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로마서강해

롬12:1-2 [로이드존스-로마서 강해]

새벽지기1 2016. 5. 24. 12:14


1. 성경적 성화의 특징들


이제 우리는 12장 처음 두 구절을 대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는 그리스도인의 행실을 지배하는 위대한 원리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① 바울은 형제들에게 명령을 하지 않고 “내가 너희에게 간절히 간청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신약 성경의 특징입니다.

❶ 모세는 명령을 했지만, 사도는 권합니다.

❷ 교회를 주장하거나, 교회에 명령하거나, 교회에 억제를 가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② 우리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도록 설득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우리는 행실과 행동과 품행을 크게 강조하는 것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것은 동기의 문제인데, 그리스도인이 기계적으로 순종한다고 해서 그것이 선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❶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하나님의 양식을 따르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라고 하기 때문에 한다는 식으로 행해서는 안 됩니다.

❷ 지성적인 이유 없이 행동하지 말아야 하는데, 어째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이래하지 못한 채 어떤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지 말아야 합니다.

❸ 우리의 행동이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❹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기계적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③ 칭의가 뜻하는 바는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와 실패를 당신의 아들에게 짊어지우시고 우리의 죄 때문에 그 아들에게 벌을 내리셨다는 뜻입니다.

❶ 그 의에 비추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은혜롭고 값없이 용서하시며, 우리를 당신 자신과 화해시키신 것입니다. 

❷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❸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3:28) ❹ 그러므로 사람들이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교리를 이해하지 않는 한 결단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④ 우리는 아담 안에 있었고, 아담 안에서 실패하였으나 우리가 아담 안에 있었던 것처럼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였습니다.

❶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❷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령을 우리의 마음에 두셨습니다.(롬8:14)

❸ 그로 인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새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거듭났으며, 새로운 성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❹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 속에 계셔서 그들 속에서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❺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선한 삶을 영위하고 싶어 하며 바로 그러한 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행실은 항상 우리의 교리에서 영위됩니다.

❶ 그들은 복음에 합당하게(걸맞게) 생활을 합니다.(빌1:27)

❷ 그들의 행실은 어째서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구원의 목적에 맞는 삶을 살고자 노력합니다.

❸ 그리스도인의 행실은 필연적으로 교리에 비추어 항상 존재하는데, 아는 지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데 까지 나아갑니다.

❹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하려고 노력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영광의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⑥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❶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화해만 하거나 죄의 용서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는 “거듭났습니다.”

❷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❸ 또 새로운 피조물이고, 새로운 관망이 우리 속에 있으며,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있습니다.

❹ 이것이 행실과 품행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입니다.

⑦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동기는

❶ 첫 번째 동기는 지성적인 것입니다. 그 삶은 이지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단순히 자기들의 느낌과 충동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이해로 통제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고 또한 자기들이 그에 합당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므로”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❷ 두 번째 동기는 마음에 호소하는 문제입니다. 복음의 호소는 단순히 지성만을 향하지 않고 항상 정서들을 수반합니다. 시편 116:12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또 시편130:3~4에서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진실로 인식하고 감사를 표시하고자 합니다.

❸ 우리가 이 위대한 동기를 실행해야 할 때 인식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 전체, 우리의 몸과 영혼과 혼을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⑧ 롬11장의 “드리다”라는 말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처분에 남김없이 내어 놓는다는 뜻입니다.

❶ 우리는 자원하는 심령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복종시키고 넘겨드리는 것입니다.

❷ 왜냐하면 우리를 향해 행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입니다.

❸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를 위해서 최상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2. 살아 있고 거룩한 제사들


우리는 “너희 몸을 드리라”에 나오는 이 위대한 말 “드리다”란 단어를 전에 살펴보았는데, 이 말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때에 사용되는 전문적인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여기서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노예로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① 바울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육체적인 틀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것은 믿음의 큰 싸움을 하는데 우리에게 도움을 줄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함으로 우리에게 그처럼 자비하셨던 하나님의 열망을 헤아리는 이 열심을 내도록 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몸을 드려야 합니까? ❶ 그것은 우리의 이지뿐만이 아니라, 전인이 수반되어 몸(육체적인 형질)도 구원받아야 하는데, 몸의 구속이 최종적인 구원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아담의 타락은 영, 혼, 몸의 전체적인 타락)

