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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수 믿은 후에 짓는 죄와 구원의 관계

새벽지기1 2015. 12. 22. 08:14

예수 믿은 후에 짓는 죄와 구원의 관계 

   박신목사

죄의 본질과 구원

구원은 하나님이 죄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죄가 무엇인지부터 먼저 규명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를 행동으로 범하는 잘못에다 말로 남에게 상처 주는 죄(마5:22)와 마음으로 짓는 죄(마5:28)까지 죄의 범주에 포함시켰습니다. 말로 범한 잘못은 당연히 그러하지만 생각 또한 사고 활동이기에 인간이 작심하고 지은 행동의 죄로 봐야합니다. 주님의 뜻은 다른 이에게 직접적 피해를 주는 행동만이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이는 자기를 몰라도 자기는 알기에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의롭게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또 그 모든 죄들이 외부 여건의 영향을 받아서가 아니라 인간의 속에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마15:17-19) 행동과 말과 생각을 조종하는 인간의 마음이 따로 있는데 그 자체가 이미 타락 오염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인간의 마음이 타락된 것은 아담의 원죄 하에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타락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하나님께  불순종한 행위를 하기 이전에 하나님을 자기 마음에서 배제한 데서 기인합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높이 세우고 마음의 중심에 두었기에 그분을 망각하게 되었고 그 결과 선악과를 따먹는 범법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따라서 죄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분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제한 채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 되고, 특별히 자기를 최고로 높이려 드니까 인간 사회에서의 경쟁 분쟁 원수가 되는 온갖 윤리적 죄가 발생합니다. 모든 인간이 원죄 하에 태어난다는 근본 의미도 하나님을 스스로 절대 찾지 않으며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에서 인간 특별히 자기만 높이는 마음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마음에서부터 죄(생각, 말, 행동)가 나온다면 결국 인간 존재 전체가 죄로 찌든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그 존재 전체가 구원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천국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요3:5) 존재 전체가 타락되어 있기에 스스로 그 타락된 마음에서 돌이킬 수 없습니다.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그 심령 안에서 역사해야만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죽을 수밖에 없는 철저한 죄인임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죄를 생각, 말, 행동 즉 자신의 의지적 행위로 인한 잘못으로만 정의한다면 논리적으로 의지를 동원해 스스로 깨끗케 되려는 선행 구원이 타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 전체(한 인격체)가 타락되었다면 그 사람을 깨끗케 해야만 구원이 가능해집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바꾸는 하나님의 역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예수 십자가 구원의 진정한 의미

원죄 하의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기에 그분의 진노 아래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 자연인이 태어난 이후에 하나님께 범과한 그 모든 결과를 보면 죄의 삯인 사망의 형벌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의 법정에선 모든 세대, 모든 인간은 사형에 처해져야 마땅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충족시킬 자 단 한 명도 없기에 그분의 공의대로 하자면 단 한 명도 구원을 입을만한 조건, 자격, 공로,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자하심이 너무 크신 그분은 우리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않으며 우리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동과 서는 먼 정도가 아니라 영원히 만나지 못함)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습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당신을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겨주십니다.(시103:8-12) 구약 시대 다윗의 고백이지만 바로 십자가 복음을 예표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선  타락한 아담이나 그 이후의 인간들이 당신에게와 같은 인간에게 지은 죄과로 치면 사형에 처해 마땅하나, 그러면 단 한 명도 살아날 자가 없기에 그 죄는 철저하게 응징하되(공의) 그 죄인은 살려주는(사랑) 구원의 길을 태초 전부터 정했습니다.(창3:15, 요1:1, 엡1:3-14)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간이 마땅히 받아야 할 죽음의 형벌을 대신 당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담이 허물어졌습니다.  죄인과 하나님과 화해하는 길을 활짝 여셨습니다.(엡2:11-18, 히10:10-20)

따라서 예수 믿어 구원 얻었다는 정확한 뜻은 우리의 죄과는 주님이 다 짊어지셨기에 한 죄인의 인격체 전부가 하나님에게 용서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어떤 죄를 지었어도(사실상 모든 인간이 죽어 마땅한 죄를 범했어도) 그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이 용납해주시고 당신의 자녀로 삼아준 것입니다. 집 나간 둘째 아들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다시 돌아온 것(눅15:11-32)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고(갈4:6), 그분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벧전2:9,10).

이런 예수 십자가의 구원은 다윗 시편의 고백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만 베풀어집니다. 그 경외는 단순한 행동으로 지은 죄를 반성하고 고치는 도덕적 종교적 회개(悔改)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정은 하나님의 영만이 아시기에(고전2:6-16)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가르친 대로 성령의 간섭과 역사가 전제 되어서 한 존재 전체가 거듭나는 영적인 회개를 수반합니다. 타락한 마음 전체를 완전히 새롭게 하는 것으로 회심(回心)이 더 적합한 표현입니다.

