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 (에스더 7:1-10)

새벽지기1 2016. 10. 20. 06:34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16:3,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특히 환난과 고난 중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

 

1 고난을 서러워하지 말라

 

까닭없는 저주도 없지만 까닭없는 고난도 없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채찍질하고 징계하신다.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라고 했다.

 

(히 12:5-6)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사람들은 고난 없는 만사형통을 바라지만 인생 사는 동안 그런 것은 없다.

우리의 모든 눈물을 씻어주고 닦아주는 곳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 어린양의 보좌 앞이다.

 

(계 7: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 땅에서 사는 동안은 고난과 형통이 병행하고 반복되는 것이 하나님의 법도이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의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

 

(약 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그러니 형통한다고 너무 날뛸 것도 없고 고난이 왔다고 그렇게 서러워할 것도 없다.

다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이루고서는 물러갈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고 고난을 주시는 뜻과 목적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예하는 데 있다.

(히 12:10)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징계와 고난이 당시에는 슬퍼 보이나 그 연단으로 인하여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된다.

(히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나니

 

고난의 연단 없이 우리는 주님의 의를 닮아갈 수 없다.

고난의 연단을 거친 사람들은 이제 어떤 고난에도 평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하시는 것이다.

 

고난과 징계 중에 있을 때 우리의 취할 자세는 무엇인가?

(히 12:12-13)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피곤하다고 연약하다고 주저앉지 말고, 손과 무릎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우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야 한다.

저는 다리로 어그러지지 않게 고침을 받아야 한다.

 

오늘 본문을 보면 모르드게와 에스더와 유다 민족 전체에게 고난의 위가가 닥쳐 왔다.

하만 총리가 고개를 숙이지 않는 ‘모르드게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 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게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였다.

한 개인의 괫심죄를 다스릴려고 아예 유다 민족의 씨를 말라죽일려고 작정하였다.

 

‘열두달째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고 조서를 만들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치고 전국에 돌렸다.

 

그러나 모르드게는 낙심하거나 주저앉지 않았다.

망설이는 에스더 왕비에게 말한다.

(에 4:13-14)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이에, 에스더 왕비도 ‘죽으면 죽으리라’ 결심하고 유다 민족들과 함께 삼일을 금식하였다.

그리고 죽음을 무릅쓰고 왕께 나아갔다.

위기의 고난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요셉도 노예로 팔려갔지만 낙심하고 좌절하지 않고 가정 총무가 되도록 열심히 일하였다.

고난 중 형통에도 불구하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쳤다.

그로 인해 감옥에 갇혔지만 낙심하지 않고 거기서도 열심히 일하여 간수의 신임을 받는다.

 

고난 중의 형통은 사람과 하나님의 합작이지 사람은 손 놓고 하나님만이 하시는 작업이 아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죄와 유혹을 물리쳐야 하고,

억울한 감옥살이 중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거기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2 전화위복을 믿으라

 

고난 중에서도 우리의 최선을 다하는 그 끝에 하나님은 인도하시고 역사하신다.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신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메달 나무를 오십 규빗(약 25미터)이나 높이 세우라고 명령한 날 밤

왕이 밤에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게 한다.

왜 잠이 안 왔을까요? 누가 잠이 안오게 하고 무엇을 생각하게 하였을까요?

 

모르드개가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고발하여 공을 세웠지만 포상한 것이 없는 것이었다.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를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뜰에 이른다.

왕이 묻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하만은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착각은 자유이다.)

(에 6:8-9) 왕의 입으시는 왕복과 왕의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취하고 그 왕복과 말을 왕의 방백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붙여서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모르드개에게 미친 화가 복이 되는 순간이다. 왕이 명령한다.

10,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취하여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전화위복의 양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오늘 본문에서 하만은 왕 앞에서 에스더 왕비의 결정적인 고발을 당한다.

에스더,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왕,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냐”

에스더, “대적과 원수는 하만이니이다”

내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높이가 오십규빗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전화위복의 양상은 더욱 진행하여 8장에 가서 보면 왕이 하만의 집을 에스더에게 준다.

거기다가 왕이 하만에게서 거둔 왕의 반지를 모르드개에게 주고 그를 왕 다음으로 높인다.

왕의 기왕의 조서는 철회되고 새로운 조서가 전국 방방곡곡에 내려졌다.

