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그리스도의 영광 (요 17:24)

새벽지기1 2017. 1. 18. 14:01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 주님의 대기도의 결론이다.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주신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해달라는 것이다.

(요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우리도 이제 이 세상을 떠나면 주님 계신 곳으로 가서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주님의 영광을 보며 누리며 우리는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계시록은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계 21:22-24) (예루살렘)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우리가 영원히 영원한 천국 예루살렘 성에서 그 빛속에서 살아갈 그 영광을

지금 이 땅에서부터 사모하며 묵상하며 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일을 너무도 소홀히하며 살았다.

 

존 오웬이 말한다.

우리가 장차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우리도 함께 있어 그 영광을 보는 복을 누리기를 소망한다면,

복음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영광을 먼저 부단히 숙고하는 일보다 더 좋은 준비는 있을 수 없다.

장차 우리가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함께 있으면서 그 영광을 보는 복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김으로써

우리도 점차 변하여 영광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나는 말씀이 있다.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고후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주의 영광을 자꾸만 사모하며 묵상할 때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우리도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되고, 그 일을 주의 영이 하신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영적 무질서와 통제되지 않은 정욕이 날뛰면서

지도자들부터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잃고 말았다고 한탄하는 이들이 있다.

 

성도들은 마지막 날 예루살렘의 딸들로서, ‘순결한 신부’로서 주님 앞에 서야 한다.

순결한 신부가 될려면 날마다 신랑되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 우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중매한다고 하였다.

 

(고후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후 11:3-4)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신부가 신랑을 사모해야지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사모하면 안되겠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다는 것이 바울의 한탄이다.

 

(빌 3:18-20)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우리의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고,

주님에게서 금과 흰 옷과 안약을 사서 라오디게아 상태로부터 회복해야 할 것이다.

 

(계 3:17-19)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이제라도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세상에서 하늘로 그리스도의 영광에로 돌리자.

성도가 누리게 될 최고의 복은 재물이나 건강이나 명예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매 순간 묵상하고 살다가 그 영광을 직접 보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받았나요?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과 부활의 권능을 통해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은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날 때가 너무 많다.

 

청교도들은 이 땅에 살면서도 그들의 눈 속에 이 영광을 묵상하며 살았다.

존 오웬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할 때 얻는 유익을 이렇게 말한다.

바로 우리를 삶에서든 죽음 앞에서든 기쁨과 안위에 차도록 이끌어 준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삶이란 무엇인가?

시험과 환난, 격변과 슬픔, 위험과 두려움, 질병과 고통들이 일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땅에서 어떤 힘과 위안을 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모두 불확실하며 만족스럽지 못하고, 잠시 있다가 없어질 뿐이다.

 

(눅 21:25-26)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광을 항상 묵상하는 사람들은 악한 일들을 만나 괴롭힘을 당할지라도, 그 모든 악이 한꺼번에 달려든다 할지라도 능히 이겨 낼 것이다.

“그 생각이 하늘에 속한 것들을 향하고 있는 사람은 십자가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우리가 믿음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이고도 영원한 것들을 본다면,

우리의 모든 고통이 경감되고 우리의 짐이 가벼워지고 우리 영혼이 낙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을 품고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광이다.

그 영광이 영적이고도 영원한 것들을 주도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때문이다.

 

아무리 우리를 압박하고 구차하게 하며 당황하게 하는 것이 있다 할지라도,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며,

우리가 이 영광에 동참하고 있음을 바르게 숙고할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위로와 도움이 베풀어질 것이다.

 

악인들은 때때로 덮쳐 오는 곤고한 날에 마치 쉬지 않고 요동하는 바다와 같다.

그들은 힘을 잃고 낙담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할 때, 분명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 고통과 마음 아픔은 세상에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들을

지나치게 귀중하게 여기는 데서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린 것임을 알게 된다.

 

우리도 두려움과 슬픔과 혼란에서 벗어날려면,

이 땅의 모든 것은 일시적이며 끝내 모두 사라져 없어질 것들임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것들은 우리의 겉사람과 몸에만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앞으로 받을 저 하늘에 속한 것들은, 지상에 속한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값지고도 우월하다. 바로 이런 가치관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영광과 그 영광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진실로 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이런 문제에서 충만한 자유를 얻을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르게 이해하고, 우리의 마음이 그것에 사로잡혀 있고,

우리의 정서가 그 영광을 즐거워하는 데로 기울어져 있다면,

고통과 질병과 슬픔, 두려움과 위험, 사망쯤도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은 일시적이며 지나가 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영원하며 영광으로 충만한 것에 마음을 고정시킨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고후 4:16-18)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할 때 마음이 회복되고 평정을 찾게 된다.

