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영봉목사

“천국의 나그네(베드로전서 2:11-12)

새벽지기1 2015. 12. 16. 15:13

 


 

1.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바른 믿음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서는 토대를 닦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이 얼마 전에 새로운 교회에 파송을 받아 부임했습니다. 가서 보니, 예배당과 교육관은 널찍하게 지어졌는데 기초 공사를 부실하게 하여 지하실에 물이 새고 곰팡이가 핍니다.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검사를 했더니, 기초 공사를 부실하게 했다고 합니다. 대책이 뭐냐고 물었더니, 뾰족한 수가 없다고 하더랍니다.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지을 수도 없고, 기초 공사만 다시 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비용이 들고, 그렇다고 임시방편으로 유지하기에는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건물에 문제가 있다면 쉽게 해결할 있겠는데, 기초에 문제가 생기니 이렇게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초 공사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든든한 집으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기초 공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바른 이해를 가지는 것은 마치 든든한 기초 공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기초 위에 믿음의 집을 세워야 합니다. 동안 제가 없는 나라에 대해 수많은, 없는 말을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초 공사는 원래 고되고 지루하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비용도 수월찮게 들어갑니다. 하지만 반드시 든든한 기초를 만들어야만 위에 세워진 집이 역할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에 그랬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옛날 다윗이 다스리던 왕국이 땅에 임했던 하나님 나라라고 믿었기에, 로마의 압제를 깨뜨리고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라는 제자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한번은 예수께 와서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나의 아들을 선생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 ( 20:21)


어머니가 생각한선생님의 나라 로마 제국을 몰아내고 땅에 세워질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옛날 다윗처럼 예수께서 영광스러운 이스라엘을 재건하실 것이라고 믿고 아들들을 위해 치맛바람을 날리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이기는 어머니가 하는 일을 그대로 두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 나라를 그런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와 아들을 딱하게 쳐다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22)


어머니는 장차 이스라엘이 재건될 , 자기의 아들이 가장 높은 직위에 임명되기를 기대했던 것인데, 예수님이 세울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랬기에 어머니는 예수님께 엉뚱한 것을 구하게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를 보시고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있겠느냐?”(22)


말씀을 들을 , 어머니와 아들은 승리의 축배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본문에 그들이 대답했다는 보도는 없지만, 아마 속으로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희가 주님이 마시는 잔을 들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고난의 독배를 생각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다가 예수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이렇게 말씀을 이으십니다. “정말로 너희는 나의 잔을 마실 것이다.”(23)


이것이 야고보와 요한에 대한 예언의 말씀인 줄을 그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축배를 마실 것을 기대했지만, 결국 그들은 고난의 독배를 마셨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제자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 당했습니다. 동생 요한은 제자들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지만,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알지도 못하고 구한 것이 형제에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자신이 구하는 것이 이런 것이었다면, 어머니는 그런 요청을 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영어 속담에Be careful what you pray for. You might get it!”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바꾸면 이렇게 됩니다. “기도할 아무 거나 구하지 마십시오. 나는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좋은 예입니다. 어머니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아들들을 위해 구했습니다. 기도가 결국 이루어져 어머니가 상상하던 축배가 아니라 독배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하나님 나라를 바로 알았더라면, 축배가 아니라 독배를 마시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2. 


이렇듯, 하나님 나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면 믿으려는 모든 노력은 허사가 있습니다. 아니, 그보다 심각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며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예수님을 제대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오히려 예수님을 욕되게 수도 있고 그분의 일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무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땅에 세우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유색인종과 타종교인들을 몰아내어 기독교인들만의 천국으로 만들려는 뜻을 가지고 뭉쳐서 성전(holy war) 준비하는 근본주의자들도 있습니다. 2011 7 22일에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안더스 베링 브레이빅(Anders Behring Breivik) 같은 사람이 예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무력으로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설교를 제자들처럼 오해할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사람들은 제자들과는 다른 오해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죽어서 가는 내세의 천국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 중에 “You will get pie in the sky when you die”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사가 의미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죽어서 가는 낙원으로만 오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낙원을 포함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만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읽으면 막히는 곳이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우리 시대 사람들이 범하는 다른 잘못은망각혹은무시입니다. 아예 천국의 존재와 의미를 망각하거나 무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설교의 중심 주제가 하나님 나라였다는 사실을 무시하거나 망각함으로써 철저히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음으로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면의 평안을 위해, 어떤 사람은 질병의 치유를 위해, 어떤 사람은 물질적인 축복을 위해, 어떤 사람은 번영과 성공을 위해 예수님을 찾습니다. 바울 사도는여러분은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십시오.”( 3:2)라고 권고하고 있는데,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땅에 있는 것들만을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것을번영의 복음’(prosperity gospel)이라고도 부르고, ‘기복신앙’(faith for blessings)이라고도 부릅니다