❷ 우리 형제의 각 지체들의 상호 관계나 연합성을 우리가 알아야 하기 때문인데, 몸은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우리의 몸을 멸시하거나 죽으면 썩어질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❸ 몸은 우리의 영혼이 행동하는 도구이기 때문인데,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영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영혼은 전체의 인격상 우리 각자의 존재하는 몸, 육체적인 체질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며, 몸이 없이 영혼만 있을 수 없고 영혼 없이 몸만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❹ 몸이 결국 유혹과 죄의 주요한 원천 중의 하나이기 때문인데, 만일 우리가 몸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죄악 가운데 거하게 된다면 그 사람의 영혼이 고통을 받게 되며, 죄는 몸의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모든 거듭난 사람들의 몸을 장악하려고 위협하므로 우리의 몸이 죄와의 싸움의 가장 큰 전쟁의 장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❺ 물론 이것은 타락의 결과인데, 구속받은 사람들 안에 있는 죄의 자장 중요한 좌소가 몸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죄로 우리의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않아야 합니다.(롬6:12; 7:5; 8:12~12)

② 우리가 거듭나 구속함을 받은 지금에도 육체와 마음의 소욕이 여전히 만아 있습니다.(엡2:1~2; 민33:55) 그래서 사도는 여기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함으로 그것에 대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엡2:3; 약3:5~6; 벧전2:11)

❶ 내 몸을 산제사로 드려야 하는 이유는 나의 존재 전체, 내 몸의 모든 지체를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고전6:20)

❷ 우리는 영혼은 물론이고 몸으로도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③ 몸을 제사로 드리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끊어서 자신의 죽은 몸을 드리라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❶ 그냥 항상 앉아만 있는 생명이 없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❷ 우리는 항상 살아 있어야 하는데 우리 주님 자신이 친히 산돌인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이 성전 안에서 산돌들입니다. ❸ 주님은 하나의 머릿돌이신데, 그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❹ 우리는 몸을 매일같이 시간 시간마다 계속 자기의 살아 있는 몸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죽은 짐승과 산 사람 사이의 차이입니다.

❺ 우리는 몸을 위해서 살지 않으며, 몸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❻ 그렇다고 몸을 함부로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진 성령의 전이기 때문입니다.

❼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자로서 하나님 앞에 살아 있는 자이며, 더 이상  죽은 자가 아니기 때문에 살아있는 행동으로서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④ “거룩한”이란 말은 “구별하다”는 뜻을 가지며 “흠이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❶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 몸을 부단히 흠 없고 점 없이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❷ 우리는 자유로운 상태로 하나님께 몸을 드려야 합니다.

❸ 자신의 몸을 매일 같이 드릴 때 거기에 달콤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날 정도의 조건으로 몸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❹ 하나님께 올려질 때 하나님께서 드리는 제물을 받으시기에 매우 만족해하시는 그러한 조건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❽ 우리는 이제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해서만 사용합니다.

⑤ 본문에서 사용된 “예배”라는 말씀은 빌립보서 3:3의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는 말씀에서 사용한 “봉사하며”라고 번역된 말씀과 동일한 헬라어로서 예배와 봉사는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용어들입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행위로서 내 삶 전체가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조 : 주제 설교 中 예배의 목적, 예배의 방법]


3. 교회 안에 존재하는 세상 정신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행실을 주장하는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제 우리는 “이 세상”의 통제를 받거나, 그 세상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말씀을 대하게 됩니다.

① 신약 성경에서 “세상”이란 말을 통해서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❶ 가장 우선적으로는 하나님과 무관하게 생각되거나 조직되거나 영위되는 삶으로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도 않고 하나님께 통제를 받거나 지배를 당하지 않는 삶을 나타내기 위해 쓰입니다.

❷ 세상이라는 말은 타락의 결과로 마귀에 의해서 주도되는 삶과 행동의 방식을 말합니다.(고후4:3~4)

❸ “육체”라는 용어에 함축되어 있는데, 이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세상적인 유의 삶을 나타내는 말로 쓰입니다. 세상은 육체를 따르며 사망에 이르게 하며 영의 생각은 성령을 따라 행하고 생명과 평안이 됩니다.

② 그들에게 그리스도인다운 행실, 즉 기독교적 행실을 요구할 수가 없는데, 그것은 마귀와 그 세력들이 이 세상의 삶인 정치, 예술, 쾌락과 같은 것들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엡2:2; 6:12)

③ 세상의 생각은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요일2:15~16)

④ 세상이 기독교적인 행실을 할 수 없듯이, 우리는 세상의 사고방식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습니다.

❶ 왜냐하면 그것은 “세상”이기 때문이며, 우리는 “세상을 본받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❷ 그리고 우리의 사고와 관념, 우리의 실제, 우리의 모든 것들이 위로부터 주어진 계시,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속에서만 가지는 계시의 통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4. 이 세상을 본받지 않음


교회가 세상의 사고방식을 기독교적으로 만들 수도 없지만, 이 세상의 정신에 의해서 주도 되어서도 안 됩니다.

