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박진호컬럼

어떻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가?(2)

새벽지기1 2017. 7. 18. 07:08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뜻은?

바울이 하나님께 “능력을 받아” 대신에 그분 “안에서”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인가? 앞에서 말한 대로 당시 상황과 문맥에 비추어보면 알 수 있다. 우선 그가 빌립보 교회에서 보내 준 선교헌금에 감사하는 인사에 이어서 한 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10절)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오랜 만에 선물을 받자, 그 동안 너희로부터 물질적 도움이 끊겼던 이유가 단지 너희에게 적당한 기회가 없었을 뿐 그럴 마음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격려한 것이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15절) 그가 이전에 마게도냐를 떠나 아가야로 갈 때도 빌립보 교회만 도움을 주었다고 다시 한 번 칭찬하고 있다. 본문은 이 두 구절 사이에 위치하고 있기에 당연히 재물에 관련해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럼 무엇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본문 바로 앞에 그는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했다. 아무리 가난해도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오히려 감사하며 검소하게 살아가는 마음과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전에 이미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11절)고 했기에 단순히 근검절약의 미덕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밝혔다.

또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12절)라고도 했다. 물론 바울이 풍부할 때에 흥청망청 즐겼을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고 절약저축하여 가난할 때를 대비했다는 뜻도 아니다. 그런 정도의 절제라면 불신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구태여 능력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배워야 할 비결이 될 수 없다.

재차 강조하지만 바울은 이 서신을 오랜 만에 보내온 헌금과 관련해 감옥 안에서 쓰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넓게는 빌립보교회를 떠나올 때부터 지금까지, 좁게는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의, 어느 경우가 되었든 그 뜻은 동일하지만, 자기의 금전적 사정과 연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본문의 “궁핍과 풍부”는 일차적으로 선교 헌금이 끊겼을 때와 많아졌을 때를 의미한다. 그래서 마게도냐를 떠나 아가야로 갈 때에 빌립보 교회만 헌금하는 바람에 손수 장막 만드는 일로 돈을 벌어가면서 생활비와 선교비로 보충했다는 것이다. 또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에선 먹고 마시는 일에 돈이 필요 없으니 따로 근검절약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외부 헌금이 많건 적건, 장막 만들어 파는 일이 잘 되든 부진하든, 범사에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가 충만하더라는 것이다. 돈의 많고 적음이 자신의 삶과 사역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으며, 그렇다고 굶어 병들거나 넘쳐서 사치하는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알기 쉽게 말해 많이 생기면 많이 생기는 대로 그만한 돈이 꼭 필요한 사역이 더 생겼고, 부족하다고 해서 현재 수행하고 있는 사역에 장애가 생기지 않더라는 뜻이다. 그가 자족(自足)하는 비결은 아무리 어려워도 감사하며 참아낸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일은 현실적 상황, 특별히 사역자의 재정적 형편과 관계없이 당신께서 다 알아서 하신다는 진리를 절감했기에 자신은 그분께 순종하며 사역에만 매진했던 것이다. 자기 소명에 진정으로 충성하고 있으면 하나님은 필요한 모든 자원과 사람과 지혜를 충당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어떤 형편에 처하든 그분과의 관계만 온전히 유지하면서 지난 일은 잊고 오직 앞만 보고 달려가는 비결을 배웠던 것이다. 바울에게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소명에 충성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능력으로 주신 것은 빌립보 교회에서 헌금이 당분간 끊겨서 가난해진 것이다. 기도하여 어떤 일을 이뤄내는 힘을 받은 것이나, 하나님의 능력만 빌리려 한 것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빌립보 교회 헌금이 없었다 해도 그는 잘 지내며 하나님 일도 아무 차질 없이 진행되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그가 빌립보 교회에 감사하고 칭찬한 근거는 한 가지, “그러나(나는 너희 헌금 없이도 잘 지내지만)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14절)는 뜻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세상의 수단에 의지해서 하시지 않는다. 신자가 헌금했기에 당신의 일에 참예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일에 기꺼이 참예하기 위해 헌금하는 것이다. 하나님 쪽에서도 헌금이 들어와야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신자가 당신의 일에 참예하겠다는 믿음과 실천을 보시고 당신의 일을 하신다. 또 신자의 믿음과 헌신을 기쁘게 받으시고, 바친 헌금을 충분히 활용하여 놀랄만한 섭리로 당신의 일을 드러나게 하심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