 

(에 8:11-13) 조서에는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저희로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도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저희를 치려하는 자와 그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아하수에로 왕의 각 도에서 아달월 곧 십이월 십 삼일 하루 동안에 하게 하였고 이 조서 초본을 각 도에 전하고 각 민족에게 반포하고 유다인으로 예비하였다가 그 날에 대적에게 원수를 갚게 한지라

 

하만의 열 아들은 죽이고 시체를 나무에 매달고 수산성에서만 원수들을 8백명 죽이고

전국에서는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하였다. 그러나 그들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을 받을 때 악인들은 형통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원수들의 악에 대해서는 반드시 처벌을 하신다.

그 때가 언제냐?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달성했을 때이다.

 

요셉을 세울 때가 되니까 하나님은 바로에게 풀수 없는 꿈을 꾸게 하신다.

그리고 그 꿈을 통해 요셉을 하루 아침에 대애굽제국의 총리로 세운다.

요셉을 노예로 판 사람들은 형들이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방법이었다.

 

(창 50:19-21)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이미 요셉은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에 대하여 형들에게 말한 적이 있다.

(창 45:7-8)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오늘 우리가 배워할 할 교훈은 우리 인간과 세상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원수들은 우선은 악을 행해도 형통하고 무사한 것 같지만

하나님은 사랑인 동시에 공의의 성품을 갖고 계셔서 반드시 그 악을 징벌하신다는 것이다.

 

요셉과 같은 고난, 모르드개와 유다 민족과 같은 고난을 겪고 있는가?

소망을 가지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시며 인내와 연단을 이루시기 바란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화를 바꾸어 복이 되게 하실 것이다.

 

3 영원한 영광을 소망하라

 

우리가 받을 영광은 고난의 인내와 연단의 결과이다.

포기하지 아니하고 낙심하지 아니한 결과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함께 고난을 받은 결과이다.

 

우리의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형통케 하신다.

작은 형통들에 만족하지 마시고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시기 바란다.

고난의 목적은 우리의 성품을 거룩하게 하시는 데 있다.

 

고난 중에 우리의 탐욕과 교만을 처리해야 한다.

고난 중에 징계의 원인이 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돌아서야 한다.

모르드개와 요셉은 고난이 올지라도 악과 타협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깨끗한 그릇과 성품이 되는 것이 먼저이지

우리의 영광과 업적을 이루는 것이 먼저가 아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 것 회개해야 한다.

 

내 배를 채우는 부끄러운 영광을 하나님으로 삼은 것,

하나님의 일보다는 땅의 일만을 생각한 것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나라보다 세상나라와 나의 왕국을 먼저 구한 것, 회개해야 한다.

 

이 회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원수라도 화목하게 해주신다.

(잠 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고난을 풀어주십사고 드리는 치성과 금식의 번제를 즐겨하지 않으신다고 한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회개하는 상한 심령이라고 하신다.

(시 51:16-17)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연단을 이루는 회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영광을 앞당기는 길이다.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때 우리의 연단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고난과 징계는 이러한 것들을 씻어내고 거룩한 성품과 그릇을 만들어

하나님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쓰시고자 하는 데 있다.

그 영광은 영원한 것이다. 자손만대 물려주는 축복과 영광이다.

 

우리가 받을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우리의 고난은 잠시 잠간일 뿐이다.

(고후 4:17)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받을 중한 영광에 비하면 우리가 받는 고난은 가벼울 뿐이다.

그런데 그 가볍고 잠시의 고난이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룬다.

하나님은 모든 과정에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역사하신다.

때가 되면 영광을 주시는데 그 때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인내와 연단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에스더 서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에 10:3)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기념하여 지금까지도 부림절로 지키고 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생애 과정중에 하나님은 인도하시고 역사하셨다.

아브라함과 모세, 다윗과 요셉의 생애 과정 중에 하나님은 인도하시고 역사하셨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드리기까지의 고난과 연단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모세도 40년동안의 광야에서의 고난과 연단을 통해 출애굽의 대역사를 완성하였다.

다윗도 아둘람 굴의 고난과 연단을 통해 이스라엘 최고의 왕으로 높임을 받았다.

요셉도 노예생활과 죄수생활의 고난과 연단을 통해 대애굽제국의 총리로 세워졌다.

 

우리 각 사람의 생애 과정 중에서도 하나님은 인도하시고 역사하고 계시고

우리 각 사람을 영원하고 중한 영광의 자리에 세우실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