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기독교강요

문병호 교수의 <기독교강요> 지상강좌 (5) / '만물은 하나님 영광 노래하는 극장'

새벽지기1 2016. 5. 2. 06:35


만물은 하나님 영광 노래하는 극장

놀라운 창조사역 평생 묵상하여도 지루하지 않아…표적만 좇지 말아야


'제5강좌' 피조물: 하나님의 영광의 눈부신 극장(기독교강요 1.14.1-22)

 

  
 ▲ 문병호 교수 

1. 창조주 하나님의 손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지으셨다. 그러므로 시간과 공간에 갇히지 아니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 계시지만 그 너머에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공간이 아닌 곳에도 계신다. 시간을 다 더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영원히 계심에 닿을 수 없고 공간을 다 모은다고 해서 하나님의 어디에나 계심을 채울 수 없다. 하나님께서 영이심은(요 4:24) 그 분께서 스스로 계심을 의미한다. 지어진 것은 모두 물(物)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시니 영이시다(1.13.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원하심(aeternitas)’과 ‘스스로 계심(auvtoousia)’과 ‘능력(virtus)’ 가운데 우리에게 ‘긍휼(misericordia)’과 ‘심판(iudicium)’과 ‘의(iustitia)’와 ‘거룩하심(sanctitas)’으로써 역사하신다(1.10.2).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자신에 대해서 유일하며 진정한 증거가 되신다’(1.11.1). 가톨릭은 우상을 무식한 사람들의 책으로서 신앙 교육상 필요한 것으로 인정한다(1.11.5). 그러나 우상은 하나님을 거역하는바 그 분께서 지으신 것을 경배함으로써 그 분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단순히 우상만을 예배하든지 하나님을 우상으로 예배하든지 그곳에는 조금도 차이가 없다(1.11.9). 형상을 하나님으로 예배하거나 하나님을 형상으로 예배하거나 서로 다르지 않다(1.11.12).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그 분 자신에 주목하지 않고 그 분 자신이 만든 것을 섬긴다. 그리하여서 지으신 분을 망각하고 그 분께서 행하신 표적만을 좇는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우상을 만들어 내는 영원한 공장(工場, idolorum fabrica)’과 같다. ‘마음은 우상을 잉태하고 손은 그 우상을 만들어 낸다’(1.11.8).


창조주 하나님을 진실하게 알지 못하고 그 분을 예배치 않으면서 단지 그 분께서 지으신 것들만 바라고 붙드는 것이 곧 우상숭배이다(1.12.1). 이사야 선지자는 형상으로 하나님을 비길 것으로 여기는 자들을 질책하면서,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깨닫지 못하였느냐”(사 40:21) 라고 반문하였다. 창조주께서는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지어진 것 자체가 아니시며 그것의 기(氣)나 정신(精神)으로 대체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뻐하심(euvdokia)에 따라서 만물을 지으셨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극장으로서, 그 분의 은총을 기념하는 훈장으로서, 그 분의 어떠하심을 비추는 거울로서, 그 분의 섭리를 그러내는 그림으로서 지어졌다.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과 함께 만물을 지으셨으므로 시간과 공간을 연장한다고 한들 그 분의 무한하심에 이를 수 없다. 만물이 존재함은 오직 하나님의 ‘뜻(voluntas)’에 의해서이다. 물론 사람도 예외가 될 수 없다(1.14.1).


모든 피조물의 지어짐이 이러하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두고 평생을 묵상하여도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시선을 어디로 향하든 하나님께서 빚으신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에 압도되지 않을 사람 아무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의 모든 좋은 것을 지으신 후 사람을 창조하셔서 함께 안식에 들어가셨다. 이렇듯 창조의 순서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부성적인 사랑(paternus Dei amor, fatherly love of God)’을 여실히 계시한다. 천지를 지으실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복리(utilitas, 福利)’를 귀하게 여기셨다. ‘만약 하나님께서 아담을 황량하고 공허한 땅에 두셨다면, 만약 빛이 있기 전에 아담을 지으셨다면, 그 분께서는 아담의 복리에 충분하게 주신 것으로 여겨지지 않으셨을 것이다. 실로 그 분께서는 사람의 필요를 위하여 해와 별들의 운행들을 주장하셨으며, 생물들로 땅과 물들과 공중을 채우셨고, 음식에 족하도록 과일들을 풍부하게 맺게 하셨다. 그리하여서 하나님께서는 미리 바라보고 부지런히 가족을 돌보는 아버지의 책임을 떠맡으셔서 우리를 향하여 자신의 놀라운 자비를 보이신다’(1.14.2).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가진 사람에게 영광을 받기 위해서 자신의 ‘섭리(providentia)’와 ‘부성적인 배려(paterna sollicitudo)’ 가운데 먼저 인간에게 유익하다고 예견하시고 예지하신대로 모든 것을 지으셨다. 이제 그 하나님의 창조의 ‘손(manus)’이 섭리하심으로 그 분께서는 자신에게 속한 자녀들을 성실하게 보호하시며 가르치고 양육시키신다(1.14.22).


