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일은 우리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에서 죽으심, 부활, 승천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다.
부활절을 맞이하기 전에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2절의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노라
이 고백이 내 생애 가운데 결정적으로 감동적으로 내 가슴을 치는 체험이 필요하다.
이 감격 어린 고백이 없는 교인들이 많기에 가정도 세상도 바뀌질 않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분이 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죽으셔야만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모르니까 십자가에 대해서도 헛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고전1:22-24)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모르니까 십자가의 죽음을 우연이나 모르고 당한 일로 말하게 된다.
철학자나 교주의 죽음 정도로 오해하게 된다.
착각은 자유겠으나 세상의 지혜, 우리의 이성으로는 알 수가 없는 것이 구원의 복음이다.
(고전1:21)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중 제2위격의 하나님이시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롬9:5) 그리스도--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이 아들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존재하셨고 인간과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골1:15-17)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이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창세 전에 아버지 하나님과 맺은 은혜(구속)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창세기 3장에서 범죄함으로 타락한 인간들을 은혜로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창 3:15의 복음에서 약속하신 대로 뱀의 머리를 박살내기 위해서 오셨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범죄한 인간들을 구원할 구속계획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완벽하게 계획되었다.
구약 성경을 보면 모든 일이 하나님이 정하신 바로 그 때에 정확하게 일어났다.
예수님도 때가 차매 오셨다.
(갈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때가 찬 경륜을 위해서 오셨고 그 경륜은 모든 피조물이 그 안에서 통일되게 하기 위함이다.
(엡1:9-10)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부는 성자에게 구속받은 자들을 위한 특별한 임무를 주셨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우리를 구원하신 구속 계획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 어디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은 구원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오직 하나의 복음만 있다. 오직 하나의 길만 있다.
구약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자신과 화목하게 하셨으며 다른 화목의 길은 없다.
구약과 신약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다.
구속의 계획과 목적, 방법은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있다.
다른 복음은 없다. 다른 복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갈1:7-9) 다른 복음은 없나니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기 위함이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인간들에 대한 사랑의 방법이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면서도
그 사랑의 절정이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이고 십자가에 못박히심인 것을 안 받아들인다.
그것이 인류의 비극이고 불행이다.
죄를 무조건 용서하는 것이 사랑인 것 같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무법이고 불법이다.
황야의 무법자를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이다.
선한 인간만도 못한 분으로 하나님을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 아니라면 그분은 인간의 죄를 심판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거룩한 법에 따라 죄를 심판하고 구원의 길을 여시는 분이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의 법 감정과 양심에도 부합하고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다.
죄에는 반드시 형벌과 사망이 따르고 피 없이는 죄사함이 없는 것이 하나님의 법도이다.
죄를 인정하거나 처리하지 않고 삶의 불행과 비극을 해결할려고 하는 것이 문제이다.
인류는 죄가 근본 원인인 것을 인정하지 않고 정치 경제 교육 문화적 방법으로 해결할려고 한다.
그래서 세상은 날로 더 악해져가고 있고, 환경은 더욱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도, 원전의 방사능도 안전하다고만 한다. 백성이 어찌 되든 자기들의 권력만 지키면 된다)
우리 각 개인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닥치면 그 곤경 자체만을 해결할려고 하지 원인을 찾아 해결할려고 하지 않는다.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개인의 행복도 번영도 이룰 수 없다.
평생 행복과 번영이라는 신기루를 쫓아가다가 사망과 지옥으로 떨어지는 인생이 되고만다.
인간과 세상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죄에 있다.
그것이 성경의 일관성있는 가르침이다.
죄는 우리를 창조하고 통치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반역하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의 양심과 법으로 주신 원칙과 성경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이다.
로마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라고 한다.
죄를 해결해야 천국(행복과 번영)을 산다.
복음의 제 일성은 그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이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는 내 마음의 천국 가정의 천국 세상의 천국을 이룰 수 없다.
이 죄성은 인류의 조상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왔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이것이 원죄의 교리이다.
아담이 인류의 대표이기 때문에 그의 범죄는 우리 모두의 범죄가 된다.
그리고 이 죄성의 해결도 한 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한 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모든 죄의 형벌을 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죄인들은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지고 죄인에서 의인으로 선언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는 새 인류의 대표로써 그분의 의의 한 행동으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 주신다.
