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개혁의 인식론적 이해
프란시스 쉐퍼의 사회개혁의 입장은 앞에서 논의한 교회사적 배경과 그의 시대적 상황뿐 아니라 그의 인식론적 이해에서 우선 살펴 볼 수 있다. 특별히 그의 성경적인 전제와 철학적인 기본입장에서 이미 사회개혁의 의지가 분명히 드러남을 볼 수있다. 이것은 쉐퍼의 일관성 있는 주장으로 사람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전제에 따라 일관성 있게 행동한다는 그의 전제이다. 일부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쉐퍼의 사상에 반응하기를 초기의 쉐퍼의 사역에는 근본적으로 동의하지만 후기의 쉐퍼에는 반대하는 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그가 초기의 영적인 모습에서 사회주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 아닌가? 그의 사상이 어딘가 모순이 있지는 않은가? 라는 비판과 의문을 갖는다. 그러나 이것은 쉐퍼의 말대로 자신의 사상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처사라고 볼 수있다. 쉐퍼는 그의 마지막 저서라고 할 수 있는 위기에 찬 복음주의[The Great Evanglical Disaster]의 서문에서 이러한 의문과 비판에 대하여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있음을 볼 수있다.
"나의 모든 저술을 통해 공통적이며 통합적인 제목 하나가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인생 전반에 걸친 그리스도의 주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주님이시라면, 그는 삶 전체의-주가 되셔야만 할 것이다. 나는 내 저술을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복음 전도(evangelism, 인간 남녀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구주로 알도록 돕는 행위)의 중요성과 및 주님과 날마다 걸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며 기도 생활을 하며 우리 주님의 사랑과 긍휼, 거룩하심을 나타내 보일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다시 말해서 문화와 사회의 온갖 영역에서 실생활에 옮길 필요성을 똑같이 그리고 동시에 강조해야 할 것이다.
…… 내 모순점은, 많은 사람이 내 저술의 전체 범위에 익숙해질 기회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생 전반에 걸친 그리스도의 주권이라는 그의 사상의 전제를 간략하게 성경적인 이해와 철학적인 이해에서 살펴 볼 것이다.
제1절 성경적인 전제.
쉐퍼는 『창세기의 시공간성』에서 인간이 기타 피조물과 구별된 존재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은 특이한 기원에서 나온 자임을 알고있다. 그러므로 만물이 사람에게 굴하게 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피조된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이해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이해하는 데 지적이며, 정서적이며, 심리적인 기초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관점은 자기주의의 여타의 모든 것에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기초이다. 쉐퍼는 말하기를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스리도록 허락하신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관리할 책임이 있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도덕적인 책임을 부과하는 통치권을 소유 받게하였다"
창1:26-29과 2:15절의 창조명령[문화명령]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진 영원히 변하지 않는 명령이었다. 이것은 개혁신학의 중심이기도하다. 이러한 통치는 인간의 타락 이전에도 해야 할이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 통치권을 비정상적으로 사용하였지만 여전히 통치권을 소유하고 있다.
쉐퍼는 이 사실을 주목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였다. "타락사건이 인간을 하나님과 분리시켜 놓았으나, 인간과 기타의 다른 피조물과의 원래의 구별선 까지 제거한 것은 아니다. 타락한 사람도 타락 이전의 사람만큼 중요하기는 매 일반이다." 쉐퍼는 이러한 관점을 창9:6절이 증명하고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특수한 존재인 것이다. 인간은 타락하였어도 포기되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구조는 변함이 없지만 다만 방향에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사회를 향하여 투쟁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아주 강력한 하나의 사회적 기초를 지니고 있다. 휴머니스트들은 오늘날 인류의 불행[편견된 모순점]을 위해 투쟁하고 있지만, 그들의 투쟁에는 철학적인 기초가 없다.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도 투쟁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그런 투쟁의 철학적 기초가 엄연히 있다. 내가 누구를 바라보든, 또 상대자가 어디에 있든 ,모든 사람은 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이 모든 투쟁의 기초다"
역사는 진실로 어디론가 진행하고 있다고 본 쉐퍼는 역사는 시초가 있듯이 (무에서의 창조) 역사는 흘러가며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 있으며, 성경은 본연의 평화로운 상태로 복귀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롬8:21-23 그리고 이사야11:6-9절은 바로 이러한 모습을 심리적인 변화가 아니라 외부세계의 객관적인 변화가 있을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시각은 철저하게 유대 기독교적 역사관인 절대적인 시작과 현재 역사 기간의 종말이 있다는 역사관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쉐퍼는 사람이 타락했을 때 세상이"허무한데 굴복했던"것과 마찬가지로 미래에 가서 사람이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기초해서 온전히 회복될 때에 피조물도 똑같은 기초에 입각해서 회복될 것이다. 모든 회복이 모두다 그리스고의 완성하신 사역에 근거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회복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이 회복은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길을 개방해서 의롭다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로 여김을 얻고 현 생활에서 목적 있는 삶을 살고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경지로 나아가게 하는 회복이다.