사실,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죽어서 천당 가는 것만을 목적으로 두고 믿는 사람이거나, 천국의 존재를 망각하거나 무시하고 철저히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목적을 위해서 믿는 사람이거나, 하나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합니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믿고 있는 사람이거나,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거나, 하나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 오해하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허울은 있지만, 실제로는 예수님과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고 예수님이 가시는 길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3.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태초부터 있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듯, 하나님 나라는 스스로 존재합니다. 예수님은 나라에 처음부터 있었으며, 나라로부터 오셨습니다. 요한복음의 서문이 우리에게 증언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태초에말씀 계셨다. 말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말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1:1-3)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14)


일찍이 하나님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외아들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려 주셨다. (18)


나사렛 출신의 예수는 처음부터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분은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분은 나라에 대해 환히 알고 계십니다. 나라에 대해 그분만큼 아는 사람이 그분 이전에도 없었고 그분 이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하늘나라에 대해 가르치시기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분은 천국, 지옥 세상에서 살면서 지옥까지도 천국으로 바꿀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을 때의 일입니다. 물에서 올라오실 , 그분에게하늘이 열렸다.”( 3:16) 되어 있으며,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분 위에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하늘로부터 음성도 들렸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17) 하늘이 열렸다는 말도 은유입니다. 우리말로는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나라가 활짝 열렸다는 뜻입니다.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살면서도 영이신 하나님과 막힘없이 소통할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뜻입니다


세례를 받은 , 예수께서는 광야로 나가서 40 동안 금식하면서 기도하십니다. 과정에서 그분은 사탄에게 유혹을 당하셨지만, 모든 유혹을 이겨내십니다. 그러자 그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상태를 마가복음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 (1:13)


성경을 어느 정도 읽은 사람이라면 구절을 읽고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를 생각하지 않을 없습니다. 또한 옛날 이사야가 하나님 나라를 흘끗 보고 부른 노래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먹으며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이로 삼을 것이다.

나의 거룩한 산에서는 서로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 ( 65:25)


광야에서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나눈 결과, 땅에서 육신을 입고 있던 예수님에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땅에서 하늘나라를 소망하고 나라로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 하나님의 나라도 있으니, 하나님과 깊은 사귐에 들어가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4.


모든 준비 과정을 마치고 갈릴리에서 활동을 시작하신 예수님은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 4:17)


지난 2 동안 가장 많은 오해를 받았던 말씀을 꼽으라면, 말씀도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곡해하여 이렇게 묻습니다. “2 전에 가까이 왔다던 하늘나라가 이제껏 오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뭔가 착각한 것이 아닙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공수표를 것입니까?” 


예수께서는, 당신에게 하늘이 열리고 하늘나라가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에게도 나라가 열렸다고 선언하십니다. “가까이 왔다라는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엥기켄’(engiken)인데, 이것은 현재 완료로 번역해야 옳다는 것이 대다수 학자들의 합의입니다. 그러니까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번역하기보다는하늘나라가 도착했다.”(The heavenly kingdom has arrived.)라고 번역해야 옳습니다.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되던 하나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까이 있는 것으로 경험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뭔가가 가로막고 있는 같았던 하나님 나라를 이제는 환히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후로 예수님은 하늘나라 혹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실 , 마치 그것이 어딘가에 닿을 있는 공간에 있는 것처럼 말씀하곤 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죽고 나서 가는 혹은 마지막 재림의 때에 보는 곳이기도 하지만, 나라는 또한 지금 여기서 있고 경험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여쭈었을 , 예수님이 하신 대답은 기억할 만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에 있다또는저기에 있다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17:20-21)