아담의 대표적 죄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죄의 해결책도 인정하지 않게 된다.
구약에서 제사장과 백성들은 제물된 짐승의 머리 위에 안수함으로 자기들의 죄를 전가하고,
그 짐승을 잡아 그 피를 제단과 지성소에 뿌림으로 죄 용서함을 받았다.
이 제사법들은 앞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지고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단 한번의 영원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의 모형들이었다.
죄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내 죄를 전가할 제물 짐승이 있어야 한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
구약에서 제사를 통해 이 모형을 시행케 하여 단 한번의 영원한 제사를 준비케 하셨다.
그리고 때가 되니까 성령의 잉태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오셨고,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와는 달랐다.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송아지 피는 죄를 지을 때마다 드리는 반복적인 제사와 속죄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는 단 한번이면서 영원한 제사와 속죄였다.
염소와 송아지 피는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는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케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했다.
(히9:13-14)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또한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량할 뿐 아니라 그 피로 새언약을 이루셨다.
새 언약은 부르심을 입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신 것이었다.
(히9: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영원한 기업의 약속은 성령으로 인치시고 보증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이시니 기어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실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은 닥칠 일을 모르고 우연히 죽으신 것이 결코 아니다.
구약에서 내내 율법과 시편과 선지서들을 통하여 이미 예언하셨고,
공생애 사역 동안에도 내내 고난받고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유월절 이틀 전에는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박히실 것을 정확히 예언하셨다.
(마26: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모든 인류의 죄를 감당하셔야 했기에 그 제사장은 하나님이셔야 했고,
인류의 모든 죄를 감당하셔야 했기에 그분은 죄가 없으신 제물이 되셔야 했다.
그래서 동정녀에게서 성령으로 잉태하셔야 했고 임마누엘로 예수로 오셔야 했다.
그리고 제사장이자 제물로 우리 죄의 형벌을 대신 지시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유월절 어린 양이 되어,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처참한 고통을 받으셔야 했다.
(요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사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드린 제물은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한 대속물이었다.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하셨다..
(요일2: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롬5:10)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이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믿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유일하신 해결책인 십자가를 왜 믿지를 않는가?
그 대답은 한마디로, 그들에겐 이성은 있어도 성령이 없기 때문이다.
성령이 그들의 마음 가운데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고전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혹 여러분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성령을 구하시기 바란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우리 주님 말씀하셨다.
왜 기독교 안에 일만 스승이 있는지, 왜 잡다한 신학 사상들이 있는지에 대한 유일한 답이다.
성령이 없으니 인간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느라
자유주의 신학, 신정통주의 신학들이, 심지어 뉴에이지 사상들이 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들과 대화의 필요성은 있지만 그 상태로는 해결책이 나올 수가 없다.
사람의 말과 지혜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의 말과 지혜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고 말씀한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는 사람의 말과 지혜로 하는 설교들, 기독교 서적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에 있지 않고 사람의 지혜에 있게 된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도 바울처럼 두려워하고 떨어야 한다.
사상은 무서운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고 믿느냐가 일생의 믿음과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르침을 받되 어떤 가르침을 받느냐가 중요하다.
겉의 말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다.
누가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율법해석을 아니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그 당시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들이었고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화를 대표하고 사두개인들은 세속화를 대표한다.
이들이 율법을, 하나님을, 입에 달고 살지만, 그들의 속에 탐욕과 방탕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교묘하게 성경은 왜곡되고 율법화되고 세속화된다.
이런 거짓 선지자들은 양의 탈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맺는 열매를 봐야 알 수가 있다.
노략질하는 이리가 양의 탈을 쓰고 광명의 천사 옷을 입고 행세하니 알 수가 없다.
말도 다 믿지 말고, 영도 다 믿지 말고 시험해 보고 열매를 보고 알아야 한다.
그것이 성경이 진리와 영을 분별하는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란다.
사람들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란다.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는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시기 바란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기를 바란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좋은 말씀 > 강대식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정의 위대함 (엡 5:18-21) (0) | 2017.02.01 |
---|---|
부활, 그 증거와 의미 (행 2:22-33) (0) | 2017.01.28 |
하나님의 공의 (살후 1:3-12) (0) | 2017.01.22 |
그리스도의 영광 (요 17:24) (0) | 2017.01.18 |
주님의 기도(거룩 하나 영광) (요 17:17-24) (0) | 2017.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