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 그의 모든 법도를 행하라는 것.
그러나 이 둘은 하나이고 양면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분의 도를 행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그분의 도를 행하지 않는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주는 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재물과 영광과 건강을 주신다.
(잠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세상과 우리가 다 좋아하는 재물과 부요, 명예와 권력, 건강과 장수를,
하나님을 겸손하게 경외할 때 복으로 보상해 주신다는 약속이다.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1순위로 삼고 좇아다닌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항상 지키셨다.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법도를 지킬 때는 항상 축복하시고 번성케 하셨다.
태평성대를 누리고 주변 나라보다 강성케 하여 그들이 이스라엘을 경외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그들의 음란하고 탐욕스런 풍속을 따르면
주변 나라들을 강성케 해서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고 수탈을 당하게 하였다.
그러다가 견디다 못하여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사사를 세우시고
그 사사가 사는 동안은 평안을 누리게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가 죽기가 바쁘게 돌아섰고 고난을 겪어야 했다.
여호수아와 장로들이 죽기가 바쁘게 그들은 바알과 아세라에게 돌아섰다.
모세가 산에 하나님의 율법을 받으러 가기가 바쁘게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쳤을 때 경외함을 인정받았다.
(창22:12)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경외함을 인정받았을 때의 복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창22:16-18)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아브라함처럼 사랑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던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하고 그분의 명령을 따라 섬기는 것, 그것이 경외하는 것이다.
십일조와 예물도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게 함이라고 하셨다.
(신14:22-23)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사랑과 마음과 뜻을 다해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다.
그것이 그들로 가나안에서 고통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고 세계에 흩어지게 하였다.
우리는 지금 사랑과 마음과 뜻을 다해 섬기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과 재물인가?
그저 내 자녀, 내 배우자, 더 많은 수입, 더 좋은 소유, 더 좋은 환경인가?
힘있는 사람들을 섬기고 가까이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빨리 얻고자 하는가?.
권력과 법은 하나님이 사랑과 정의로 행하라고 준 것인데
사유화 되어, 자기들의 이익과 세력을 키우고 반대 세력을 억압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은 더디니까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자기들의 권세가 영원할 줄 안다.
하나님이 회개할 시간을 연장해 주시는 것인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사랑만이 아니시고 반드시 공의를 행하시는 분이시다.
역사는 하나님의 심판이 항상 있어 왔음을 증거하고 있다.
악인의 형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의인의 고난도 오래 가지 않았다.
생각보다 그 고난이 길어 힘들어 하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면 반드시 의인을 축복하셨다.
그렇지만 이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오늘도 이 땅에서 사랑과 공의로 행하시는 것을
믿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아서 걱정이다.
그래서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고 큰 길로 가고 만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문도 크고 길도 넓어 가는 사람이 많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문도 작고 길도 좁아 가는 사람이 적다고 하셨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을 가고 계시는가?
많은 사람들이 가니까, 대세고 주류니까, 세상이 다 그러니까, 다수결이 옳으니까,
넓은 길로 가고 있는가? 멸망으로 인도하는지 생명으로 인도하는지 상관없는가?
하나님이 제사장 나라로 택한 이스라엘 민족들은 항상 이 문 크고 넓은 길을 좋아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식민 지배를 받고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고 온 세계에 흩어지고 말았다.
그들의 결말이, 바로 문 크고 넓은 길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로인 것을 알아야 한다.
빨리 도달하고, 빨리 살 것 같은 길이, 영영 도달하지 못하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이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항상 이미 늦은 뒤이고 돌이킬 수 없을 때였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 그렇게 경고하고 또 경고하였지만 그들을 죽이고 듣지 않았다.
쉬운 길, 다 가는 길, 빠른 길, 문 크고 넓은 길, 좋아하지 말라.
토끼의 길보다는 거북이의 길을 가는 것을 좋아하라.
(잠20:21)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
(렘17:11)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2.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라.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사람의 재물과 권력을 의지하지 말라.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다.
