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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5 (엡1:3절 -2) / 로이드존스

새벽지기1 2016. 4. 10. 09:56


1장 3절 (2) :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우리는 언제나 사도바울이 한 것처럼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로부터 시작하고, 그런 다음에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언약으로 나아가 실질적인 복락을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위한 일에만 관심이 많아서, 우리가 누릴 복에만 관심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는 일에나 다른 어떤 방면에 있어서든지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는 일을 저돌적으로 성급하게 하지 않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가를 먼저 생각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하여 예절을 지키는 일을 기피한다면 그 사람을 무례한 자라고 할 것이 분명한 것처럼,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 무례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대통령에게도 그러할 진데 하나님께는 더욱 예의를 갖추고 나가야 할 것이며, 그분의 영광됨을 찬양하고, 또 그분이 하신 일에 대하여 칭송과 영광을 돌리는 일을 잊지 말고 제일 먼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 “나”라는 개인에게 복을 얻게 하기 위하여 어떤 일들을 하셨는가를 조목조목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 이제껏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리고 나서 자기의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간청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나가는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축복을 더욱더 누리게 될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에게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성급하게 자신의 문제로부터 시작하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에게서도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고 나온 사람이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보다 먼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하소연을 합니다. 물론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자신이 처해 있는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예배를 드리기 전에 개인적인 시간을 내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자세는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와서 무슨 빚을 받으러 온 사람처럼 이것저것들을 해결해 달라고 혹은 이런 저런 복을 달라고 다짜고짜 졸라대기 시작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예배드리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대접을 받기 위해서 혹은 하나님께 용무가 있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나간 사람, 어떻게 보면 그는 마치 채무자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예배는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서, 어떠한 것을 받기 위해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구원해 주신 은혜와 이제껏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기쁨으로 그분의 업적을 찬양하며 경배하러 나가는 축제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울며 회개함으로 나가는 것은 잔치 상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개인적인 시간을 내서 기도할 때에 해야 할 것이고, 예배드리는 시간에 까지 끌고 들어오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누릴 하나님의 축복의 경로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은 축복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에 대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 그 원천을 접함에 있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언제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축복이 실제로 어떤 방식과 어떤 길로 우리에게 오는지를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복락들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게 되는데 그를 떠나서는 우리는 결코 어떤 복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류 전체가 누리고 있는 일반적이며 공통적인 복락들은 하나님의 “일반 은혜”에 의해서 선인에게나 악인에게 고루 내려집니다.(마5:45) 경건치 않은 사람들이 누리는 복락도 하나님께로부터 오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방식을 통하여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특별한 은혜는 아무나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한 은혜의 복락과 특권들이 주어지는데, 우리는 이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복락은 세상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일반적인 복과는 달라서 온전한 만족을 줄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세상 천지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욕심은 우주를 담고도 모자라 더 채우고, 또 채워도 그 마음의 욕심을 채울 수가 없어서 갈급해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채워진 성도의 마음은 항상 만족하며,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라도 가득 채워진 충만함 가운데서 살아가게 됩니다. 결코 많이 가졌거나 적게 가진 것에 대한 차이가 없으며 주어진 상태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자신이 지금 처해 있는 상태가 너무나 비참하다고 할지라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비참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언제 어디서나 머리가 되고, 위에 있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또 하나님의 그 성품은 영원히 변치 않으시기 때문에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성도는 하나님께로 향한 사랑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될 어떠한 행위들 말고는 염려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의 관심도 그러한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복락들과 특권들을 인식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복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위해 다른 어떤 이름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으니(행4:12) 그리스도는 모든 복락의 유일무이한 중보자이며, 복락의 독점적인 통로가 되시니 다른 어떤 것으로도 이 복락을 받아 누릴 수가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곧 바로 나아가려고 하지만 그리스도로 인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다가갈 수조차 없고 기도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로서 이제 그리스도와 신비적으로 연합하여 몸의 각 지체로 존재하며, 그리스도께 대하여도 신비로운 관계를 누리게 되었으며, 그 생명은 머리되시는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이제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에 동참한 사람들이니 성도들이 누리는 모든 복락과 성취하고 체험하는 모든 좋은 것들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락이 오는 것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러니 그 복락들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습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적용시키는 특별한 일도 성령에 의하여 이루어집니다. 성령의 의도와 역할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그는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것,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은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하여 받을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아도 되는 분이었지만, 살아계실 동안 우리의 본이 되어 성령을 받아서 사역을 감당 했던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삶을 충만케 하셔서 복음서들에 묘사된 대로의 삶을 살아가도록 가능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를 닮은 삶을 살아 갈수가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셨던 것처럼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인도하여 그 생명으로 충만케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누리는 모든 복락들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복락들은 우리가 중생할 때에 주어지는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만을 받을 수 있도록 성령을 통하여 준비시켜서 우리가 받게 될 일차적인 축복들로 주어지는 것이 본문에서 말하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을 여행을 하고 있는 “나그네요, 행인”으로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 세상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솜씨의 표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즐기고, 그 모든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아야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하나님의 것임에 틀림없는 사실일 지라도 타락된 세상이라서 우리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세상의 사고방식과 이세상의 정신과 이 세상의 정신구조를 좇아서는 결코 안 됩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공중 권세를 잡은 자”에 의해 조종되고 있으니, 그들의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제 성도는 이 세상을 아버지의 세상, 영광과 놀라움에 가득한 하나님의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타락한 이 세상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많은 복락들을 누리며 살지만, 그것은 잠시 일 뿐 참된 복락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늘에 속한 것들이라는 것을 압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복들 보다 더 큰 것은 하늘에 있는 신령한 복입니다. 이 복은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으로 주어지며, 하늘에 간직되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벧전1:4~6)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니 이러한 것들을 누리고 처음 열매에 속한 것을 맛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누리고 있다면, 점점 더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에 영광의 존전에 들어가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면전에 서서 그를 영원히 보는 영광스러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는 죄도 없고 부족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영원토록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