지난날에 지은 죄 된 행동들만 반성해서 고친다면 여전히 선행구원에 머무릅니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자신을 중심에 둔 자기 존재 전체가 너무나 추하고 더러워서 썩어 없어졌어야만 했다는 철저한 자각입니다. 자기만 높이려고 살았던 지난 모든 삶이 최악의 실패와 절망뿐이었음을 너무나 깊이 깨달았기에 다시는 그런 상태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인생의 완전한 유턴입니다. 앞으로는 주님만 중심에 모시고 그분 뜻대로 살아가겠다는 결단과 헌신이 따르는 것입니다. 성령이 간섭하여 거듭나는 순간 이런 회심이 일어나며,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만은 그 죄인의 회심한 중심을 아시며 본인도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구원과 미래의 죄

예수님이 죄인의 죄 값을 다 지불하신 대신에 그 죄인은 하나님께 완전히 용납 받고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의 보혈로 맺어진 혈연관계가 된 것입니다. 그 관계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끊기는커녕 훼방도 하지 못합니다.(롬8:31-39) 인간의 부모 자식 관계도 절대 끊어지지 않는데,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된 신자에게서 그분의 사랑을 빼앗아 갈 수 있는 존재나 사건은 우주에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거듭나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의 권능과 은혜 안에 들어온 자에게는 절대로 구원의 취소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은 죄인을 용납하고 자기 자녀로 삼아주었기에 구원이 취소된다는 생각은 하나님 그분을 왜곡 부인하는 짓입니다. 인간 부모도  그것도 자기 몸에서 난 자식이 아니라 입양한 자녀가 잘못했어도 내치는 법은 없습니다. 평생을 두고 자기 자식처럼 키울 확고한 결단과 헌신이 따르지 않으면 아예 입양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롬8:1) 자녀로 받아들인 그 관계를 취소하고 다시 쫓아내지는 않습니다. 탕자였던 둘째 아들이 그렇게 잘못을 했어도 아버지가 다시 아들로 받아들여주고 다시 쫓아내는 법은 없듯이 말입니다. 이를 죄와 연관해서 말하면 죄로 인해 받을 지옥형벌이 완전히 면제(free from the penalty of sin)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 가는 입장권을 준 것이며 그 준 것을 다시 회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영광스런 완성은 이미 보장된 것입니다.  

이를 두고 신학적 용어로 칭의(稱義-Justification)라고 합니다. 전혀 의롭지 않은 자를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었기에 하나님이 그 주님의 의를 덧입혀서 의롭다고 칭해준, 자녀로 삼아준 것입니다. 이는 단회적으로 과거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을 자기 전부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을 처음 믿은 때입니다. 죄인 그 상태로 그 신분과 소속과 위치만 흑암 사망 사탄의 미혹 아래에서 빛 생명 하나님의 품 안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성령의 간섭으로 일어난 일로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요 선물입니다.  

한 죄인 전체가 이미 용납되었기에 그 후로 죄(생각, 말, 행동의)를 지어도 절대 다시는 지옥으로 보내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뜻에서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의 죄까지 모두 용서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은 후에 죄 지었다고 다시 심판하지 않으니까 미래의 죄도 당연히 용서 받은 것입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십자가 구원은 하나님이 한 죄인(여전히 죄에 찌들어 있는)을 있는 그대로 당신 자녀로 품어주시고 완전히 용서해준 것입니다. 이런 확고한 이해가 없으면 자꾸 구체적 사소한 죄들과 연결해서 구원을 의심하거나 혼란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성화와 징계

문제는 구원이 한 죄인 전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 것이기에 그 내면에 있는 죄로 찌든 본성은 그대로 생생히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치사하고 추하거나 흉악한 행동을 짓고 싶은  생각이나 습관을 죄의 본성이라고 곡해 하면 안 됩니다. 서두에서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배제하고 자기만 높이려는 고집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를 믿어 회심할 때에 하나님을 멀리했던 지난 삶을 철저한 실패로 인식하고 마음의 전체 방향은 분명히 하나님 쪽으로 돌렸지만 자기를 높이려는 옛 자아의 흔적이 너무나 강하게 남아 있어서 수시로 하나님을 망각 외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짓는 구체적인 죄도 결국 자기중심성에서 발현된 것이므로 죄와 싸워 이기려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주님의 십자가 은혜만 붙들어야만 가능합니다.(눅9:23, 롬7:17-25) 이는 바로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과정입니다. 죄의 본성과 그 힘에서 자유로워지려는 씨름으로 믿은 후 일생 동안 신자가 성령의 인도를 받되 자신이 책임지고 계속적으로 행해야 할 일입니다.(free from the power of sin)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고 말한 까닭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로 믿거나 선행을 쌓아서 천국 가는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구원 얻은 신자가 성화를 충실히 이루라는 것입니다.  

