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병선목사

말씀과 구원이 부요한 교회 (마13:44)

새벽지기1 2017. 3. 18. 07:30


말씀샘교회는 6년 전 3월 둘째 주일에 이 세상에 탄생했습니다. 설교는 넘치지만 들을 만한 설교를 찾기 힘든 시대, 시중에 몸을 해치는 유해음식이 많은 것처럼 성도들의 영적 건강을 해치는 유해설교가 많은 시대, 적잖은 성도들이 먹을 말씀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시대에 감히 진짜 말씀을 전하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듣고 행하는 교회, 말씀의 샘인 교회를 꿈꾸고 기도하며 말씀샘교회가 탄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회복시키고 살리는 능력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히4:12)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구비하게 한다’고 했습니다(딤후3:16-17). 정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온 세상을 창조하는 능력이고, 온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참으로 예리하고, 참으로 창조적이고, 참으로 능력이 있고, 참으로 심오하고, 참으로 탁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면 사람이 변하고, 인생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역사가 변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결코 무력하지 않아요. 하나님 말씀은 인생의 중심, 역사의 중심, 생명의 중심을 꿰뚫고 들어가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회복시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지금 교회 안에서 잘 들리지 않습니다. 교회마다 하나님 말씀을 설교한다고는 하는데 대부분이 삶의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허공만 맴돕니다. 말씀으로 성도들을 살리기보다는 말씀으로 성도들을 억압하고 가둡니다. 그래서 수많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기갈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기원전 7세기의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시대에 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매우 번영을 누리고 있었지만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에 여호와의 말씀의 기갈이 심하다고 탄식했습니다.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암8:11-13) 지금 한국교회도 똑같습니다. 이 교회 저 교회를 돌아다녀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수 없어서 수많은 성도들이 영적인 기갈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말씀샘교회는 진짜 말씀을 전하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듣고, 정직하게 전하고, 정직하게 행하는 교회를 꿈꾸며 출발했습니다. 진짜 말씀을 듣기 원하는 자, 진짜 말씀의 은혜를 갈망하는 한 사람에게라도 영혼의 양식을 줄 수 있다면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말씀샘교회를 창립했고, 지금까지 그 마음으로 달려왔습니다.

 

다행히도 하나님께서는 지난 6년 동안 말씀의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매 주일 예배 때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은혜, 생명의 양식을 공급받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사실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을 어떻게 듣고 해석하고 이해하느냐 입니다. 성경 말씀을 어떻게 듣고 해석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신앙의 색깔과 방향이 결정되고, 교회의 색깔과 방향이 결정됩니다. 목사가 성경 말씀을 어떻게 듣고 해석하고 이해느냐에 따라 목회의 모든 것이 영향을 받습니다. 신앙의 건강성과 교회의 건강성을 좌우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경 말씀을 어떻게 듣고 해석하고 이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말씀샘교회는 그동안 성경 말씀을 최대한 정직하게, 어떤 왜곡됨이나 뒤틀림 없이, 어떤 편견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최대한 정직하게 듣고 지혜롭게 해석하고 통합적으로 이해하려고 애써왔습니다. 말씀샘교회가 다른 교회와 차별성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성경 말씀을 듣는 귀가 달랐고, 성경 말씀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눈이 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듣고 해석하고 이해하는 귀와 눈이 달랐기 때문에 이런저런 것들이 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발견했겠지만 말씀샘교회는 성도들을 닦달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으로 생활하라고 요청했지 신앙생활을 닦달하지 않습니다. 이것 해라, 저것은 하지 마라며 율법적인 행위를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헌금을 강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말씀샘교회는 어떤 교회보다도 주일예배 참석률이 높습니다. 누가 얼마의 헌금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다들 최선을 다해서 헌금합니다. 주일 점심을 준비하는 일도 적잖이 힘든 일인데 불평 한 마디 없이 모두가 즐겁게 참여합니다. 성도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압니다. 정말 초라할 정도로 가난하지만 크게 부족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신앙의 방향이 대체로 건강하고 균형 잡혀 있습니다. 1년에 한 번씩은 다 같이 여행을 하면서 예배합니다. 사람이 적은 것이 좀 아쉽기는 합니다만 모일 때마다 반갑고 즐겁습니다.