여기서너희 가운데에라고 번역한 구절은너희 안에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개의 번역 모두 의미가 통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마음으로 경험할 있는 것이기도 하며, 또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기도 합니다. 태초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나라, 죽고 나서 가게 되는 하늘나라, 마지막에 하늘과 땅을 이룰 천국을 지금 이곳에서 찾고 보고 믿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눈을 뜨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에 대해 마디로 정리해줍니다. “ 세상은 악마의 세력 아래 놓여 있습니다.” (요일 5:19)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은밀한 힘에 눌려 알지도 못한 죄악에 빠져 살다가 영원히 멸망될 존재들이었습니다. ‘ 천국, 지옥 떨어진 우리는 사탄의 속임수에 따라 지옥 지옥으로 만들어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탄의 통치권을 분쇄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사로잡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있는 곳에 사탄은 이상 힘을 없습니다



5.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독점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착각에서 깨어나라고 설교하셨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제외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소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주어지는 나라의 은혜를 받아들이라고 권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복음에 환호했습니다. 특별히, 경건한 사람들로부터 죄인 취급을 받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반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설교를 위험스럽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살았던 사두개파 제사장 귀족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오직 성전에 와야만 하나님을 만날 있고 나라와 접속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제사장을 통하지 않고는 그리고 제사를 드리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로부터 영원히 단절될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설교는 참을 없는 망언이었습니다. 성전 없이도, 제사장 없이도, 제사 없이도 하나님 나라를 있고 경험할 있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거룩성의 높은 경지에 이르러야만 하나님 나라에 받아들여질 있다고 믿었던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이 믿기에 하나님의 호의를 입을 있는 통로는 오직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뼈를 깎는 인내심을 발휘해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들에게는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하나님께 회개하면 나라에 받아들여진다는 예수님의 복음은 참을 없는 모독이었습니다. 개처럼 부정하게 사는 죄인들을 모아 놓고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예수님의 행동은 묵과할 없는 망동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으로 로마 군인들을 몰아내고 위대한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라고 믿었던 열심당원들에게도 역시 예수님이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제국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세우는 것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나라를 세우기 위해 어떤 폭력도 사용할 있다는 그들의 믿음에 예수님은 단호하게 반대하셨습니다. 그들의 눈에 예수님의 생각은 아무 실효성이 없는 무력한 공상가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예수님은공공의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지도자들은 결탁하여 예수님을 로마 정부에 고발했습니다. 카이저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를 설교했다고, 카이저만을 유일한 주님으로 고백하는 나라에서 스스로를 주님이라고 했다고 고발했습니다. 로마 총독이 보기에 예수님에게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진실을 따르기에는 너무도 지나치게 정치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을 덮어 오는 것을 보시고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열어 보이는 것으로 인해 죽음을 피할 없다면, 죽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고귀한 제물이 것이라고 믿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받아들인 죽음은 하나님에 의해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영원하고도 완전한 속죄 제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죄의 담이 그분의 십자가에서 허물어졌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그분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면 나라에 받아들여집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를 제거하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제거할 있다고 생각했는데, , 십자가 처형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걷잡을 없이 퍼져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시키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다시금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셨다 말은 우리가 닿을 없는 우주 구석으로 이동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도 역시 은유입니다. 하늘나라가 우리 안에 혹은 우리 가운데 있는 것처럼, 하늘나라에 계신 주님도 우리 안에 혹은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셨다는 말은 멀리 가셨다는 뜻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깊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마침내 모습을 환히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재림이라고 부릅니다. ‘재림이라는 말도 은유입니다. ‘다시 오신다 말인데, 가신 일이 있어야 다시 오실 것이 아닙니까? 부활의 주님은 우리 곁에서 떠나가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오실 일도 없습니다. 그러면 재림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 중에 드러나지 않게 함께 계시는 주님께서 환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손으로 만져보고, 코로 냄새 맡을 있을 것입니다



6.


