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사명자로 살라! (욘1:1-10)

새벽지기1 2017. 9. 3. 08:35


사명자로 살라!

(1:1-10)


서론

오늘 말씀은 요나서입니다.

요나서의 시대적 배경은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BC722) 60년경입니다.

이 시기는 북이스라엘 최대 융성기로 앗시리아가 초강대국으로 발돋움 하던 여로보암2세 통치 기간입니다.

북이스라엘에 살던 요나는 죄악이 극에 달했던 앗시리아 수도 니느웨에 보냄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본문 2절에 나와 있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요나는 북이스라엘의 원수 니느웨이 회개를 선포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요나는 하나님의 그 명령에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내용입니다.

 

요나서는 두 주제가 있습니다.

대 주제하나님의 차별 없는 사랑과 민족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면 살리라!’입니다.

이것은 요나서의 기록목적이기도 합니다.

소 주제소명자의 자세입니다.

요나서는 요나가 왜 불순종했는지 또 순종하게 되는지 그 이유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요나서를 통해 우리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본론

요나서를 통해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에로의 부르심(1차적 부르심)입니다.

하나는 제자(사역)로의 부르심(2차적 부르심)입니다.

모든 성도는 1차적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2차적 부르심을 받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은 2차적 부르심을 깨닫지 못하거나 외면합니다.

성경에는 제자라는 단어가 있고 사도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제자;-마르테스=기독교 공동체에 속한 모든 크리츠챤에게 적용되는 말입니다.

사도;-아포스 톨로스=파송된자라는 뜻으로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크리스찬에게는 누구나 보내진 곳이 있습니다.

요나는 앗수르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열방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언더우드 아펜젤러등은 조선에 보냄을 받은 분들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우리는 캠퍼스에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온전히 순종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순종의 세 가지 유형이 나옵니다.

하나는 모세형(변명형)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디안 광야에 있던 모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꿀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것입니다.

그 때 모세는 이렇게 반응합니다.

내가 누군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냅니까?(3:11)

그의 이름이 물으시면 어떻게 합니까?(3:13)

그것을 어떻게 믿느냐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4:1)

하나님! 저는 본래 말이 능치 못한자(말 재주가 없는 사람)입니다(4:10)

주여! (아무래도 저는 안 되겠습니다)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4:13)

이렇게 변명을 계속하던 모세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출애굽기 4: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제서야 모세는 순종합니다.

여러분은 결코 모세형 인간이 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는 이사야형(자발적 순종형)입니다.

이사야형은 즉각 순종형입니다.

이사야선지자는 영적 암흑기 남 유다의 선지자였습니다.

당시 남유다의 죄악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이 때 이사야가 하나님 앞에 나갑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6:8)”

그렇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을 자발적 순종형이라고 부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바칠 때 그랬고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에서 그랬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저와 여러분은 모두 이런 자발적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 하나는 (오늘) 요나형입니다.

요나형은 다른 말로 도피형입니다.

오늘 본문1-3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1.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3.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도망쳤던 요나!’

하지만 요나는 결코 도망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요나는 이미 하나님이 손에 잡힌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 넣어서까지 소명을 완수하게 만드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3:1-2)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갑니다.

그리고 니느웨 백성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마침내 니느웨 백성은 왕부터 가축들까지 회개하고 구원을 얻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미적거리던 모세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니느웨에 가기 싫어 도망하던 요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모두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나서를 통해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둘째,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요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앗수르에 대한 요나의 민족 감정 때문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앗수르는 우리의 일본과 같은 나라입니다.

그 만큼 민족 감정이 깊은 나라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분명히 알았던 사람입니다.

요나는-누구든지 회개하면 돌이키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니느웨가 멸망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앗수르를 구원하는 것이 싫어서 도망하려 했던 것입니다.

 

사역하면서 힘든 때가 언젠지 압니까?

그것은 대화중에 내 생각에는이라고 말하면서 자꾸 고집을 부리는 사람입니다.

바로 오늘 요나가 그랬습니다.

(요나) 생각에는 앗수르(니느웨)가 멸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앗수르는 포악한 나라입니다.

우리 민족 뿐 아니라 주변 많은 나라들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우리 민족을 수없이 침공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아닙니까?

반드시 앗수르는 멸망해야 합니다.

적어도 저는 앗수르에는 못갑니다.

니느웨가 회개하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저들을 용서해 주실텐데 저는 절대 그꼴 못봄니다.