 

여러분, 이 정도면 건강한 교회 아닙니까? 이 정도면 부요한 교회 아닙니까? 이 정도면 행복한 교회 아닙니까? 여러분,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뭡니까? 선교입니까? 구제입니까? 봉사입니까? 사회 개혁입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것, 성도들이 예배를 기다리는 것, 예배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말씀의 충격과 은혜에 사로잡혀 예배하는 것이야말로 복 중의 복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이 구원의 주요한 부분이고, 신앙생활의 중심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지난 월요일 수원노회 동부시찰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시잘장 목사님이 저에게 예배 설교를 부탁하셔서 주일날 했던 설교를 했습니다. 예배 후에 모 목사님이 그럽디다. 성도들이 참 훌륭하다고. 이렇게 수준 높은 설교를 매 주일 듣는 말씀샘교회 성도들 참 대단하다고. 예, 제가 감사하는 대목입니다. 재미있는 예화나 감동적인 간증 같은 것 하나 없는 설교, 오직 하나님 말씀에 깊이 천착하는 설교를 아멘으로 화답하며 귀 기울여 듣고 기뻐하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 저는 너무 감사합니다. 솔직히 성도 수가 좀 적다는 것 외에는 지금의 말씀샘교회에 하나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의 말씀샘교회를 한없이 소중하고 귀한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백 마디 설교를 듣는 것보다 한 마디라도 제대로 된 설교를 듣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믿습니다. 아이들에게 조금은 어려울 수 있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지금 듣는 말씀들이 영혼의 양약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신앙의 중심을 형성하는데 튼실한 밑거름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교회의 모든 복은 말씀으로부터 흘러나옵니다. 그런 면에서 말씀샘교회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지만 가장 중요한 복에 있어서만큼은 다른 어떤 교회보다도 풍성하게 누렸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샘교회야말로 진짜 부요한 교회, 진짜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일반 신자라면 당연히 이런 교회를 선택할 것입니다. 말씀을 깊이 듣고 건강하게 해석하고 균형 있게 이해하고 전하는 교회를 주저 없이 선택할 것입니다. 저는 말씀샘교회를 그런 교회로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중단 없이 말씀의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말씀샘교회가 진정으로 말씀이 부요한 교회, 말씀으로 세상을 치유하고 부요케 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두 번째로 말씀교회가 구원을 사는 교회, 구원의 축복이 부요한 교회이기를 소망합니다. 저에게 욕심이 있다면 오직 하나, 구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구원은 말씀의 열매입니다. 말씀의 열매인 구원은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죽은 후에 영혼이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하나님나라를 사는 것, 즉 하나님나라 방식으로 지금 여기의 삶을 사는 것이 구원입니다. 세상 나라의 방식으로 사는 것에서 해방되어 하나님나라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우리 손으로 움켜잡을 수가 없습니다. 시간을 붙잡을 수가 없고, 바람을 붙잡을 수 없는 것처럼 구원 또한 우리 손으로 움켜잡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그저 순간순간 말씀의 능력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순간순간 숨을 쉬듯이 구원도 그저 순간순간 하나님나라 방식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말씀샘교회는 종교적인 삶을 닦달하지 않습니다. 종교적인 경건을 중시하지도 않습니다. 말씀샘교회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신앙으로 생활하는 것을 중시하고, 구원의 삶을 사는 일에 집중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밭에 감추인 보화가 같다고 비유하시면서 이 보화를 발견한 자는 밭에 감추인 보화를 숨겨 놓고 기뻐하며 돌아가서는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다고 말씀했습니다(마13:44). 예, 하나님나라는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살만큼 최고로 값진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는 그 무엇보다 값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나라를 발견한 자는 하나님나라의 방식으로 살기에 힘씁니다. 그 삶이 최고의 삶이기 때문에, 그 삶을 사는 것보다 더 값지고 위대한 일은 없기 때문에 하나님나라라는 보화를 발견한 자는 하나님나라 방식으로 사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둡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하나님나라 방식으로 사는 것이 곧 구원입니다.