사람과 재물과 권력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마음에 들어갈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재물도 하나님도, 사람도 하나님도, 권력도 하나님도 양 손에 쥐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가능하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하나는 형식적으로 섬기고 다른 것을 사랑과 마음과 뜻을 다해 섬겼다.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멸망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렘17:9-10)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렘17:5-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란다. 목에 걸고 이마에 새기고 손목에 매시기 바란다.
아무리 세상이 유혹해도, TV와 메스콤이 떠들어대도, 귀기울이지 마시고,
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란다.
우리의 인생의 승부가 무엇을 사랑하고 섬기느냐에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축복과 영광이 어느 길을 가느냐에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거기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 길을 가시기 바란다.
여러분의 인생과 가정이 참으로 행복하고 형통하기를 원하신다면
세상이 가는 길로, 이 세대가 가는 길로,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지 마시기 바란다.
(롬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내 마음에 있는 가증한 것들을 몰아내야 한다. 탐욕과 빨리 빨리의 우상들을 몰아내야 한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지 않으면 우리의 환경은 달라질 수가 없다.
우리의 자녀도, 우리의 가정도, 우리의 직장과 사업도, 달라질 수가 없다.
마음 속에 우상들을 잔뜩 쌓아놓고, 달음박질만 하면 될 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
힘있는 사람들을 의지하고 그들과 어울리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될 것 같고 될 것 같지만, 세월만 까먹고, 사람꼴만 더 우습게 된다.
하나님은 항상 여러분의 마음을 시험하고 계신다.
하나님을 의지하는가 사람을 의지하는가 시험하고 계신다.
사람을, 권력자들을 의지하지 말라. 애굽과 말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신다.
사람의 많고 적음에 우리의 구원과 형통이 닫려 있지 않다.
창과 갑옷에 승리가 달려 있지 않다.
구원과 승리는, 축복과 영광은,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기드온 300명 용사만을 가지고 하나님은 십삼만 오천 명의 미디안을 쳐서 승리하게 하셨다.
2만2천명을 돌려보냈고, 남은 만 명중 300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돌려보내게 하셨다.
수가 많아야, 힘과 권력있는 사람들이 도와줘야, 재물이 많아야, 배운 게 많아야,
축복과 영광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하신다고 아무 때나 합리화하지 말라.
내 마음에 우상이 가득한 데, 내 마음이 새롭게 변화가 되지 않았는데,
무슨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들을 통해서 일어나겠는가?
자신을 속이고, 사람들을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도를 따라 살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을 때,
그분이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죠지 뮬러와 허드슨 테일러가 사람께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구하고
그분의 도를 따라 살 때,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환경을 통해, 그들을 축복하셨다.
이 세상 풍속을 좇는 것, 이 세상 방법을 따라 탐욕의 길을 가는 것,
우리의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사탄을 섬기는 것이다. 공중 권세잡은 자를 따라가는 것이다.
(엡2:1-6)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그 큰 사랑으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으면,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으면, 우리의 마음도, 삶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옛사람의 행위대로가 아니라, 새사람으로, 새로운 존재로, 살아야 한다.
그 새로움이, 성품 가운데, 삶 가운데, 나타나야 한다.
그 탐욕으로 뭉쳐진 비전과 목표 이전에 말이다.
이 세상 다수가 가는 그 길이, 바로 악인의 꾀를 좇는 것이고, 죄인의 길로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멸망으로 인도하고 만다.
(시1: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성경을 즐거워하여 그 법도를 주야로 묵상하는 자의 축복이 들리는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성경을 즐거워하지 않고 법도를 주야로 묵상하지 않는 사람은 무엇을 하게 될까요?
그들은 악인들의 꾀, 죄인들의 길, 오만한 자리를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지를 모르시겠는가?
몇날 몇일이 되도록, 성경 한 줄 읽지 않고, 하나님 앞에 무릎 한번 꿇지 않고,
주야로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것이 무엇인줄을 하나님이 모르시겠는가?
