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참회의 강도! 참회의 태도! (시6편)

새벽지기1 2017. 7. 7. 23:09


본문


1.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4.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5.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6.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

8.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9.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10.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서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난 주 수련회와 전도 순례를 마쳤습니다.

방학 잘 보내고 있지요?

우리는 지금 영적 하프타임을 갖는 중입니다.

후회 없는 방학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시편 6편은 시편 전체에 등장하는 다윗의 7개의 참회시 중 하나입니다.

다윗의 참회시는 6323851102130143장입니다.

학자들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 우리아를 살해한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어떤 범죄를 행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죄의 종류가 아니라 범죄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3:9)”

하지만 죄의 강도는 모두 다릅니다.

단순 실수와 단순 범죄자가 있는가 하면 극악 범죄자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땠을까요?

엄밀히 다윗은 극악 범죄자였습니다.

간통죄와 살인교사죄가 그 죄목이다.

다윗은 범죄 앞에 어떤 태도를 보였습니까!

다윗은 나단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질책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즉각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는 다윗을 통해 죄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반면교사를 삼고자 합니다.

 

본론


그러면 다윗은 어떤 참회의 태도를 가졌습니까?

첫째, 다윗의 참회에는 <떨림>이 있었습니다.(2-3)

 

2.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다윗은 뼈가 떨리고, 영혼도 떨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뼈가 떨리고 영혼이 떨리는 경우는 어떤 상태일까요?

뼈가 떨리고 영혼도 떨린다는 말은

그가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또 다른 단어는 바로 수척하였다는 단어입니다.

이는 극심한 심적 고통이 육체의 쇠약을 가져온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다윗이 왜 이렇게 수척할 정도로 마음의 고통을 지녀야 했을까요?

하나님이 두려워서 일까요?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가졌던 두렵고 떨리는 마음은 단순한 두려움과 공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배신한 자책의 마음이 더 컸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기름부음 받은 왕입니다.

그리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는 언약의 당사자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극악한 범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참회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신앙은 떨림입니다.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4:4)”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충성보다 봉서보다 헌신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그러면 거룩함은 무엇입니까?

거룩함은 세상과의 구별됨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성별됨>입니다.

거룩함의 내적 상태가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떨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4:8)

동시에 죄인에게 하나님은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떨림>입니다.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서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떤 참회의 태도를 가졌습니까?

둘째, 다윗의 참회에는 눈물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정보화시대 우리는 잃어버린 것이 많다눈물도 그 중 하나다

지난 시절, 우리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는 눈물을 흘렸다

우리의 눈물은 보통 동정, 연민, 슬픔, 그리움에서 비롯됐다

즐거움에는 환희의 눈물,이별과 고통 뒤에는 비애의 눈물이 따른다

한과 회오에는 회한의 눈물, 용서와 사랑에는 자비의 눈물이 같이 한다

많은 눈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회개의 눈물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에 약하신 분이다.

그분은 눈물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눈물을 흘리자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며 우리의 불의와 부정을 회개하며 눈물을 흘리자

오늘,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마음껏 울어보자>

이 분은 많은 눈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회개의 눈물이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회개의 눈물이 아름다울 리가 있겠습니까?

그 말은 회개하는 그 모습이 귀하다는 뜻이겠지요?

우리가 다윗을 위대하다고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왕들에게 무한 권력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거 왕들은 절대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왕은 어떤 여인도 취할 수 있고, 누구도 목숨을 취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범죄라고 여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이렇게 참회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참회의 태도를 보십시오.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6)

다윗은 눈물로 침상을 적실 만큼울며 회개했습니다.

다윗의 눈물에 요가 젖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회개는 어느 날 밤 일회성이 아니었습니다.

밤마다였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회개의 강도였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 여름수련회를 마쳤습니다.

매년 수련회 밤 집회는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몇 년 전 제가 수련회를 다녀와서 쓴 칼럼 한 부분을 읽겠습니다.

<어떤 지체는 가슴을 치며

어떤 지체는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들고

어떤 지체는 무름을 꿇고 두 손을 꼭 잡고 기도하기도 하는가 하면

어떤 지체는 양반 다리로 조용히 앉아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런가하면 어떤 지체는 후배의 손을 잡고 기도하기도 하고

어떤 지체는 가지원을 가슴에 안고 기도하는 아름다운 모습도 보인다.

