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조병수교수

기품 (딤전 3:4a)

새벽지기1 2016. 10. 30. 07:11


내가 그 목사님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강산이 변하고도 몇 번은 변했을 시간이 되었다. 그때 나는 유학 말기에 어머니께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온 터였는데, 그 목사님은 내가 잠시 귀국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산골짜기 목회지로부터 한 걸음에 달려오셨다. 으레 그렇게 사는 분임을 전부터 잘 알고 있었음에 불구하고 나는 그의 행색을 보는 순간 아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다 해지고 빛 바란 검정고무신에 양말도 신지 않고, 계절은 이미 겨울로 접어들고 있는데 얇은 반 팔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게다가 셔츠의 목덜미는 닳고닳아 칼라가 떨어져 저절로 로만 칼라가 되었다.
그의 옹색한 모습에 나는 그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고 대화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그의 기품에 완전히 압도되고 말았다. 그의 맑은 눈빛, 확신에 가득 찬 주장, 현실을 해부하고 앞날을 예견하는 혜안, 그리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목회철학, 이런 모든 것이 마치 거대한 산처럼 나를 눌러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기품, 이것은 목회자에게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기품을 잃어버린 목회자는 이미 목회자가 아니다. 아니, 비단 목회자에게 뿐 아니라 기품은 모든 성도에게 요청되는 필수적인 덕목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감독들에게도 (4), 집사들에게도 (8), 여자들에게도 (11) 단정함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단정함이란 다른 말로 하면 품위 있는 모습을 의미한다. 사실상 사도 바울은 벌써 이 주제를 언급한 바가 있다. 사도 바울은 통치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권면하면서 그렇게 기도해야 할 이유를 신자들이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는 것에서 찾았던 것이다 (딤전 2:2). 사도 바울이 이처럼 감독을 비
롯하여 모든 신자에게 단정함을 요구하는 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신자들에게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목회자들에게서조차도 기품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사도 바울이 스스로 갈파했던 것처럼,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9-10)라고 말할 수 있는 목회자를 만나보기가 참으로 힘들다. 이름을 낼 수 있는 길, 성공을 보장하는 길, 재물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위해서라면 목회자의 기품이고 나발이고 다 내동댕이치고 허둥지둥 좇아가는 목회자들이 지천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목회자들은 목회자의 기품이 무엇인지 일부러 잊어버리려는 듯 하다.

그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지 않고서야 어찌 목회자에게 기품이 있겠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그 속에 가득히 담고 있는 목회자에게서 어찌 기품이 뿜어 나오지 않겠는가? 비록 질그릇처럼 연약한 인생이라도 예수의 보배를 담고 있으면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고후 4:8-9). 이런 목회자는 유명해지는 것에도, 성공하는 것에도, 부요해지는 것에도 연연하지 않는다.


이미 예수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놓았기 때문에, 다시 말하자면 예수의 영광스러운 생명이 그 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의 영광을 그 속에 가득히 채우지 않은 채, 머리에 번지르르하게 기름을 바르고 바지의 주름을 칼처럼 세
우고 파리도 미끄러질 정도로 구두에 광택을 내고 매끄러운 웃음을 입가에 흘리며 날카로운 말솜씨를 뽐내며 기름진 매너로 치장된 목회자들의 외면적 기품을 나는 혐오한다. 그리고 목회자의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텅 빈 것을 모른 채, 그 외면적 기품에 깜빡 죽는 신자들을 나는 혐오한다.

다 해진 얇은 반 팔 와이셔츠를 입고 초겨울의 추위에 바들바들 떨면서도 그 몇 번의 눈짓과 몇 마디의 말로 나를 간단히 굴복시켰던 초라한 목사님의 기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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