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 본문은 요즘 교회에서 설교하기를 꺼려하는 구절들이다.
가족중심 부부중심으로 돌아가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교회 고객들이 매우 싫어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이, 배우자가, 가정의 우상이 된지 오래 되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돈을 법니까?’ ‘가족을 위해서지요’.
‘왜 교회를 다닙니까?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가족을 위해서지요’라고 한다.
미국에서 교회를 다니는 이유를 물었더니 성도들은 90%가 가족을 위해서라고 답했고,
성직자들은 90%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답했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심리학이 교회에 들어와서 복음처럼 행세하고 성경을 왜곡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성경의 교리보다 상담학의 이론들을 더 가르치고 강조한 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지금 불행한 원인이 죄 때문이라고 하면 싫어한다. 책임을 져야하니까요.
어릴 때 가정에서 받은 상처가 그 원인이라고 하면 위로를 받고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그 이론에 의하면 가정은 상처를 주지 않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가정에서 자녀들을 위한답시고 하는 일들이 상처를 주지 않느냐?
심리학 전문가들은 가정에서 상처를 안주고 화평하게 잘 사느냐?
인격이 바로 서고 성숙하지 않은 이상 우리는 위한다고 하면서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그럼 그 인격을 뭘로 세우느냐?
심리학적인 방법으로 인격을 세울려고 하는데, 그럴싸한 이론과 방법과는 달리,
별로 나아지지도 않고, 세워지지도 않는다.
그 화려한 교육과 이상들이 사람과 세상을 바꿔놓치 못하고 있다.
날로 악화될 뿐이다.
지식과 삶은 다른 것이다. 그 사이의 엄청난 괴리가 문제이다.
정신만을 치료할려고 해서는 성공할 수가 없는 것이 인간의 문제이다.
인간의 뿌리와 근원은 영적인 데 있다.
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영을 먼저 살리지 않고서는,
정신만으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심리학과 세상이 모르는 분야이다.
마켓팅 전략으로 교회를 키우는 사람들은 영적인 것을 싫어하고,
고객들이 좋아하는 위로와 화평과 은혜와 평강만을 노래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심리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다.
죄의 회개 없이는 구원이 없고 천국이 없다.
예수님의 복음 전파 제 일성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이다. 세례 요한도.
상처의 치유가 아니라 죄를 회개해야 천국을 살 수 있다. 화평을 살 수 있다.
영이 살아나는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이다.
영이 성령으로 살아나야 진리를 알고 죄를 알고 회개를 하게 되고 예수를 영접하게 된다.
오늘날 교회에 만연되어 있는 마켓팅 교회들은 이 성령의 역사를 기다리지 않고
영접기도와 믿음의 고백만으로 거듭나는 것을 대체하고 완결지어버리고
그 위에 심리학적인 방법으로 인격을 치유하는 작업을 한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학위를 자랑하여 동원된다.
영이 살아나고 진리와 성령으로 세움을 받아야 인격이 성숙해지고
가정에서나 어디에서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다.
먼저 늘어지게 화평의 잠을 자고 있는 나 자신부터 주님이 주시는 검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 죄를 인식하면서 회개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게 된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화평이 주님의 검으로 깨어져야
그리고 진리의 말씀으로 다시 세워져야 진정한 화평이 찾아온다.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세상 지혜와 방법으로 세워진 인간관계의 화평이 주님의 검으로 깨어져야
그리고 진리의 말씀으로 다시 세워져야 진정한 화평, 천국이 온다.
그 과정에서 가족간의 관계는 일단은 원수지간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진정으로 성령의 검으로 한 사람이 거듭났다면 말이다.
한 사람이 교회를 다니는 데도 가족간의 관계에서 여전히 화평이 유지되고 있다?
그 사람은 거듭나지 않았거나 성령의 인도와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음에 틀림이 없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고,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면 그 동안의 화평은 깨어질 수 밖에 없다.
(고후 6:15-18)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우리 주님은 검을 주러 오셨는데 어떻게든 가족간에 화평만을 유지할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
그 화평은 거짓 화평이요, 진리로 세워진 화평이 아니다.
죄를 회개하고 세워진 화평이 아니요, 적당히 타협해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아니, 이런 거짓 화평도 없어서 아예 깨어지는 가정들도 많이 있다.
진정한 화평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화평이요, 진리의 말씀으로 세워지는 화평이요,
성령의 인도와 순종으로 세워지는 화평이다.
하나님의 화평으로, 진리의 화평으로 세워질려면,
그렇게 세워지지 아니한 화평은 깨어져야만 한다. 그 말씀이 바로 34-36절의 말씀이다.
(마10:34-36) (34)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예수를 믿으며 자기 집안 식구와 원수된 적이 없다면,
아직 주님이 주신 검을 받지 않은 것이다. 아니면, 받았더라도 그 검을 쓴 적이 없는 것이다.
주님이 주신 검으로 거짓 화평이 깨어지지 않은 것이다.
우리 주님은 거짓 화평을 깨러 오신 것이지, 진정한 화평을 깨러 오신 분이 아니시다.
천국은 부모자식간의 화평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어 영원토록 사는 곳이 천국이다.