말씀샘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을 사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달려왔습니다. 교회의 모든 활동을 통해 구원을 살려고 해왔습니다. 말씀샘교회가 그동안 신앙생활을 닦달하지 않은 것이나 종교적인 경건을 강조하지 않은 것도 그것이 구원을 사는 것과 무관하기 때문이고, 까딱하면 구원을 사는 일을 방해하고 왜곡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수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에만 열심이었지 구원을 사는 일에는 실패했습니다. 신앙으로 생활하지는 않고 신앙생활에만 열을 올렸습니다. 헛 다리만 긁은 셈입니다. 말씀샘교회는 신앙생활이라는 헛 다리만 긁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신앙으로 생활하는 것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종교적 경건을 추구하는 것에서 구원의 삶을 사는 일로 전환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 방식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나라 방식으로 살 수 있는지를 배우고 연습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짜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이 진짜 예수를 믿는 것이고, 예수를 따르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구원을 사는 것이 아닌 것은 실로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는 것도 아니고, 예수를 따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거저 베푸신 구원을 가장 값진 선물로 알고 구원을 사는 일에 집중하는 것만이 예수를 믿는 것이고, 예수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구원론이 심히 잘못되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잘못 듣고 잘못 해석하고 잘못 이해하기 때문에 구원론도 심히 왜곡되고 뒤틀려 있습니다. 말씀이 엉터리이기 때문에 구원도 엉터리입니다. 잘못된 구원론이 한국교회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이처럼 잘못된 구원론을 바로 잡아야만 신앙생활의 잘못도 바로 잡을 수 있고, 교회의 잘못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잘못된 구원론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요? 잘못된 구원론을 바로 잡으려면 말씀을 정직하게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깨끗한 마음으로 깊이 듣고, 성경 전체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만이 잘못된 구원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길입니다. 정말입니다. 말씀이 회복되면 구원이 회복됩니다. 구원은 말씀의 열매입니다. 말씀의 열매인 구원은 심히 아름답고 광대하고 위대하고 풍성하고 새롭습니다.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인 철학자 한병철은 [타자의 추방]이라는 책에서 “구원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한다. 구원은 구원이 필요한 자를 완전히 다른 존재 상태로 옮겨놓는다.”(12쪽)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의 대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이라는 작품에서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가 소냐의 사랑으로 구원 받는 이야기를 끝내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이야기, 한 사람이 점차로 소생되어 가는 이야기, 그가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 그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이야기, 이제까지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죄와 벌. 1060쪽)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한 구원이란 이처럼 근원적인 것이고, 전면적인 것입니다. 말씀샘교회는 이런 구원을 사는 일에 집중해왔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 일에 집중할 것입니다.

 

저는 말씀샘교회가 다른 것에는 좀 부족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당 건물이 없어도 괜찮고, 성도 수가 많지 않아도 괜찮고, 내놓을 만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괜찮고, 재정이 부족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사는 일에서만큼은 부족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은 삶입니다. 구원은 하나님나라 방식으로 사는 삶이고, 하나님나라의 축복을 향유하는 삶입니다. 구원은 매우 소박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이고, 세상에서 가장 의로운 삶이고,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삶입니다. 저는 말씀샘교회를 통해서 이 구원을 살고 싶습니다. 지금 여기서 몸으로 구원을 사는 일에 모든 역량과 마음을 쏟고 싶습니다. 말씀샘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 즉 예배하고 · 밥 먹고 · 청소하고 · 공부하고 · 기도하고 · 모이고 ·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크고 작은 일상을 통해서 구원을 사는 일을 배우고 싶습니다. 이것은 말씀샘교회가 이 시대에 감당해야 할 책임이면서 동시에 말씀샘교회가 향유해야 할 영광이자 은총이라고 믿습니다.


교회 창립 6주년을 맞으면서 말씀샘교회를 말씀에 부요한 교회, 구원의 삶을 사는 일에 집중하는 교회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신앙의 곁가지들 다 버리고 중심 되는 것 두 가지를 붙잡고 씨름하게 하신 것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행복한 예배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한없이 감사합니다. 말씀샘교회의 내일도 하나님이 책임져주시고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 말씀샘교회의 그루터기, 흔들림 없는 그루터기가 되어서 말씀샘교회를 행복한 예배공동체로, 말씀이 부요한 교회, 구원을 사는 일에 집중하는 교회로 세워나갑시다. 가난한 마음,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