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남준목사

독생자를 보내심은 (요일4:9)

새벽지기1 2017. 8. 31. 06:42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4:9)

 

I. 본문해설

 

사도 요한은 성도의 마땅한 삶이 사랑의 생활임을 가르쳤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도들이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가야 하는 모든 삶의 원천이 하나님의 사랑에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별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들이기에 사랑을 받은 그대로 이웃과 형제들에게 그 사랑을 베풀며 자신도 그 사랑 안에서 하나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명백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기 예수로 이 세상에 오신 성탄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성탄이 우리에게 왜 기쁜 소식이 되는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II.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A. 전에도 있었던 사랑

 

오늘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하지만 이미 전에도 있었던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셨을 때에도 당신의 지식과 사랑으로 만드셨습니다. 사람을 빚으시고 그에게 영혼을 주셔서 당신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고 난 뒤에도 탁월하신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짓지 아니하였더라면 인간에게 주실 수 없었던 더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셔서 더 탁월한 계시의 빛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심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붙들고 계시다는 증거를 나타내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이스라엘을 위함이 아니요, 이스라엘을 통해 온 인류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증언 없이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단 1년도 계속된 적이 없었으니 이미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구약 속에도 매우 명백하였던 것입니다.

 

B. 이렇게 나타난 사랑

 

그러나 이후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예전에 나타난 사랑의 밝기에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도 어두운 세상에서는 밝은 불빛이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내려오심으로 예전에 나타난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한 빛을 우리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기적을 베풀기도 하였고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주기도 하였습니다. 진리의 말씀과 커다란 축복으로 다가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바람 같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지 희미하게만 알던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육신의 눈으로 보게 만들어 주셨고 믿음을 촉진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을 수 없이 읽은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없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마주치고 그 분의 인격을 경험하고 그 분의 섬김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은 그 분의 인격 안에 녹아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기 예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성탄이라면, 이 성탄은 바로 믿어지지 않는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이 우리 위에 계셨다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계셨을 때에는 우리 인류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이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라는 임마누엘이었습니다. 이제 그분은 가고 없으셔서 우리는 그분을 만지거나 보거나 냄새를 맡음으로 그분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예수님을 만지고 본 사람보다 생생하게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알게 하셨으니 하나는 그분의 기록을 성경으로 남겨 놓으셨으며 또 하나는 그 분이 약속하신 바와 같이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의심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성탄절에 우리는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경험합니다. 기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혼의 죽음, 곧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목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버리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고, 또 한편으로는 일평생 하나님이지만 그의 하나님 되심을 사람의 성품 밑에 감추셨습니다. 그래서 참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그리고 참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어린아이처럼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본보기를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III. 우리를 살리시려고

 

A. 영적죽음과 인간의 비참

 

하나님이시며 죄가 하나도 없으신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멸시와 박해를 받으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심으로 죽으신 것이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사도는 우리를 살리려고 예수님이 죽으셨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전에는 죽어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차마 죽어있는 우리를 보실 수 없어서 우리를 살리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죽음과 인간의 비참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육체의 죽음은 생명의 모든 기능이 멈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육체는 움직일 수 없고 활동할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죽음은 육체의 죽음과 다릅니다. 영혼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나 하나님에 의해 불멸하도록 지정되었습니다. 영혼의 죽음을 성경은 하나님의 생명이 결핍되어 있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육체는 죽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지만 영혼은 살아 있을 때에는 생명의 행실을, 죽어있을 때에는 죽음의 행실을 합니다. 그래서 영혼은 오히려 죽어 있을 때 활발하게 움직이며 온갖 더러운 죄들을 행하고 악을 양산해 냅니다. 미움, 시기, 다툼, 질투, 불의, 음란, 시기, 분쟁, 이 모든 더러운 것들이 바로 죽어있는 영혼들이 행하는 일들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비참에서 절대로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B.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생명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불행의 원인이 가난, 질병, 무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죄라는 질병이 밖으로 나타난 현상일 뿐입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불행은 죄라고 하는 근본적인 질병 때문이고 영혼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선행으로도, 종교로도, 심지어는 제사로도, 율법으로도 다른 어떤 것으로도 결코 혼의 죽음의 원인인 죄를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 오셨고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이 그의 영혼의 새 생명을 주시기로 약속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인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믿는 사람들마다 하나님 앞에 지은 많은 죄들을 하나님이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죽었던 영혼을 살아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성령을 그 사람의 마음속에 보내셔서 그로 하여금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영혼에 새로운 생명을 부어주십니다. 이 생명에 힘입어서 죽은 자와 방불한 삶을 살던 모든 사람들의 인격과 삶을 고치십니다. 예전에는 죄인의 신분이었고,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전에는 마음과 영혼이 죄와 사망의 사슬에 매여 있어서 자신의 힘으로는 모든 죄와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힘입어 구원받은 사람들은 당신의 생명으로 새 삶을 살아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인들조차도 희미하게 밖에 모르거나 혹은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뜻도 모르고 먹고 마시게 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이렇게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절단해 놓는 모든 죄와 사망의 사슬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다시 그 하나님의 생명을 힘입어 살도록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IV.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그리스도께서 아기 예수로 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같은 인간을 죽음에서 구원하여 생명 주시기 위해 자기 아들 보내신 하나님 사랑 때문에 우리는 기쁨으로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그 분이 말구유 위에 오신 이 탄생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의 마음에 눈물이 흐릅니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죄 때문에 흘리는 눈물이요, 또 한편으로는 주님의 구원 때문에 흘리는 기쁨의 눈물입니다. 이 성탄의 두 면을 함께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구원받은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만약 아직도 주님을 모르고 복음과 원수 된 체 살고 있었다면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축제처럼 먹고 마시다 지낼 성탄절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과 복음을 알게 하셔서 간절히 주님을 경배하게 하셨고 거미줄 같은 믿음이나마 주님을 붙들고 의지하며 살게 될 마음을 갖게 해 주셨다는 사실에 대해 주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탄절은 우리의 마음속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도록 외치는 커다란 나팔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오신 성탄절에 겸손하게 우리 위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흠 없으신 아기 예수는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셔야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구원받은 우리의 인생이 내 것이 아니요, 우리 예수님의 것임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평생 사는 날 동안 우리 중 아무도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대로 살아서 티끌 같은 우리들이 이 세상에 잠시 살아 있는 것이 그래도 주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가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가득차게 되는 일에 티끌만큼이라도 이바지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의 눈을 들어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리고 우리의 온 마음을 높여 아기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주님을 기뻐합시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드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를 아끼지 않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 없는 사람들, 하나님의 사랑 모르는 사람들, 그 낮은 자리에까지 내려가고 더 내려가서 우리 주님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