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프란시스 쉐퍼

쉐퍼의 교육 이야기

새벽지기1 2016. 3. 28. 06:35

프란시스 쉐이퍼(Francis A Schaeffer)

"1982년의 우선순위(Priorities 1982)"
라브리 1982년 미니 세미나에서 한 연설문중에서

이제 공립학교에 대한 이야기에서 사립학교 교육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봅시다. 무엇이 우선 순위에 있는가요? 제가 여기서, 단지 기독교 사립학교라 하지 않고 기독교 사립학교를 물론 포함하는 그냥 사립학교라고만 말한 점에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우리가 진정 무언가 하려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보통 가지고 있는 관심사 이상의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공립학교의 교과과정을 통제하여 우리의 공교육을 망쳐놓은 자들이 이제 사립학교의 교육마저 좌지우지하려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공립학교를 망쳐놓은 세계관을 가진 자들이 기독교 사립학교의 교과과정을 통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가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방화 시설의 기준을 정하는 등의 일에까지 아무런 관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극단적인 기독교 사립학교들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국가는 오늘 제가 연설하고 있는 이곳에 불이 나는 경우 여기 계신 참석자들의 안전을 위해 어떤 방화 안전 대책을 갖추어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을 정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개입할 권한이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방화 시설의 기준 따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국가)이 공립학교의 교과과정에 개입할 때 가지고 들어 왔던 것과 같은 파괴적인 가르침을 우리의 교과과정에 슬그머니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성서의 가르침을 부정하거나 오염시키는 지경으로까지 교과과정을 슬그머니 통제하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 사립학교의 교과과정을 보존하기 위해 기독인들이 의식적이고 지성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이 시급한 우선순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독교 학교의 보존에 관해 한가지 다른 측면을 더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교과과정이 망쳐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사립학교, 특히 기독교 학교가 좋은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교과과정을 우리가 통제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또한 국가가 물질적인 세계관이 유일한 궁극적인 진리인 양 슬그머니 가르치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기독교 학교는 진정 좋은 교육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창조주를 배척하는 비틀어진 교육을 하지 말아야 겠다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기독교적 교육은 거부하는 것에 머물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보다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기독교적 교육은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적 교육을 진정 보존하려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탁월한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읽고 쓰는 것, 계산하는 것 등을 우리는 일반 공립학교에 하는 것보다 더 잘 할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야 하며 또한 인간의 배움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음미와 이해를 갖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적 교육은 성서를 아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또한 인간의 지식 전체를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늘 인류 문화에 대해 말하던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기독교적 교육은 모든 인간의 지식을 다루어야 합니다. 즉, 창조주의 존재와 그의 피조물에 근거한 진실의 틀 안에서 인류의 지식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적 교육을 보존하려 한다면, 진정한 기독교적 교육은 단순한 거부의 측면 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긍정적인 것입니다, 모든 인류의 지식을 다루고, 모든 경우에서, 각 학생들의 수준에 맞추어, 개개 지식이 온전한 진리의 틀 안에 어떻게 맞아 들어 가는지를 보이고, 그 진리가 창조주와 그의 피조물 안에 있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만일, 유대-기독교적인 입장이 모든 현실에 적용되는 진리라면, 사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인류 문화의 모든 학문 분야, 개개의 지식과 그것에 대한 음미는 모두 기독교적 교육의 일부분이어야 합니다. 일부 기독인들은 이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일 기독교가 단지 많은 종교 중에 하나가 아니라면, (제가 "이성으로부터의 도피"에서 말했던 것처럼) 단지 현실을 떠나 공중에 떠도는 것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모든 학문 분야에 대해, 또한 인류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음미에 대해 무언가 말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당신의 기독교 학교가 이것을 하고 있지 않다면 저는 좋은 교육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단호히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것은 조각난 불완전한 교육이며, 그런 교육은 결코 우리 주님을 높이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만일 진리가 하나라면, 다시 말해서 진리가 통일성을 갖는 것이라면, 기독교적 교육은 각 학문 분야가 어떻게 엮어져 있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그것에 흥분되며, 이러한 엮어짐이 어떻게 창조주의 존재와 연관이 있는가를 보이는 것이어야 합니다. 제가 하는 말을 이해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타오르는 불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것과 하나님의 계시를 함께 이해 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당신이 진정한 기독교적 교육을 하게 된다면, 진리가 단지 단절된 여러 주제들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서로 유기적으로 엮어져 있으며 그 엮어짐은 창조주 자신의 존재에 그 근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기독교적 교육은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지식의 전반적인 범주로부터 학생들을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류 지식의 커다란 부분으로부터 학생들을 격리 시키는 것이 기독교적 교육이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들에게 창조주의 존재와 성서의 가르침에 근거한 온전한 진리의 틀을 형성해 주어 모든 교육과정에서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이며 왜 그러한가를 이해하게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독교적 교육은 인간의 지식으로부터 학생들을 격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셨다는 엄청난 사실에서 시작되는 온전한 성서적인 가르침의 틀 안에서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틀 안에서 교육함으로 인해 기독교적인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공허함 가운데 인간의 지식을 제시 받는 것이 아니라, 개개 지식을 제시 받을 때, 왜 그듣는 지식이 진리인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교육입니다. 그런 교육을 받을 때, 학생들은 진실로 "배운 사람"이되는 것입니다.


존 하버드가 하버드 대학을 세웠을 때도, 그는 기독교적인 교육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그 대학은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세워졌던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교육 받은 사람이야 말로 그의 삶 전체를 통해 계속적으로 배우며 그 배우는 것을 즐기는 도구를 가진, 진정한 "배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삶이 무료하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진정한 교육, 기독교적 교육을 할 때, 종종 거부해야 할 것들이 있기는하지만, 결코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적 교육은 모든인간의 지식에 이르는 통로를 기독교적인 틀 안에서 열어 나가는도구를 주는 것이며, 그렇게 하여 무엇이 진리이며 무엇이 아닌지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한계속적으로 배우며 그것을 즐기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독교적 교육을 받은 사람은 지식의 분야를 배워 나가는 노력 속에 진정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진정으로 "배운 사람"인 것입니다.

요약하면, 기독교적인 교육은 진리에 대한 잘못된 시각에 근거한 교육이 만들어 내는 사람보다, 지식, 문화 그리고 삶의 전체성(Totality) 안에서 보다 잘 교육된 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독교적인 교육은 거짓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어떤 것 보다 더 탁월한, 교육을 받은 소년, 소녀, 남자, 여자들을 만들어 내는 결과를 가져와야 합니다. 기독교적 교육을 지키는 일은 단순한 부정적인 거부 이상을 필요로 합니다. 기독교적인 교육은 모든 지식의 영역에서 탁월한 교육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모든 지식"이라고 말한 것에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