2.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함과 부요함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성령의 권능으로 하늘과 땅을 무로부터(ex nihilo)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종류대로 생물들과 무생물들을 지으시고, 각각에 적합한 특성을 부여하시고, 그 특성에 맡는 기능을 맡기셔서 정한 곳에서 정한 일을 정한 법칙대로 행하게 하셨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은밀한 손에 의해서 배양되며 새 힘으로 공급받고 종이 멸절되지 않도록 보호받는다. 창조주께서는 마치 웅대하고 화려한 저택과 같이 가장 아름답고 정교한 식양에 따라서 마련된 장식들로 우주를 채우신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유려한 아름다움과 그토록 위대하고 다양한 은사들로 사람을 장식하셔서 자신의 작품들 중에서 최고의 표본을(praeclarissimum specimen) 제시하셨다.’

“그러므로 이 가장 아름다운 극장에 드러나 표현된 하나님의 작품들을 즐기는 것을 부끄러워 말자!”(1.14.20).


하나님께서는 또한 자신의 ‘일꾼(minister)’으로서 천사를 창조하셨다. 창세기의 기사는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만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창 2:1) 라는 말씀 가운데 천사의 창조도 6일 중에 이루어졌음이 천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천사 역시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마니는 선한 것들의 기원이 하나님이신 반면에 악한 것들은 사탄으로부터 지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타락한 천사는 처음부터 그렇게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하게 지으셨다. 그러므로, ‘죄는 본성으로부터가(ex natura) 아니라 본성의 부패로부터(ex naturae corruptione) 나온다’(1.14.3).


천사와 관련해서 우리는 건덕에 도움이 되는 교훈에 만족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께서 말씀하신 것을 자신의 백성이 받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일체의 ‘공허한 사색(vana spectulatio)’을 피하여야 한다.

‘신학자의 임무는 수다스럽게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것들(vera), 확실한 것들(certa), 유익한 것들(utilia)을 가르침으로써 양심을 확증하게 하는데 있다’(1.14.4).

천사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경영자들이며 수행자들이다.’ 그들의 손이 우리를 붙들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며(시 91:11-12) 우리를 둘러 진 치고 건지신다(시 34:7). 그들의 섬김으로 광야의 인생길 가운데 이스라엘의 진이 보호되었다(출 14:19; 23:20). 천사들은 그리스도의 나심을 고지했으며(눅 1:26-38) 그 분의 나심을 찬양했다(눅 2:13-14). 천사들은 예수를 수종들고(마 4:11) 그 분의 기도에 힘을 더하였다(눅 22:43).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자신의 은혜를 베푸실 때 천사들을 일꾼으로 사용하신다(1.14.6).

천사들은 하나님의 일을 수종들며 동시에 그 분의 영광을 찬미하는 도구로 사용된다(1.14.5).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에게 수종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시 103:20-21).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히 1:14) 단순한 성질이나 영감이 아니라 ‘실체(substantia)’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의 손으로 율법을 주셨다(행 7:53; 갈 3:19). 천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며 그들의 머리로서 중보하시는 그리스도를 수종든다(엡 5:23; 히 1:6). 주님께서는 마지막 날 천사들과 함께 강림하실 것이다(마 25:31; 눅 9:26).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천사들의 머리(caput)되신다(1.14.9).


천사들은 ‘하나님의 손’으로서 사용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분께 붙들려 은혜 받게 돕는다. 결국 천사들은 중보자 그리스도의 사역을 돕는 일꾼들로서 사용된다. 만군의 주께서 서 계시는 사닥다리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섬긴다(창 28:12; 요 1:51). 천사들의 직임은 중보자 그리스도의 중보를 돕는데 있다(1.14.12).

타락한 천사인 마귀는 본래는 하나님의 천사였으나 스스로 타락하여 ‘거짓의 아비’가 되었다(요 8:44).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벧후 2:4) 심판하심은 그들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이기 때문이다(유 6). 그러나 타락한 천사들도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된다. 심지어 타락한 천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때도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의 허용이 없고서야 되지 않는다(1.14.16-19).

사람과 천사와 더불어 모든 피조물 가운데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지혜(sapientia), 권능(potentia), 의(iustitia), 인자(仁慈, bonitas)’가 빛나고 있다. 지어진 모든 것들 가운데서 우리는 지으신 분의 어떠하심을 ‘마치 거울들을 통해서(sicut in speculis)’ 보듯이 본다. 모든 만물이 이토록 수려하고 조화롭거늘 ‘그 예술가(artifex)의 위대하심’은 어떠하랴!

“실로 하나님의 권능으로부터 나오는 많은 기적들은 그 분의 선하심의 표들만큼이나 많고, 그 분의 지혜의 증거들만큼이나 많도다. 그 수는 사물들이 작든지 크든지, 그 사물들만큼이 되도다!”(1.1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