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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 4 (엡1:3절 -1) / 로이드존스

새벽지기1 2016. 4. 9. 07:39


1장 3절 (1) :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여기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며, 신실한 자들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은혜와 평강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은혜로 제공된 이 복락들이 무엇인가를 인식하며 깨달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유업에 들어감으로 인하여 마땅한 대로 그의 삶을 누리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인데, 물론 이것은 우리에게도 해당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당하는 고통거리는 이것을 이해하는 지식의 부족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것은 성경을 아는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교리들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삶에 있어서 많은 실패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식이 부족한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는 주요한 고통거리입니다.

호세아(4:6)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어째서 자신들이 그러한 사람들인가 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이런 일들을 알기만 하였더라면 다른 나라같이 되기를 추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구속 받은 것에 관한 진리를 깨닫게 되면 언제나 찬송하게끔 됩니다.

진리를 깨달은 자들이 하는 첫 번째 일은 언제나 찬양과 감사였는데, 그것은 그들이 전에는 전혀 알지 못하였던 행복함과 기쁨과 화평을 느끼는 감격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은혜와 평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진실로 인식한다면, 우리는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삶에서 감사하고 찬양하는 일처럼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신약성경을 읽어가다 보면 진정한 기쁨과 찬양, 그리고 감사가 성도의 삶에서 가장 귀한 일이라는 것을 누구나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고 참 기쁨과 평강을 주신 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다른 불신자들과는 전적으로 달라야 합니다.

성도들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관계 안에서 사는 삶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며, 그러한 관계는 다른 어떠한 것보다도 이러한 기쁨을 얻게 할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의 특징은 “찬양”이어야 하며, “감사”하는 삶입니다.

찬양과 감사와 만족하는 마음은 그리스도인을 돋보이게 하고 그가 더 이상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배와 기도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경배하고 찬양하며 감사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점에 대하여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기도할 때에 찬미하는 것이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전에서만 “예배와 찬미”로 나갈 것이 아니라, 언제나 어디에서나 늘 찬송하리로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며 모든 찬미와 복락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은혜 안에서 자라나는 최고의 정점인 장성한 분량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바른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바, 진실로 그 뜻에 합당하게 사는 길은 “감격적으로 사랑과 찬양에 빠져 들어갈 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배의 일차적인 목적이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축복을 받기 위한다든지 여러 가지 것들을 구하기 위하여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찬미해 드리기 위하여 예배당에 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궁핍함과 어려운 문제의 것들을 하나님께 구해야 하지만, 그것은 예배 이외의 시간에 해야 할 일들입니다.(예: 9시 기도회)

우리는 언제나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예배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첫 번째 원리로서 구원의 본질을 참으로 인식하게 된 성도는 찬양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두 번째 원리로 나가게 되면,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한 가지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복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복되심을 인하여 찬양을 받으셔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러한 분이시며, 하나님께서 하신 일 때문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셨으니 하나님 역시 찬양을 받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신 방식 때문에 찬양을 받으시고, 그의 위대한 구원에 대한 계획과 그 이루신 방식에 대해서 우리가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가 말하고 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사도는 두려우신 하나님으로 인식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인자하심과 같은 성품의 인자하신 하나님으로 묘사하고자 의도적으로 이런 문구를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찬성을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묘사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기를 즐거워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는 말을 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온 모든 복락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온 것임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과 창세전에 복되신 삼위 간에 이루어진 모종의 언약의 일부로서 우리에게 왔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표현 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창세전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타락과 인간의 죄악을 미리 아시고 그것에 대하여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아들에게 주시고, 그 아들은 자발적으로 그들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하나님께 청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시고, 그들과 화해하고 회복하여 새 생명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세상이 있기 전에 우리가 처할 위치에 대해 아시고 그 자신의 아들과 언약을 맺어 이 합의를 맺으셔서 하나의 서약을 하신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어, 그는 우리의 대표자요, 중보자요 보증 자가 되신 것입니다.


모든 복락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을 때,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복 되신 삼위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각하시고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생각하셔서 그 결과로 용서와 구속함을 받을 길을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와 같은 일을 인식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예배하는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언약에 들어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찬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