❶ 그러므로 교회가 신학에 대한 사고방식, 복음 전도와 그 교회의 윤리에 대한 사고방식을 세상의 정신이나 세상의 관점에 따라서 나오도록 허락해서 하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것입니다.

❷ 로마 교회가 갈릴레오를 대적한 태도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성경만으로 자기들의 사고방식을 결정하지 않고 오히려 성경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조합시킨 관점에서 사고방식을 결정함으로서, 천문학에 관한 새로운 가르침을 반대한 것입니다.

❸ 새로운 천문학이 로마교회가 우주에 관해서 항상 가르쳐 왔던 것과 합치 되지 않기 때문에 그 새로운 천문학을 정죄하였던 것입니다.

❹ 우리는 항상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의 지배를 받아서, 만일 성경이 어떤 문제에 대해서 우리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❺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견해이며, 우리는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① 세상의 사고방식에 복종하지는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등하게 새로운 것은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전통주의자들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선한 전통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❶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전통주의를 조심해야 하는데, 우리 주님이 그들을 대하셨던 반응들에서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❷ 그리고 우리 자신의 선입관이나 전통에 조정되지 말아야 합니다.

❸ 성경적인 사고방식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 금방 우리 자신은 하나님께서 복잡하고 어려운 시대에서 행하고 계시는 어떤 새로운 일을 거부하는 데로 빠져들게 됩니다.

❹ 우리는 두려움의 정신의 지배를 받지 말아야 하는데, 자기 자신이 언제나 옳아야 한다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면 자신을 위험한 입장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❺ 우리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로부터 시작해야 하며,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상태 그대로로 다루되 모든 방편을 다 동원하여서 주님을 아는 지식을 그들에게 인식시키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❻ 변화를 위해서 변화를 추구하지 말아야 함은 그것이 세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변화가 다 그릇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❼ 우리가 하나님의 행사를 비평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에는 결함이 있다고 생각되더라도 하나님께서 높이시려고 준비하신 것을 비평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② 우리는 자신의 심령을 주시함으로서 세상적인 방식들을 거절하는 일에 매우 분명한 태도를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짓된 정신을 발전시켜 나가지 않도록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③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라는 말씀을 오해하여 극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❶ 세상을 본받지 않을 유일한 방식은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과격한 반응입니다.(은둔주의 뒤에는 심각한 기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❷ 은혜 아래 있는 것보다 율법 아래 있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율법의 원칙만을 생각하고 그 정신을 생각하지 못함으로 어떤 법칙이나 규례들을 좋아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러한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❸ 직접 행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조장하거나 그것을 통해 어떠한 이득을 취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어떠한 인간 전통이나 선입관에 의한 규례를 세워 놓는 것은 성경적인 사고방식을 멈추게 합니다.

④  한편 이러한 권면을 전혀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인데, 그것은 무 율법주의(도덕 폐기론)의 위험입니다.

❶ 세상을 본받으면서도 복음주의에 관심을 가지는 척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인위적인 어떤 행위들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❷ 어떤 것이 죄악적인 것으로 분명하게 판명이 났으면, 그리스도인들은 거기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조차 하지 말고, 거부해야 합니다.

❸ 자신 속에 세상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어떤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세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❹ 세상의 유행에 지배를 받지 말아야 하는데, 세상의 유행과 외향과 허식만큼 세상을 보다 더 우습게 보이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❺ 우리는 모든 극단을 피해야 하며 심지어 세상을 따르지 않는 정신에 있어서도 과격하지 말아야 합니다.

❻ 자신을 과시하거나 어떤 분야에서 두드러진 부분을 뽐내지 말아야 합니다.

❼ 만일 우리 자신이 세대를 본받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도록 사람들이 알도록 과시하고 있다면, 그것 또한 사실상 교묘한 방식으로 세대를 본받고 있는 것입니다.

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합니다.(빌1:27)

❶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괴짜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선보다 해를 더 끼치게 됩니다.

❷ 그리스도인들은 절제하는 온유한 사람들입니다.

❸ 그들은 우리 복되신 주님 자신을 닮은 사람들입니다.

❹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시면서 행하실 때 아무도 몰라보게 행하셨습니다.