그분이 이 땅에서 가정의 관계를 무작정 깨트리시는 분이 아니시다.
목숨을 잃어야 목숨을 얻는 것이 기독교이다.
죽어야 사는 것이 기독교이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가 되지 않고서는 가정의 화평을 세울 수 없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천국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가정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럴려면 일단은 원수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헐고 다시 세워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지 사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사람을 두려워해서는 진정한 화평을 결코 세울 수 없다.
(마10:28-31) (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거짓 화평으로 오래 황폐된 곳을 참다운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한다.
(사 58: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대대로 내려온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내가 다시 쌓아가야 한다.
무너진 데를 보수하고, 길을 수축하여 내가 내 가정을 거할 곳이 되게 해야 한다.
하나님보다 가족관계를 더 사랑해서는 하나님께 합당치 아니하다.
(마10:37-38) (37)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부모든 자녀든 그들이 우상이 되어서는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랑이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들을 파괴하고 상처를 준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우리 가정을 다스리게 해야 한다.
그 일을 위해 내가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목숨 걸고 그분과 그분의 뜻과 진리를 따르고 순종해야 한다.
그럴려면 나부터 확실히 말씀으로 세워져야 한다.
내 마음의 우상들부터 무너뜨리고 파괴해야 한다.
하나님 만나 주시는 벧엘로 가려면 모든 우상들을 다 버려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세겜에서 ‘엘엘로헤 이스라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내 생애에, 내 가정에, 하나님의 기적을 원한다면 마음과 뜻과 목숨을 걸어야 한다.
내가 헌신하지 않고서 안일한 마음으로 흘러가다가는 사망에 이를 수 밖에 없다.
(히 2:2-3)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예수님도 죽음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다.
우리도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잘못된 복음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안일하고 늘어지고 무능한 모습이 되었다.
우리는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사람으로서 주님의 생애와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히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단해야 한다.
믿음은 선한 싸움이지 안일과 게으름이 아니다.
달려갈 길을 다 마치는 것이 믿음이다. 푯대를 향하여,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믿음이다. 머뭇머뭇 한 발자욱도 떼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아까운 세월들이 덧없이 흘러가고 있다.
거짓 화평과 안일을 깨고 잠에서 깨어 일어나야 한다.
열 므나를 받았으면 열 므나를 남겨야 하고 다섯 므나를 받았으면 다섯 므나를 남겨야 한다.
그래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주님이 칭찬해 주실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받을 것이다.
그것은 업적 위주의 얘기가 아니다.
진리를 살기 위해, 순종과 헌신으로 맺어야 할 열매들을 말한다.
업적과 유명세로 요란하게 매체에 광고하며 하는 어떤 분의 장례식이 그 열매일 수는 없다.
자신과 자녀와 부모와 배우자를 우상처럼 섬기다 이스라엘은 망했다.
(렘44:22-23) (22)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과 가증한 행위를 더 참을 수 없으셨으므로 너희 땅이 오늘과 같이 황폐하며 놀램과 저줏거리가 되어 주민이 없게 되었나니 (23)너희가 분향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며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율법과 법규와 여러 증거대로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난이 오늘과 같이 너희에게 일어났느니라
평안하다고 재앙이 임하지 않는다고 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다가 이스라엘은 망했다.
(렘23:16-17) (16)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17)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힘을 다해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가족들을, 이웃들을 화평으로 세울 수 있다.
어제 설교 준비를 하고 있는데 자식을 너무 사랑하다 패가망신하는 기사를 보았다.
온갖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2년7개월동안 장수하며 외교통상부 장관하는 사람이
딸을 외교부에 단독 특채한 사건으로 여론의 뭇매를 막고 물러났다.
능력과 충성은 출중했는지 모르지만, 마음에 하나님과 법도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자식사랑으로 가정의 화평을 더할려다 화평을 깨고 몰락하고 말았다.
먼저 내가 하나님으로 말씀으로 세워진 사람만이 가정의 화평을 이룰 수 있다.
주님의 은혜와 말씀으로 성숙한 사람만이 진정한 화평을 이룰 수 있다.
그 화평은 무너지지 않는 화평이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화평이다.
나부터 먼저 순수한 말씀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 말씀 만이 진정한 삶의 힘이요 삶의 에너지이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300년간의 고난의 승리도, 청교도들의 300년간의 고난의 승리도
오직 혼잡하지 아니한,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젖어 살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말씀으로 내면의 힘을 길러야, 바깥의 낡고 황폐된 성을 허물고 다시 세울 수 있다.
그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의 원리로, 생명의 원리로 만드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드려야 한다.
헌신과 열정이 있어야 하나님의 사람도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도 이룰 수 있다.
순수한 말씀의 학교가 <나실인성경원>이다.
수원 중화교회에서 내일 출발을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인 줄 알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69세의 노태성선교사님과, 70세의 백삼택장로님과, 66세의 저가 중심이 되었다.
62세의 김영희사모와 63세의 이영숙강도사님이 적극 참여하였다.
이제껏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은 생애를 걸고, 나실인지도자들을 세우기 위해 헌신하고자 한다.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마음을 정하신 분들은 적극 참여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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