둘째 미래의 회복은 그리스도인의 몸이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변화되는 회복이다.
셋째. 만물이 최초 창조의 성품으로 돌아가는 회복이다."[계4:11,5:9-11,]
이러한 회복을 위하여 인간은 타락하였으나 가치는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쉐퍼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Novum Organum Scientiarum을 인용하기를 "타락으로 인해 사람은 동시에 자기의 무죄 상태와 자연의 통치권을 박탈당하였다. 그러나 두 개의 상실이 어는 부분적으로 비록 현세에 있어서도 교정 될 수 있다. 전자는 종교와 신앙으로, 후자는 예술과 과학으로 교정된다"
쉐퍼는 바로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이라는 것이다. 자연의 비정상성을 이해하고 자연과 인생의 것을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날인가 예수의 재림시에 완전해지고 완수될 것임은 사실이다.
쉐퍼는 개혁주의적 세계관 즉 성경적 세계관인 창조, 타락, 구속 그리고 회복이라는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에 사회개혁의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성경적인 세계관은 그의 사역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다.
제2절 철학적인 전제
쉐퍼는 우리는 어떻게 알며, 그리고 우리가 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를 다루는 『HE Is There and He Is Not Silent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에서 인식론의 문제를 다루면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에 관해 진정한 답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특별히 그의 철학적인 이해는 인간과 사회의 개혁에 대한 기초를 가지고 있다. 쉐퍼는 존재의 문제에 있어서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입장에 서서 존재의 문제를 생각하였다. 쉐퍼는 인간을 비롯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기원이 인격적인 것에 있다고 보았다.
쉐퍼는 존재의 문제에 있어서 철학과 기독교의 차이는 문제의 다름이 아니라 대답의 다름에 있다는 것이다. 실존이나 존재의 기본 개념에 대해서는 기독교의 답변이 아니면 어떤 것도 해답을 줄 수 없다고 확신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기독교적 대답은 인간 밖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계시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반면 철학적 대답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며 밖에서 주어진 어떠한 것(계시)도 수용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일종의 인본주의적인 대답이라는 것이다.
쉐퍼는 현대인의 딜레마를 단순함이라 하였다. 즉 현대인은 왜 인간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며 버림받은 존재라고 하였다. 이것은 우리 세대의 저주요, 현대인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우리 시대의 문제의 그 극복은 인간이 인격적 기원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인격적이시고 우리는 그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의 의사전달이 가능하다. 따라서 그는 인격적이라는 측면에서는 절대적 타자가 아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사실은 생각할 수도 없거나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나와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의사소통을 하시고 나는 이것을 내 머리에서 나 자신과 논의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도 논의할 수 있다. 따라서 존재의 문제에 대한 기독교의 해답은 살아 계시고 창조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인격적인 대답이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숙고해 본다면 기독교만이 다른 철학에서는 줄 수 없는 철학의 기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고 한 것이다. 존재에 대한 쉐퍼의 입장은 존재하는 인간과 인간이 조직하며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인격적인 기원에서 시작한 존재의 문제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침묵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침묵하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는 무관심 속에 흘러가는 현대인들의 사고의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쉐퍼의 존재론적 입장은 사회의 문제 특별히 인간과 사회의 잔인한 모습에 대한 문제를 인격적 존재에 바탕을 두고 도덕적인 접근을 통하여 해결하고 있음을 본다.