5.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


이 두 구절에서 사도는 많은 방면에서 신약 성경 어디서든지 성화에 대해 가르치는 바를 가장 주목할 만하게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성화의 문제는 신약에서 하나의 위대한 주제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 성도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사도는 우리에게 이러한 유의 삶을 살라고 촉구하면서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러 동기들과 이유들을 말하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 때문에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는 말씀에서 “변화를 받는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❶ 마태복음 17:1~2의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라는 말씀에서 발견되는데 여기서 “변형되사”라고 한 말은 본문의 “변화 받아”라는 말과 정확히 같은 말이며, 같은 개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변화산상에서 그러한 방식으로 나타나셨고, 그러한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당신의 내면적인 본질과 존재에 대한 어떤 인상을 사람들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❷ 고린도후서 3:18에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는 말씀에서도 정확히 같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❸ 이 말씀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계속 변화되어나가야 한다는 것인데, 그리스도의 영광에 속한 무엇이 우리 속에서 나타나야하며, 사람들 중에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영화롭게 하시는 것은 우리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②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이미 변화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❶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의 중심과 사고방식에 따라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부자연스러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❷ 그러니 그렇게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❸ 우리가 가면을 벗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❹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전 행실을 단순하게 수정하거나 개선하는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을 더 이상하지 말아야 합니다.

❺ 우리가 거듭났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을 안다면, 이제 그 마음과 사고방식과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이해의 영역에서 생각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❻ 그리스도인은 삶의 어떤 특별한 난제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총체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❼ 예수님께서는 행실을 고치라고 요구하지 않으시고 성품의 변화를 요구하셨습니다.

❽ 다른 말로 한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행실은 마지막 산물이지 첫 번째 관심거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❾ 우리는 성품의 변화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어떠한 사람인지 인식하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③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을 변화를 받아” 이 권면은 먼저 어떤 특별한 난제들을 거론하지 말고 이 일에 대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애를 쓰거나, 그 문제를 해결 지으려고 애를 씀으로 자신의 삶을 여러 조각으로 나눠서 다루는 식으로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❶ 우리의 사고방식을 먼저 바르게 하고 그 전체 관점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❷ 언제나 전체로부터 시작한 다음에 그 입장에서 부분들을 맞추어 나가라는 말입니다.

④ “다시 새롭게”라고 한다는 것은

❶ 우리가 한때 지금은 더 이상 가지지 않은 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❷ 우리가 그 참된 마음을 상실했다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무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❸ 그러니 상실했던 그 마음을 되찾는 것이 필요하고, 상실된 그 조건이 회복될 필요가 있습니다.

❹ 마음을 다시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다는 것은 계속되는 과정입니다.

❺ 다소 사람 사울은 명석한 두뇌를 가진 매우 뛰어난 지성인이었지만, 심령이 변화 될 필요가 있었듯이, 세상에는 명석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그것을 수완으로 하여 무가치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❻ 그러므로 두뇌는 하나의 수단이며, 기능의 국면에서 도구에 불과합니다.

❼ 한 사람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마음의 정신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열쇠가 되는 요점은 바로 그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⑤ 사람의 행실을 다룰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요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거듭남입니다.

❶ 그래서 기독교의 이름으로 기독교 교훈을 세상의 문제에 적용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❷ 기독교는 항상 내면적인 상태를 문제 삼습니다.

❸ 그것은 심령의 변화, 내면적 존재의 발산을 말하는 것입니다.

❹ 사과나 복숭아의 열매들의 모형과 실제 과일의 차이는 나무의 내면적인 생명으로부터 왔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차이입니다.

❺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 세상에서 가장 도덕적인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단순히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생명과 상관이 없는 모형과 생명으로부터 나온 실체라는 본질적인 차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6. 영원을 향하여 가는 순례자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있는 모든 것은 이제 우리가 가진 새로운 주의에 비추어서 숙고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행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소극적이거나, 작거나, 어떤 두려운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만일 그런 인상을 끼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매우 큰 누를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독특하여 우리에게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생각하고 그에 합당한 존재가 되라고 하며, 우리가 어떠한 사람임을 인식하여 우리가 어떤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라고 합니다. 그것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을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① 바울은 “너희는 거듭났으니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말하는데 이 말씀은 실제로 어떤 상태를 뜻하는 것인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❶ 우리는 그저 우리 체험이나 우리 속에 역사하는 성령의 활동하심에만 내맡긴 상태가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이시며 성령께서는 우리를 돕고 가르치셔서 우리에게 제시된 진리와 친숙하게 합니다.

❷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안내 하는 바에 따라 이 가르침을 함께 이지와 이해력을 함께 사용하면서 노력합니다.

❸ 우리가 진리에 익숙하여 져서 그것을 알았고, 또한 포착하고, 이해했으니 이제 그것을 부단히 적용해 나갑니다.