그래서 못가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을 보겠습니다.(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요나서3:5-7말씀을 읽겠습니다.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7.왕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10.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는 앗수르가 멸망하기를 바랐지만 하나님은 구원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온전히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항상 기도하는 것, 항상 감사하는 것은 마땅히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5:16-18)

복음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선한 일을 하다가 고난 받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벧전3:17)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것보다 나으니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성경말씀 전체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요나는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전을 바라보는 삶을 산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앗수르가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으로 오해했습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도 사랑하시고 우리도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토록 미워하는 일본 백성들도 사랑하십니다.

군인은 지휘관의 의도를 명확히 알아야 전장에서 승리할 수 있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주의 제자는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분명히 알고 행동하는 제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나서를 통해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셋째, 성령에 터치하심에 민감하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요나가 왜 니느웨에 가지 않고 도망했는지 말씀드렸습니다.

참고로 요나서 41-2절을 읽겠습니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이것이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한 이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도망치는 요나를 어떻게 다루셨을까요?

3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 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하나님이 부르심에 도망간 적 없습니까?

담임목사가 교사로 찬양대로 섬기라고 하는데 도망간 적은 없습니까?

혹시 지금 DFC 도망가려고 앞뒤 재고 있는 사람있습니까?

요나는 지금 동망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 도망자를 어떻게 다루는지 보겠습니다.

4 여호와께서 큰 바람(준비)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대풍1:4선장의 손1:6제비1:7큰 물고기1:17)

큰 바람을 준비했다는 말은 태풍을 불게 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대풍을 통해 배가 깨질 정도로 흔드셨습니다.

5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대풍의 목적은 오직 다시스로 가는 요나가 탄 그 배를 타킷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요나를 터치(깨우신 것)하신 것입니다.

6 선장(의 손)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대풍에 이어 이번에는 선장의 손을 통해 요나를 깨웁니다.

그리고 우상을 섬기는 그들이 제비를 뽑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하나님(성령)의 터치하십입니다.

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 보자 하고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

이는 하나님의 손가락이 요나를 정확히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정도 되면 하나님이 두렵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손(대풍, 선장의 손, 제비) 정확하게 요나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9 (요나)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사람이다)로라 하고

10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하니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선원들의 말이 아닙니다.

바로 선원들의 입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요나는 원래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상황을 보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배에서 끓어 내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나가 선원들에게 말합니다.

12.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선원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져 버립니다.

15.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전율입니다.

그 후 하나님은 요나를 큰 물고기를 통해 요나를 뭍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17절에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라는 구절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그 후에 요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3: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1:2)


성경 조감하면서 깨닫는 것이 참 많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성경은 기록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의 불신앙이 아니었으면 민수기의 반은 기록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늘 요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나가 1장에서 순종했더라면 요나서1-2장은 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불순종과 불신앙은 성도 스스로 고난의 삶을 자초하게 됩니다.

 

요나는 앗수르가 멸망하기를 바랐던 것은

요나가 하나님의 뜻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말씀드렸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 이외에도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상황을 통해서-상황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해당합니다.

상식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합니다.

영적 리더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합니다.

중요한 것은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영적으로 민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민감하여 하나님의 뜻을 신속히 분멸하고 순종하는 제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를 캠퍼스에 부르신 것도

우리를 제자로 부르신 것도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바랍니다.

 

엊그제 한 형제와 상담을 했습니다.

형제! 이제 무너져 가는 캠퍼스를 누군가 책임져야 하지 않겠는가?

형제처럼 하나님을 특심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헌신해야 합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의 뒤를 이은 것처럼

사도 바울이 디모데의 뒤를 이어 제자 사역에 힘썼던 것처럼

형제도 이제 선배 가지장들의 뒤를 이어 캠퍼스를 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좀더 적극적으로 헌신했으면 좋겠다.“

했더니 형제가 하는 말!

! 좀더 생각해보고, 또 담임목사님께 말씀드려보고 결정하겠습니다.”고 했습니다.

그 때 내가 무어라 말했는지 아십니까?

목사님과 상의 하세요!”였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자네는 이제 자기 결정권이 있는 사람이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충격입니까?

여러분! 충격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그 형제의 반응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목사님! 알겠습니다. 캠퍼스 사역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런 것을 보고 바로 핵 사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겠다는데 왜 부모님께 묻습니까? 대학생이...

캠퍼스 사역에 열심히 하겠다는 것을 왜 담임목사님께 묻습니까? 주님의 제자가

명색이 성인이고 대학생인데 왜 혼자 결정하지 못합니까?

우리는 모두 스스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순종한 <자기 결정권자들>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하나님의 음성에만 순종하십시오.

그러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분별해야 하겠지요?

그 훈련이 바로 말씀 훈련입니다.

그 훈련이 바로 기도 훈련입니다.

이제 새 학기 2주차를 맞습니다.

2학기에는 더욱 성장하고 성숙한 제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