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사랑과 순종 (에베소서 5:22-23)

새벽지기1 2017. 7. 28. 06:52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십시오.
부부관계를 통해 예수님을 깊이 알아 가십시오.
예수님과 더불어 사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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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결혼이야기로 시작해서 결혼이야기로 끝납니다. 천지창조의 클라이맥스는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둘을 하나로 만든 결혼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마치 신랑이 신부를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마치 혼인잔치와 같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혼은 행복 이상입니다. 하나님은 결혼을 인간의 행복만을 위해 만들지 않으시고  결혼을 통해서 의미를 보여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결혼

 

결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인이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지 간에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과 친밀한 관계를 보여주시기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너는 여호와의 손에서 화려한 면류관이 되고 우리 하나님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될 것이다.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여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네 땅을 ‘쓸쓸한 여인’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오직 너를 ‘하나님께서 좋아하는 여인’이라고 부르고 네 땅을 ‘결혼한 여인’이라고 부를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를 좋아하시고 네 땅을 신부로 맞는 신랑이 돼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총각이 처녀와 결혼하듯 너를 지으신 분이 너와 결혼하실 것이다.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듯 네 하나님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다”(사 62:3~5).


우리가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는 신랑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이 땅에서만 존재하는 제도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없습니다. 결혼은 인간의 행복과 존재를 위해서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보여주시는 예표요, 모형입니다. 또한 결혼은 예언적 제도입니다. 결혼 안에 감추어진 비밀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비밀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연합해 둘이 한 육체가 될 것이다. 이 비밀이 큽니다. 나는 지금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32절).


미처 깨닫지 못한 비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비밀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비밀입니다. 32절을 보십시오. 결혼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해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맥상으로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이 말씀의 의미는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결혼보다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가 더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결혼의 의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결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21절).


이 말씀은 성령 충만한 상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함은 초월적이고 신비한 경험을 혼자 경험할 수도 있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성령 충만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야합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를 경외하고 서로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주어진 명령

 

그리스도를 경외하고 서로 복종해야 될 관계 중에 가장 먼저 언급된 부분이 부부관계입니다. 그 다음이 부모와 자녀,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 관계, 직장생활에서 성령 충만한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성령 충만 한 모습은 어디서 평가 됩니까. 바로 가정과 부부관계입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인지를 가장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부부관계입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으로 성령 충만함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관계와 부모자녀관계, 일터에서의 관계로 성령 충만함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성령 충만한지를 가늠하고 싶다면 배우자와 자녀에게 질문해보면 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보면 아내와 남편에게 각기 다른 명령을 하고 있지만 결론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하십니다. 부부관계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순종하듯 하십시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몸의 구주십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아내들도 모든 일에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22~24절).


 아내들에게 주어진 명령은 순종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되 주께 순종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되심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남녀평등을 외치는 여성운동가들에게는 이 말씀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왜 남편이 아내의 머리인가, 왜 아내가 남편에게 주께 하듯 순종해야 하는가? 등의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 로마제국은 여성을 평가절하하고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여성을 무시했던 시대였습니다. 세네카라는 사람은 당시의 모습을 ‘여자는 이혼당하기 위해 결혼했고, 결혼하기 위해서 이혼당하는 시대였다’고 표현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상황이 불편해서 하나님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제정할 때의 의미를 다시 설명했습니다.

 

가정의 머리 남편

 

남자와 여자는 동등합니다. 하나님은 여자를 돕는 배필로 창조하셨습니다.


돕는 배필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돕는 배필이라는 뜻을 가진 ‘에젤’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은 나의 돕는 자이시다, 하나님은 나의 에젤이시다’라는 표현에도 쓰였습니다. 만약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한 의미로 에젤이라는 단어를 썼다면 하나님이 우리보다 열등하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게 맞습니까. 에젤의 의미는 돕는 자가 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에젤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절대적이고 반드시 있어야 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가치나 능력 등 모든 면에서 동등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역할이 다른 것입니다.


여자의 역할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인 것처럼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받아들여야합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리더십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근원입니다. 리더십은 가정에 일어나는 모든 일의 최종적인 책임, 일차적 책임이 남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모든 것을 보호하고 공급하고, 인도해야 합니다.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영적인 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책임이 남편에게 있습니다. 또 근원이라는 의미는 사랑의 근원을 의미합니다. 가정에 있어야하는 모든 사랑, 평화, 기쁨의 근원이 남편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자에게 가정의 리더십이자 사랑의 근원인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부부관계 깨뜨리는 죄

 

순종하라는 명령은 남편이 말하는 모든 것에 동의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따르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남편의 뜻을 우선시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죄 짓는 일까지 동의하라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순종이 어떻습니까.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이 강압적입니까. 예수님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강제로 하라고 요구하시는 분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우리를 죽기까지 섬겨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에 순종으로 응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


 하나님이 아내의 역할을 순종으로 제한한 것이 아닙니다. 아내의 많은 덕목 중에서 남편에 대한 최고의 존경과 사랑의 표현이 순종으로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죄가 결혼관계 안으로 들어오면 남편의 머리됨과 순종의 관계가 깨진다는 것입니다.