주의할 것은 성화와 칭의가 시간적 혹은 수준적으로 구분되는 두 단계가 아닙니다. 칭의가 되는 순간 성화도 자연스레 필연적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죄의 행동을 다 없애고 뜯어 고친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을 부인했던 타락한 마음은 확실하고도 완전하게 버렸습니다. 죄의 본질은 씻어졌고 하나님과 화해되었으며 앞으로는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면서 지난 인생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완전한 방향전환을 했습니다. 그럼 그분과 동행하는 삶, 성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단지 자기를 높이려는 타성은 아직 강하게 남아 있어서 신자가 그 타성을 얼마나 죽이느냐에 따라서 성화의 정도와 수준만 달라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래에 지은 죄까지 다 용서 받았다고(심판이 면제되었다고) 해서 계속 죄에 더 거할 수는 없습니다. 꾸준히 피 흘리기까지 죄와 맞서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신자가 습관적, 의도적, 죄를 짓고도 회개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심판이 아니라 징계는 합니다. 자식이 죄를 지으면 부자관계는 결코 끊지(심판) 않지만, 자녀를 바르게 키우려고 매는 드는 것(징계)과 같습니다.(히12:4-13)

그런데 징계는, 하나님만의 특별한 계획이 있는 아주 비상한 경우를 빼고는, 죄를 지을 때마다 혹은 회개치 않는 죄마다 일대일 대칭으로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무서운 독선적 하나님이 되어서 신자는 물론 불신자들도 공포심으로 믿는 척만 할 수 있습니다. 부모도 자식이 계속 돌이키지 않고 잘못을 범해 도저히 그대로 두어선 안 되겠다 싶을 때에 매를 드는 것과 같습니다.

징계의 시기와 방식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신자가 미래의 죄까지 용서 받았다고(단지 심판의 면제이지 징계는 하신다는 사실도 모른 채) 죄를 짓고도 무심해선 안 됩니다. 혹시 회개를 못하고 지나친 죄에 대해선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부모도 자식의 사소한 잘못은 눈 감아 주시지 않습니까? 진정으로 거듭나서 성령이 그 영혼에 내주하는 신자라면 죄에 대해 아주 민감해집니다. 제대로 회개하지 않은 경우라면 정말 죄로 인식하지 못한 아주 사소한 죄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런 것까지 징계는 않습니다.

대신에 신자가 죄에 대해 이전보다 아주 민감해졌고 때로는 성령마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대신 간구하시기에 습관적 고의적으로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는 사실상 없습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회개를 하게 되거나 최소한 본인의 죄의식이나 내면의 영적 눌림은 있는 법입니다. 그런 경우는 반드시 회개해야 하며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결론적으로,

다시 요약하면, 죄의 본질은 하나님과 분리 되어 자기를 대신 높이는 것입니다. 구체적 행동(생각, 말, 행동)으로 범하는 잘못은 그 결과입니다. 처음 예수 믿어 얻는 구원도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에 힘입어 한 죄인이 하나님과 화목 된 것입니다. 그 사람 자체가 용납되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서 자신의 이미 바뀐 신분, 위치, 소속, 특권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성화의 과정에서 아무 두려움과 주저함 없이 죄와 당당하게 싸워 이길 수 있으며 최소한 그렇게 되도록 노력은 합니다.  

죄인 한 사람이 하나님께 용납되었기에 구원 후 짓는 죄도 다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이며 구원이 취소되는 법도 결코 없습니다. 나아가 천국에서 예수님처럼 영광스런 존재로 바뀌는 영화(榮化- Glorification)도 이미 확보된 것입니다. 그 영화를 죄와 연관시키면 더 이상 죄의 형벌과 능력은 물론이며 죄 자체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죄가 더 이상 실존하지 않는 곳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free from the presence of sin)

그 때까지는 이 땅에서 죄의 세력과 맞서 싸우며 날마다 조금씩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이 싸움을 잘하고 못하고에 따라 천국에서의 상급만 달라지지 구원 자체가 변경 취소되지는 않습니다. 회심으로서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 받았지만, 그 형벌(심판)에서 면제된 것이지 구체적 죄를 계속 지으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때와 방식으로 징계는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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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개혁주의 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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