❹ 우리 모두는 습관의 노예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같은 방향으로 나가는 일에 너무나 익숙하여 있고, 거듭났다 하더라도 자동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❺ 우리의 마음이 옛날에 자신이 걸었던 그 길로 미끄러져 돌아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을 추스르고 다른 방향으로 그 마음의 생각을 돌려야 합니다.

② 우리는 이제 다른 사람을 볼 때 새로운 방식으로 보아야 합니다.

❶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나기는 했지만 사람들에 대해서 늘 하던 방식대로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가 흔합니다.

❷ 그 말은 다른 사람들이 행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옛 방식대로 반응을 나타낸다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❸ 예를 들어 우리는 그 사람들을 아주 어려운 자들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❹ 그들이 있는 그 모습대로 보아야 합니다.

❺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면 사단의 노예들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에 그들을 보고 안됐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❻ 우리 주님께서도 수많은 군중들을 둘러보시면서 “저희가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함”을 보시고, 연민으로 가득 찼습니다.(마9:36)

❼ 우리가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보아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더 이상 본능적으로 대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③ 새로운 사고방식의 통제를 받는 한 매우 예리한 방식으로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인데, 시간은 너무 짧고, 영원한 세계는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미 자신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계신 그대로 뵈올 때에 우리 마음의 주도적 느낌이 부끄럼이라면 그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이 되겠습니까?

④ 우리 주님께서 정결하시니 나 자신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7. 그리스도인의 행동 목표

이제 2절의 마지막 어구인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말씀을 숙고할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① 기독교 윤리의 목표는 내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전체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키는데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구원에 대한 우리의 관점과 걸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② 여기서 사도는 우리를 그 수준을 높여, 이 위대한 가르침의 본질적인 특성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❶ 성경은 바로 그것에 관해서 존재하는 책인데, 성경은 인간 존재에 관한 다른 관점을 우리가 가져야 함을 일러 주고 있습니다.

❷ 그런데 우리의 모든 고통거리는 그릇된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❸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지음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❹ 사람은 지상에서 하나님을 대리하는 자로서 존재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을 받았고, 또한 하나님의 동반자로 존재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❺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을 위해서 만드신 것은 사람이 계속 하나님과 교통하고 교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③ 우리 주님께서는 첫째 되고 제일가는 계명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12:30~31)라고 요약해 주셨습니다.

❶ 우리 주님께서는 그 표준을 아주 크게 높이셨습니다.

❷ 그 말씀은 사실상 “너희가 삶을 영위해야 하는 마땅한 방식은 너의 존재 전체를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되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되도록 살아야 한다.”라는 말씀입니다.

❸ 또 베드로 전서 1:16에서는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할지어다.”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실천적인 방식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에 대한 개념입니다.

❹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의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❺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우리가 마땅히 거룩해야 된다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❻ 자유케 하는 온전한 율법(약1:25)을 단순한 규칙이나 금기사항이나 계약조건으로 격하시켜서는 안 됩니다.

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그렇게 하신 것은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벧전2:9)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삶을 영위하는 방식입니다.

❽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❾ 우리 주님께서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하셨습니다.

④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지옥에 가지 않는 것도, 술 취하지 않는 것도, 음행을 저지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⑤ “분별하다.”라는 말의 내용은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는 것에 대해서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인데, 우리가 그렇게 우리 속에 계신 성령의 역사와 합력할 때만이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❶ 엡5:8,10에서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정확히 같은 개념입니다.

❷ 빌1:9~10에서도 역시 같은 단어를 만나게 되는데,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입니다.

❸ 그러므로 사도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순종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관한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❺ 우리 구원의 결과로 마음이 새롭게 되어 우리가 해낼 수 있게 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⑥ 사람들의 궁극적인 표준은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거룩이어야 합니다.

❶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며, 그 마음을 새롭게 하는 과정에 용기를 가지고 모든 일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우리의 전체 태도가 바뀌게 됩니다.

❷ 하나님의 뜻이 선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정말 그 뜻이 선한 뜻임을 검증하게 될 것입니다.

❸ “우리가 알거니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와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인뿐입니다.

⑦ 우리가 고통에 빠져 있거나 환난 당한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❶ 우리가 환난을 당하나 그 원인을 알지 못하고,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소망이 없는 병이 들어 아팠어도, 거기에다 다른 수많은 난제들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❷ 우리는 자신을 의뢰하지 않고 이 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하나님께 의지하여 바라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고후 1:9~10)

❸ 우리가 죽음의 문턱에 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선합니다.

❹ 그 당시에는 그것을 언제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정말 선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압니다.

❺ 우리는 항상 사실상 “내가 환난을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출처 :skdmltkfkdwnsla님의 플래닛입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 하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