쉐퍼는 도덕적인 문제에 있어서의 인간의 딜레마는
"첫 번째는 인간의 인격성(인간은 비인격적이지 않다)과 인간의 한계성 사이의 긴장이며, 두 번째는 그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타인으로부터, 우주로부터 소외되었다는 사실, 즉 인간의 고귀함과 잔악함 사이의 긴장이라고 보았다. 특별히 인간의 잔인함에 대한 도덕적 딜레마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였다."
이러한 딜레마에 대하여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게 된다. 그 첫 번째 가능성은 현 상태의 인간이 본질적이고 자연적인 인간이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인간은 현 상태로 처음부터 항상 있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가능한 대답은 지금의 인간은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역사의 시. 공간에서 신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 그 참된 인간이 자신의 선택으로 비정상이 되었다는 것이 인간의 잔악함의 문제에 관한 두 번째 가능한 답변이라는 것이다. 쉐퍼는 두 번째의 입장이 기독교의 입장이고 이 입장만이 인간의 잔악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본래적인 인간과 현재의 인간 사이에 확실한 불연속이 있다는 사실과 본래적인 인간은 잔악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대답 하에서는 역사의 시·공간 속에 불연속선이 있으며 잔악함은 본래적인 인간다움이 아닌 것이 된다. 그러나 인간은 신을 반역했기에 잔악하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의 딜레마 그 중에서 잔악함의 문제는 형이상학적 문제가 아닌 도덕적인 문제인 것이다.(인간의 잔악함은 인간의 유한성이 원인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선택으로 신을 반역한 것이 그 원인이다.) "
쉐퍼는 인간의 딜레마는 형이상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인 문제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4가지의 놀랄 만한 사실들이 도출될 수 있다고 보았다.
① 신은 선하다. ② 도덕의 문제에 대한 해결의 소망이 있다.
③ (세 번째 사실은 아주 놀라운 것이지만 정통 기독교인들조차 이 사실에 대해 무지한 것 같다.인간의 딜레마에 대한 해결의 소망뿐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이 세상 에서 보고있는 불의(不義), 잔악함, 부정(不正) 등에 대항해서 싸울 수 있는 근거가 있다.
④ 우리에게 진정한 도덕이 존재한다. 절대(absolute)없이 실제적인 도덕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이것을 계속하여 시도하지만 결코 이룰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선하고, 인격적인 성경의 하나님으로 시작한다면 실제적 인 도덕은 존재할 수 있다."
특별히 인간의 잔악함 즉 인간의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세 번째의 사실을 쉐퍼에게 있어서 인간과 사회를 향한 개혁의 철학적 기반이 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정신 세계가 외적 행동을 결정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철학적 전제[세계관]의 문제이다. 사회를 향한 개혁의 첫발걸음이 바로 인간 내부의 개혁에 우선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쉐퍼는 성경적인 세계관[철학]에 입각한 개혁자로서 준비가 되어있었다.