“여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임신의 수고로움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네가 괴로움속에서 자식을 낳을 것이다. 너는 남편을 지배하려 하나 그가 너를 다스릴 것이다”(창 2:16).
타락의 결과입니다. 아내는 임신의 수고, 애를 낳는 고통이 더해졌습니다. 또 남편을 지배하려고 하는데 오히려 지배를 당하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배하려는 갈등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죄는 남편의 따뜻하고 겸손한 사랑에서 나오는 머리됨과 아내를 보호하고 헌신하는 머리됨을 무너뜨립니다. 또한 아내는 남편의 질서를 따르는 순종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남편에게 주어진 명령

 

만약 오늘 우리 가정에 예수님이 찾아오신다면 가장 먼저 누구를 찾으실까요. 바로 남편이요, 아버지입니다. 이것이 머리됨의 증거입니다. 가정의 머리된 남편에게 주어진 명령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겠습니다.


“남편들이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심같이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말씀을 통해 교회를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해서 거룩하게 하시고 티나 주름이나 다른 지저분한 것들이 없이 교회를 자기 앞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서도록 해서 오직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몸을 사랑하듯이 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미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을 먹이고 보살피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하시듯 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25~30절). 아내의 순종보다 남편의 사랑에 대해서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남편에게 주신 명령은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또 예수님의 태도를 본받아야한다고 세 번이나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하나님이 남편에게 요구하는 기준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사람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또 남편이 아내를 ‘자기를 사랑하듯 사랑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누구나 자기를 사랑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몸입니다.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한 몸입니다. 
타락 이후 아담의 언어가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추궁하자 그가 하와를 어떻게 표현했습니까. ‘하나님이 만들어서 준 이 여자’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몸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자신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가 싸우더라도 두 손을 마주잡고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에 뼈라는 생각을 잊지 말고 싸워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남편이 아내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심과 같이 사랑한다면 그런 남편에게 순종하지 못 할 아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순종은 매운 쉬운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아내가 남편에게 예수님께 하듯 순종하지 못할까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모르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순종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주께 드리는 사랑은 매우 쉽고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남편대한 사랑이 가볍기 때문입니다. 남편에 대한  사랑이 예수님에 대한 사랑처럼 무거울수록 아내의 사랑은 쉽고 가벼워집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연습
 
남편이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되는지를 세 단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25절에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는 ‘희생’, 26절에 교회를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는 ‘거룩’,  27절에 ‘교회를 자기 앞에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서도록 만들어주신’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시고, 물과 말씀으로 깨끗하게 씻어주셨습니다. 나아가 영광스러운 신부의 모습으로 그리스도 앞에 서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남편은 아내의 허물과 연약함을 씻어서 시간이 흘러갈수록 영광스러운 아내가 되도록 만들어줍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아내는 더욱 정결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내에게 주어지는 명령이 무겁습니까. 아니면 남편에게 주어진 명령이 무겁습니까.  남편에게 주어지는 명령이 훨씬 무겁습니다. 남편 여러분, 머리됨만을 즐기지 마십시오. 가정의 머리로서의 책임,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과 희생이 있어야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내 여러분, 남편에 대한 순종을 무거운 짐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사랑을 주는 남편에게 하는 순종은 매우 쉽고 가볍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사랑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우리의 남편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셨고, 우리를 어떻게 거룩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주셨는지, 영광스런 신부로 거듭나게 하신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의 남편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을 이 땅에서 부부관계를 통해 연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알아가는 부부 
 
남편이 아내를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려면 예수님의 사랑을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어떻게 말씀을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아내도 그리스도께 하듯 남편에게 순종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얼마나 큰 사랑을 베푸셨는지를 알아야합니다. 진정한 부부관계는 예수님을 얼마나 알아가고 있는지에 달려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통해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사는 연습을 부부관계를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을 미리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 삶을 맛보고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축복이 여러분의 부부관계를 통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가정에 큰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십시오.
부부관계를 통해 예수님을 깊이 알아 가십시오.
예수님과 더불어 사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죄로 인해 깨어진  
가정과 부부관계를 올려 드립니다. 
영원한 결혼의 축복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결혼이라는 제도를 허락하셨습니다. 
그 신령한 축복을 날마다 경험하는 가정이 되도록,

부부가 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남편은 머리됨의 희생과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책임을 다하게 하옵시고,  
아내는 주께 하듯 순종하는 가정이 되도록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일러스트 윤종은 janehom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