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절은 복음의 성격에 대해서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이라는 점
둘째, 복음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는 점
세째, 복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선포하신 것이라는 점 입니다.
오늘은 둘째 내용에 대해 묵상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서 흘러나온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복음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성경은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이전의 구약성경을 의미하지요.
그러므로 구약을 우리가 읽을 때 우리는 복음적으로 구약을 읽어야 합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구약은 율법, 신약은 복음이라는 단순화된 등식에 매여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발상은 좀 유치한 발상입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구약성경도 복음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고후 3:14-16)
그런데 구약에 충만해 있는 복음은 성취의 형태가 아니라 약속의 형태로 주어져 있습니다. 약속에는 약속하는 자의 인격이 담겨 있습니다. 약속한 자가 그 약속을 지킬 때에 그 사람의 인격이 신실하고 신뢰할 만하다는 것이 증명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에 복음을 약속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에 당신의 인격을 담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시거나,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약속을 성취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지키지 않은 약속이 헛소리에 불과한 것처럼, 만일 하나님께서 복음에 관하여 약속하신 것을 지키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의 약속 역시 헛소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당신의 말씀을 지켜주심으로 당신의 신실하심을 만천하에 증거하셨습니다.
구약에 충만해 있는 복음에 대한 약속은 결국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구체적인 언명으로 주어지기도 하고, 모형적으로 주어지기도 하고, 암시적으로 상징적으로 주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창 3:15절의 원복음은 명시적으로 주어진 약속인 반면, 민수기에 등장하는 장대에 달린 놋뱀 사건은 예표적으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는 사건입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를 한 눈에 조감하는 시각으로 보면, 창세기 1장 26-28에서 사람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복주시는 사건은 장차 참 하나님의 형상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오실 사건을 예표하는 사건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담이 오실 자,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 이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롬 5:14). 요즘 신약학의 대가로 여겨지는 N. T. Wright는 Adam-Christology라는 이름으로 아담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사실을 신학적으로 잘 정리해 준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창세기 초두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에 관한 복음을 약속해 주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신구약성경 전체를 복음의 시각으로 읽음으로써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며 동시에 하나님을 본받아 약속을 지키는 신실한 자로 변화되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1. 오늘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찬양하며, 감사하며 사셨습니까?
2. 오늘도 하나님을 본받아 우리의 약속을 지키는 인격자의 삶을 사셨습니까?
3. 오늘 우리가 하나님과 가족들과 이웃을 향하여 지켜야할 약속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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