사람들의 마음은 본시 고통으로 말미암아 흔들리기 쉽고,

여러 가지 애착과 정욕으로 인해 평정을 잃어 버리기 쉽다.

시편 기자는 곤고할 때 자기 속에서 그런 모습을 발견하고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시 43: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두려움과 슬픔의 격정은 우리의 마음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그래서 마음이 자신을 진정시킬 능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르게 묵상하면, 그 마음이 회복되고 평정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안정되고도 고요한 심사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믿음은 요동하는 정욕의 바람과 파도를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막4:39)고

명령할 것이며, 격정의 바람과 파도가 순종할 것이다.

 

-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롬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성령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편들이 있다.

그러한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광과 하나님 아버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할 때 성령께서는 “말로 할 수 없는 기쁨과 충만한 영광으로 즐거워하게” 하신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모든 고통 속에 들어 있는 독소를 제거하는 최고의 해독제이다.

 

-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할 때 기쁨과 위안을 가지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영혼은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과 분리되어 영원한 상태로 들어간다.

이 땅에서 외적인 감각을 통해 보고 듣고 누렸던 모든 것들 중

어느 하나도 그렇게 영원히 떠날 때는 잠시도 영혼과 함께 머물 수 없다.

영혼이 가야 하는 그 멀고 먼 길을 그것들은 한 발짝도 함께 갈 수 없다.

영혼은 홀로 영원을 향해 출발해야 한다.

 

영혼은 믿음으로 받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그 영원한 세계를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다시 살아 우리에게도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기에 대황제도 “오, 가련하고 두려워 떨며 갈피를 잃어버린 영혼이여,

네가 어둡고 더러운 그 어떤 곳으로 가는 것이냐?”고 울부짖었다.

 

몸을 떠나는 자기 영혼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믿음을 행사하는 사람들만이 내세의 상태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상태가 안식과 복락을 가진 상태임을 알고 처신할 수 있다.

 

그래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딤후 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다른 모든 은혜와 마찬가지로 이 점에 있어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위대한 모본이시다.

그는 몸을 떠나는 자기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셨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 자신의 영혼을 그리스도의 손에 맡겼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7:59)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구속주로 믿는 사람들의 영혼을 즉시 받으신다.

그리스도의 영광과 인격, 능력과 높아지심, 그리고 그의 직무와 은혜를 매일 묵상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람의 영혼을 그리스도의 손에 맡기도록 가장 강하게 격려할 것이다.

 

우리도 죽어 가는 순간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우편에서,

우리를 받으시고자 준비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보게 될 것이다.

 

모든 신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고

그가 계신 곳에 함께 있고 싶어하는 간절한 열망을 통해 불처럼 타오른다.

 

- 우리는 또한 죽음을 맞이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육체와 그것이 누렸던 모든 것과

언제라도 결별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몸과 영혼이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은 필연적이고도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둘이 분리되면 몸은 이전과 같은 상태로 계속 존재하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혼도 자기가 어떤 형태로 남게 될 것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을 극복할 수 없다면, 우리는 평안하고도 기쁘게 죽을 수가 없다.

성도는 자기 영혼이 몸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것이 훨씬 좋은 것임을 안다.

(빌 1: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너 유약하고 죄악된 육체여, 죽으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나는 너를 거룩하신 분의 의로우신 처사에 맡긴다. 소망안에서 안식하라.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너를 부를 것이고, 너희 흙 속에서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될 것이다. 너를 영화롭고도 부요하게 만드실 것이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단12:1·3)”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게 되려면,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고 숙고해야 한다.

 

- 하나님께서 우리로 이 세상에서 떠나게 하실 때 기꺼이 하나님의 뜻에 순복해야 한다.

우리의 때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안에 있다.

이생에 대한 애착의 포기 없이는 이 세상에서 최소한의 견고한 평화도 누릴 수 없다.

 

- 죽음의 방식에 대해서도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죽음의 시련에 대해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잔의 특별한 쓴 맛이 제거되기를 바란다.

 

- 이런 모든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죽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주권적이고도 기뻐하시는 뜻에 부단히 맡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능히 그런 일을 감당할 만한 신령한 능력과 인내심도 함께 주실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을 항상 항상 묵상할 때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