제4장 결 론
지금까지 긴 여정으로서의 개혁주의 한 흐름과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특별히 길게 개혁주의의 흐름을 살펴 본 것은 프란시스 쉐퍼의 사상적인 맥이 어디에 있으며 특별히 그의 사회 개혁사상에 대한 무지한 오해를 피하기 위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그의 성경적인 이해와 철학적인 전제를 살펴봄으로서 그의 사상적 이론의 견고함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전통적 개혁주의자들의 사회개혁에 대한 사상은 현실적인 참여의 강조가 두드러짐을 볼 수 있다. 특별히 국가에 대한 관계는 하나님의 주권아래 존재하며 국가의 본질을 규명하는 점에 있어서 일치하며 후대로 올수록 하나님의 영역주권 사상과 일반은총의 사상이 더욱 확장 되어 감을 볼 수 있었다. 그러기에 이러한 개혁주의 사상에 대하여 일부는 프란시스 쉐퍼의 사상은 칼뱅과 베자를 걸쳐 화란 개혁주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다른 일부는 칼뱅과 낙스 그리고 청교도들의 사상을 중심으로 이어 졌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다음에서 살펴 볼 수 있듯이 프란시스 쉐퍼의 사상은 어는 쪽에 치우쳐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두 부류의 개혁주의 사상을 모두 섭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기에 프란시스 쉐퍼의 사상은 개혁주의 사고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특별히 개혁주의라고 서로들 강조하고 있지만 교회 밖에의 문제에 대한 진정한 개혁주의사상이 상실되어진 한국적인 현실에서 프란시스 쉐퍼의 사상은 매우 의미 있으며 중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의 본질을 들여다 보기 전에 하나님께서 프란시스 쉐퍼를 20세기에 부르셔서 사용하신 시대적인 배경을 이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의 시대는 진정한 개혁주의 사상가를 갈급한 심령으로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쉐퍼는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고 있었던 지성세계에 복음의 위력을 나타냈던 하나님이 보내신 인물임이 틀림없다. 쉐퍼가 활동하던 시대는 말 그대로 지성의 혼란기 였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말미암아 합리주의적 낙관론이 무너지고, 더 이상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생각지 아니한 허무주의의 삶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던 시대이다. 더구나 이때에 개방된 동양권에 대한 문호개방과 서구 시대의 새로운 사상의 주체로 떠오른 실존주의 사상, 그리고 월남전에 반대, 말 그대로 혼란의 시대였다. 더구나 이전 시대와는 다른 대중매체의 위력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던 시대요 그 동안 정신적 주체였던 교회는 자유주의 신학의 물결로 인하여 하나님 죽이기에 몰두하고 있었고, 여기에 엘비스 프레슬리로 시작되어 비틀즈로 이어지는 ROCK 음악은 젊은 지성인들을 하나로 모으기 시작하였고, 이와 함께 지성의 전당이라 하는 대학에는 온갖 마약과 섹스 그리고 히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사상이 정신없이 맴돌고 있던 시대였다. 아마도 그 만치 혼란스러운 시대는 없었을 정도로 1960년대의 상황은 말 그대로 정신적 아비규환의 시대였다.
정말로 소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시대였다. 여기에 젊은 대학생들의 과격한 분노가 데모로 이어졌고,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정의가 없으며, 하나님의 절대 진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였다. 이미 지성 세계에 있어서는 하나님은 죽은 신이 되었다. 그럼으로 많은 사람들이 동양으로의 여행을 즐겼고, 동양에서 새로운 진리를 찾으려고 애썼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절대 진리가 무엇인가를 가지고 문화적인 현상을 통한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 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으며, 참 다운 진리는 이미 있으며 그것만이 유일한 삶의 희망이라고 역설하면서 영적 오두막인 라브리를 통하여 히피와 마약, 그리고 상대주의의 유령에 휩싸여 있는 젊은 지성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증거 하였다. 참다운 절대적 진리가 존재함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쉐퍼의 전도 방법이나. 접근 방법은 많은 사람들을 깨우게 하였고, 지성 세계에 도전을 주게 되었다. 그의 영향은 정치, 경제, 문화, 교회 그리고 학계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영향을 주었으며, 20세기의 위대한 복음주의 지도자로 인정받았다. 그의 복음전파는 이전까지 지성에 대하여 무관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전이 되었고, 사회 역시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확고히 말함으로써 교회로 하여금 새로운 눈을 뜨게 하였다. W. C. C.식의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인하여 사회참여에 부정적인 복음주의 교회로 하여금 바른 시각을 가지고 복음주의적인 사회참여를 가져오게 하는 새로운 변화를 주었다.
'좋은 말씀 > 프란시스 쉐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쉐퍼의 사회 개혁운동의 시대적 이해(8) '현실적 파수꾼으로서의 사역' (0) | 2016.05.30 |
---|---|
쉐퍼의 사회 개혁운동의 시대적 이해(7) '선지자적 현실주의자로서의 쉐퍼의 사역' (0) | 2016.05.29 |
쉐퍼의 사회 개혁운동의 시대적 이해(5) (0) | 2016.05.25 |
쉐퍼의 사회 개혁운동의 시대적 이해(4) (0) | 2016.05.23 |
쉐퍼의 사회 개혁운동의 시대적 이해(3) (0) | 2016.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