오늘 기도 중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을 목격했다.

가지원의 등 뒤에서 어깨를 붙잡고 기도하는 한 가지장의 모습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가지장의 눈물이 가지원의 등을 흥건히(?) 적시고 있지 않은가!

순간 가슴이 찡하고 뭉클했다.

생각 같아서는 내가 그 눈물을 컵에 담고 싶다.

이 세상 그 어떤 보석 보다도 값 비싼 눈물!

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눈물을 사고 싶다.

바로 그 눈물이 필요한 시대다.>

그렇습니다. 눈물자체도 중요하지만 어떤 눈물이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회개의 눈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영혼사랑의 눈물입니다.

 

캠퍼스 사역 초기!

한 목사님의 책을 읽다가 감동받은 내용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키우고 싶다.

예수님하면 눈물이 핑돌고

예수님하면 목숨 바칠 각오가 되어있는

예수님하면 피가 뜨거워지는 사람

이 사람이 주님의 일을 할 사람들이다.

제자와 자녀를 위한 눈물! 눈물로 키운 자식은 문제아가 없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이 시대 우리의 눈물을 원하십니다.

그것이 참회의 눈물이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영혼사랑의 눈물이면 더욱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눈물로 가슴을 적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126:5-6)’


그러면 다윗은 어떤 참회의 태도를 가졌습니까?

셋째, 다윗의 참회에는 <통곡>있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눈물통곡과 상통하는 단어입니다.

사실 참회기도를 하면 누구나 눈물이 나고 통곡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눈물로 통회하는 자의 참회가 더욱 진실하겠지요.

다윗은 눈물로 참회했습니다.

그리고 통곡했습니다.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소리>를 들으셨도다”(8)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우리가 모두 통곡하며 참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누군가는 그럴게 해야 하겠지요.

이 말은 보통사람은 다윗과 같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다윗의 죄를 대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중죄를 지면 회개의 강도가 크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회개의 태도는 죄의 경중과 관계가 없습니다.

큰 죄든 작은 죄는 죄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회개는 죄의 강도와 비례한 것이 아니라

다윗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대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범죄 했다면 마땅히 참회해야 합니다.

눈물로 통곡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눈물과 통곡이 또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 민족과 교회의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우신 기록이 세 번 나옵니다.

그 중 하나가 누가복음 23:28입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 직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이 시대를 안타까워하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통곡이 필요합니다.

 

제가 수원에서 캠퍼스 사역을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21년 전입니다.

당시 군에서 전역해서 맨 처음 캠퍼스 사역을 시작 할 때

저는 거의 날마다 눈물로 사역했습니다.

꽃샘추위 속에 캠퍼스에 홀로 서있는 자신이 서러워서 울었고

아무리 외쳐도 반응 없는 지체들 때문에 울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생각나서 펑펑 울었었습니다.

당시 내가 캠퍼스에서 홀로 불렀던 찬송이 있습니다.

우리 오늘 눈물로 한 알의 씨앗을 심는다

굼 꿀수 없어 무너진 가슴에 저들의 푸른 꿈 다시 돋아나도록

우리 함께 땀흘려 소망의 길을 만든다.

내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던 저들 노래하며 달려갈 그길

그 날에 우리 보리라

새벽 이슬같은 저들 일어나

뜨거운 가슴 사랑의 손으로 이 땅 치유하며 행진할 때

오래 황폐하였던 이 땅 어디서나 순결한 꽃들 피어나고

푸른 의의 나무가 가득한 세상 우리 함께 보리라

나중에는 이것이 우리 수원지구의 주제곡이 되었으며

이 당시 흘린 눈물과 기도가 오늘의 수원지구가 되었습니다.

 

결론

 

성경은 다윗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열왕기상 15:5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나님은 다윗의 참회 기도를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참회의 강도는 참회의 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태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범죄한 백성은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나가야 합니다.

울며 통곡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범죄 하지 않도록 깨어 있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방학입니다.

이 방학에 시험 들지 않도록 깨어 경성하는 예수의 제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