때 오래 등불을 사용하려면 많은 기름이 필요한데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등불을 등히기 위한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3-5)

게다가 신랑이 더디 옴으로 졸며 잠을 잤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

그것은 충성된 종의 직무를 다하기 위함입니다.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 맡은 바 직무를 다하는 충성된 주의 제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할까요?

셋째, 영적 잠을 자는 것은 영적 사망을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해(2016) 717일에는 영동고속도로 봉평 터널 입구에서 5중 추돌 사고로

20대 여성 4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38이 다치는 끔찍한 사고가 났습니다.

지난 511일에는 영동고속도로 둔내터널 인근에서 졸음운전으로 4명을 숨지게 하고 4명의 부상자를 냈습니다.

지난79일에는 경부고속도로 양재나들목 인근에서 졸음운전으로 7중 추돌사고를 내서

승용차의 50대 운전자 부부가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2) 오후 천안~논산고속도로 하행선 정안휴게소 부근에서 8중 연쇄 추돌 사고가 발생 40대 부부가 숨지고 9명이 부상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모든 사고의 원인이 졸음 운전이었다는 것입니다.

졸음운전은 죽음이라는 것을 알며서 왜 이런 불상사가 계속 일어날까요?

졸음은 생리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운전자의 방심 때문입니다.

이 방심이 졸음을 유발했고 끝내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대한 메시지를 하셨습니다.(24)

29.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4.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그런데 2천년이 지난 오늘도 주님은 오지 않으셨습니다.

2천년 전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13:11)

하지만 2천이 지난 지금 주님은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2천년 전 사도요한은 예수님께서 <속히 오리라>고 예언했습니다.

3: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지만 <속히 오리라>하신 예수님은 20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안타깝지만 그래서 오늘 날 성도들의 영적 긴장이 이렇게 무뎌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과 연결이 되지 않습니까?

1.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5.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잤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미련한 다섯 처녀들 누구입니까?

바로 오늘 날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다시 본문 11-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1.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예수님께서 이 예화를 하신 것은

영적 잠을 자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열 처녀를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로 구분하신 것은

예수님의 재림 때 어린양의 혼인 잔치(19:7-8)에 들어갈 자와 버림받은 자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지금 우리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이런 모습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사실 오늘 이 메시지를 하게 된 1차적 이유는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함입니다.

물론 여러분과 함께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적 잠을 자는 것은 영적 사망을 가져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항상 영적으로 깨어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2천년 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을 돌아보겠습니다.

26: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이제는 자고 쉬라!-

저는 이 마지막 말씀이 정말 가슴이 아프고 짠합니다.

제자들은 그 한 시간을 주님과 함께 깨어 있을 수 없었을까요?

안타깝지만 아마 저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명하라는 하나님의 특명을 받았지만

이를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도망하다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대풍으로 요나가 탄 배가 깨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장은 요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는 자여 어찜이뇨?(1:1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주님은 우리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