하루에 정한 분량을 읽었다고, 정한 시간에 기도했다는 것에, 안도할 일은 아니다.
하루 종일 무엇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며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마음을 온통 차지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애타고 속탄 것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보면 안다.
3. 하나님이 도를 행하라는 것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이다.
(신10: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도대로 행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다.
사랑과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은 우리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서이다.
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다고 했는가?
(신8:2-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에게 고난과 징계를 주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법도가 마음에 있게 하기 위함이요,
하나님의 법도로 살게 하기 위함이다.
고난이 오면 얼른 우리는 마음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있는지,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킬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 마음이 없고, 그 마음 속에, 온통 세상과 세상의 방식과 궁리로
가득차 있다면 그것부터 몰아내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고난의 해결이 아니라, 내 마음의 청소부터 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것이 고난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고난이 오면 얼른 내 삶부터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오직 떡, 떡(재물과 사업의 성취)하며 발버둥치고 있지 않았는지,
그 떡을 욕심껒 얻을려고 25시를 살지 않았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도록 만드셨다.
그래야 형통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으로 살아야지, 세상의 것을 탐하고 성취하는 일에 몰두하고,
그것의 성공 여부에 따라, 만족과 불안의 희비쌍곡선을 그리며 살 일이 아니다.
(시127:1-2)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여러분, 너무 세상 일에 매달리고 발버둥치지 마시라.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된 것으로 끝난다면 비참하잖아요?
집을 세우고 성을 지키는 일은,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되는 것이지,
사람이 제아무리 발버둥치고, 사람에게 잘 보이고, 인정을 받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적당히 하고 할만큼 하고, 세우고 지키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신다.
그 잠을 잘 자면서 건강하게 할만큼만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사시면 된다.
일과 출세가 좀 늦으면 어떻고, 당장 인정을 좀 못받는다고 그것이 대수인가요?
좀 어려운 일이 온다고, 환경이 잘 안풀린다고 그것이 대수인가요?
모든 것이 하나님 손 안에서 그분의 사랑과 공의 안에서 이루어지는데요.
그 법도에 걸리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우선 순위여야지, 그분의 도가 우선 순위여야지,
일이 우선이고, 힘있는 자에게 인정받는 것이 우선이어서는
결단코 좋은 끝을 보지 못할 것이다.
가정에 있을 때나 직장과 사업장에 있을 때나 어디에 있든
하나님을 경외함과 그분의 도가 1 순위로 우리 마음과 삶을 차지하게 해야 한다.
아브라함과 다윗이 복을 받고, 요셉과 모세가 복을 받은 것은
그들이 세상 일에 몰두하고 놀라운 업적을 내서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의지하고 의존하던 것들을 다 내려놓게 했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도록 훈련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어디에 있든 하나님의 도를 따라 살도록 고난의 훈련을 하셨다.
그 끝에 그들을 축복하셨고 영광의 자라에 세우셨고 누리게 하셨다.
우리도 어디에 있든, 어떤 고난과 역경 가운데 있든,
우리의 마음 중심과, 삶의 중심이, 하나님께 가있어야 한다.
그리고 세상 가운데 살면서도, 악인의 꾀가 아니라, 그분의 도를 따라 살기를 힘써야 한다.
사랑과 공의의 균형이 하나님의 법도이다.
억울한 일을 겪더라도, 하나님은 이 땅을 사랑과 공의로 통치하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악인이 형통하는 것을 그분의 사랑으로 허락하고 있지만,
악은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제자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 또한, 하나님의 도인, 사랑과 공의의 균형으로 살기를 힘써야 한다.
사람의 이기심과 자기 중심으로는 하나님의 도인 사랑과 공의의 균형을 살 수 없다.
하나님을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만이,
이 하나님의 도인 사랑과 공의의 균형을 살 수 있다.
그 마음과 삶에, 하나님은 행복과 형통의 복을 주시고,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철마다 열매를 맺게 하시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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