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학단상

공평하신 하나님

새벽지기1 2017. 1. 19. 13:35


공평하신 하나님

직접적으로 이렇게 질문하자. 하나님은 예수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을 구별하실까? 우리의 신앙 유무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할까?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통해서 성공적인 삶이 보장될 것처럼 생각하지만 이것처럼 큰 착각도 없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이런 착각이 거의 일상이 되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나 <야베스의 기도> 같은 책들이 우리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도 우리의 신앙적 노력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매우 리얼하게, 때로는 성서적으로 때로는 경험적으로 확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종교라는 게 사람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라도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걸 무조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더구나 기독교인들도 이 세상에서 사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성정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대개의 신자들은 다른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편안하게 살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보다 많은 연봉을 받으려고 애를 쓰고, 심하게 양심의 가책만 받지 않는다면 부동산 투기 비슷한 것을 통해서라도 돈을 벌고 싶어 할 것이다. 이런 생각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그것이 정도 문제이기도 하고, 신앙이 일상에서 만나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으로 전락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는 오늘 언급하지 말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솔직하게 질문해보자. 하나님의 도움으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되는가? 어떤 관점이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대답이 나오겠지만 일단 근본적으로만 본다면 우리가 예수 믿는 것과 우리의 삶의 형편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기독교 신자들의 삶이나 불교 신자들의 삶이나 혹은 아무런 종교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의 삶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지금껏 이런 관점으로 혼신을 기울여 신앙생활을 한 사람에게는 이해가 안 될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좀더 깨어있는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미 예수님이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악인이나 선인이나 가리지 않고 햇볕을 주시고 비를 주신다고 말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는 사람이나 불문하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신다. 이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삶에 실증으로 나타난다. 대홍수는 인도네시아나 미국을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예수 잘 믿는 사람도 사업에 실패하고, 믿지 않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신앙적으로 살지 않아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실제로는 그럴 때가 많다.


이 말은 곧 이 세상살이는 그 어떤 하나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복합적인 요소가 개입한다는 뜻이다. 만약 예수 잘 믿고, 교회생활 열심히 하면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복 받고, 소위 삼박자 축복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사이비에 가깝다. 돌팔이 약장사가 자기의 약을 특효라거나 만병통치로 선전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종교와 아무런 상관없이 똑같이 행하신다. 그게 곧 하나님의 공평하심이다. 하나님이 단지 기계적으로 작용하는 자연원리 쯤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분은 자기의 인격으로만 움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의 행동을 전혀 파악할 수 없다. 그게 곧 그의 공평이다. 우리의 공평이 아니라 그의 공평이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을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 하고 말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만약 위에서 내가 말한 내용을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그는 기독교 신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는 하나님에게서 특별대우를 받으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새벽기도회를 드리고 말씀을 매일 읽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특별하게 대우하지도 않는다. 만약 하나님이 그런 것으로 마음이 움직이신다면 세계 창조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예수를 믿는가? 예수의 가르침, 그의 운명, 그의 사건에서 하나님이 온전하게 계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


그게 그거 아닌가 하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건 전혀 다른 사태이다. 하나님의 계시라는 건 우리가 종교적인 노력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특별대우를 받겠다는 그 생각 자체를 허무는 사건으로 우리에게 임하게 된다. 우리가 보기 싫다고 생각하는 열등생, 꼴찌, 죄인, 세리 같은 사람들의 삶에도 우리가 선망하는 우등생, 일등, 의인 못지않은, 아니 그들보다 훨씬 큰 하나님의 은총이 임한다는 게 예수 사건의 핵심이다. 결국 예수는 십자가로 죽었다. 완전히 실패! 명실상부한 실패. 그 어디에도 인간적인 가능성이 전혀 없는 그 실패. 그것은 몰트만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 스스로 십자가에 달린 그 사건이다.
이렇게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복 받는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선포한다는 건 곧 십자가를 부정한다는 뜻이다. 만약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믿는다면 예수 믿고 인생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교를 해야 한다.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 미혼모 같은 사람들은 우리가 동정심을 베풀어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을 우리보다 먼저 받을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큰 반전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큰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지금 자신이 목회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목사들은 그때 큰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이건 내 말이 아니라 예수님이 마태복음에서 하신 말씀이다. 오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허투루 듣는다. 그 대신 자기의 욕망을 성서 구절로 합리화하기에 바쁘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이 세상에서 거지 나사로처럼 살았으면 이제 천국에서라도 평안하게 살아야 한다. 그게 하나님의 공평하심이다. 부자에게는 억울한 일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판단하신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지금 나사로 같은 사람들이 눈물 흘리는 이런 사회 체제에 안주할 수는 없다. 교회의 힘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서 공연한 수고를 할 필요도 없다. 그런 노력들은 하나님의 공평하심 앞에서 무력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오늘의 한국교회와 신자들은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이 세상만이 아니라 저 세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믿는 사람들은 자유의 복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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