누군가가 복음을예수 믿어 사함 받고 죽어서 천당 가는 이라고 요약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복음을 축소한 것이며, 뒤집은 것입니다. 복음은예수 믿어 사함 받고 천국의 삶을 사는 입니다. 땅에서 천국을 맛보고 천국의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죽고 나서 천국에 갈지, 저는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하물며, 하늘과 땅이 임할 ,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더욱 확신할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지금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고 나라에 들어가고 나라를 배우고 나라의 시민으로서 땅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참되게 경험하고 나라를 알게 되면, 크게 가지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가지 변화를 < 없는 나라> 속편에서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만, 우선 오늘은 간단하게 말씀 드립니다


첫째, 땅에서 자유해지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것이 무엇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땅에서 시시한 것에 붙들리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을 믿는다면, 목숨의 위협 앞에서 크게 흔들리지 않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유산을 믿는다면, 땅에서 물질에 노예가 되지 않을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땅에서 겪는 고난과 실패에 짓눌리지 않을 있고, 땅에서 경험하는 성공과 번영으로 인해 교만해지지 않을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을 가리켜보물을 담고 있는 질그릇이라고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보물은 그가 믿고 경험하고 약속받은 하나님 나라를 가리킵니다. 질그릇은 깨어지기 쉬운 자기 자신을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보물에게서 엄청난 능력이 솟구쳐 나오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고후 4:8-9)


둘째, 땅에서 이방인이 되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나라에 대해 배우고 또한 체험하는 만큼 우리는 나라의 정신과 가치와 질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것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자연히 세상의 정신과 가치와 행동 방식과 다르게 살아가게 됩니다. 땅에서천국의 나그네 되는 것입니다.


얼마 , 새로 집사, 권사, 장로로 천거된 분들에게 수락 의사를 묻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권사로 천거되신 분이 제게 다음과 같은 메일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권사 직분에 천거해 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수락할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신앙 신념에 따라 앞으로도 집사 이상의 직분을 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회답했습니다. “권사와 장로를 집사 이상의 직분으로 생각하지 말고, 집사 이하의 직분으로 생각하시면, 수락할 있지 않겠습니까?” 그랬더니 그분이 다시 회답을 했습니다. “모두 목사님처럼 생각한다면, 무슨 직분을 맡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목사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사실이 그렇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낮아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믿어볼까 하여 교회를 처음 찾은 사람입니다.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하고 나면 집사가 되어 섬기라고 청하는 것이고, 신앙이 깊어지면 권사로 낮아져서 섬기라고 청하는 것이며, 거기서 조금 나아가면 장로로 낮아져서 섬기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목사는 가장 많이 낮아져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 20:26-27)


이렇게 생각한다면, 직분을 받아도 감사하고 받아도 감사합니다. 직분을 계급으로 생각하고 승진하는 것으로 생각하다 보니, 직분 문제 때문에 시험에 들고 교회 분란의 원인이 되곤 합니다. 직분을 받든 받든,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스스로를 낮추고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경험한 사람이 사는 방법입니다. 직분을 받고 직분에 합당하게 자신을 낮추는 사람도 귀한 사람이고, 직분이 없어도 스스로를 낮추어 섬기는 사람도 귀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우리의 신앙은 교회 밖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은 고사하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천하는 일에도 부족한 형편입니다.



7.


이제 일곱 주간에 걸친 하늘나라 여행을 마치려 합니다. 그동안 여행에 동참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혹시, 여행이 흥미롭지 않았거나, 여행하는 동안 멀미를 분이 계시다면, 용서를 구합니다. 다만,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바른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자각하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집이 든든한 기초 위에 세워질 있기를 바랍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처럼 혹은 무지몽매했던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은 자신의 야망과 욕심과 꿈을 따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대로, 우리는 모두 땅에서 천국의 나그네입니다. 땅에서 천국 시민으로 살아가기에 천국의 나그네입니다. 땅에서의 삶을 마칠 , 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기에 우리는 천국의 나그네입니다. 또한, 마지막 , 예수께서 모습을 드러내실 , 하늘과 땅에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이기에 우리는 땅에서 천국의 나그네입니다. 같은 믿음이 있기에 육신이 전부가 아니고 세상이 다가 아니며 물질이 전부가 아님을 압니다. 그래서 자유하고, 그래서 다릅니다. 그것이 우리 천국의 나그네들이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적 정욕을 멀리하고(11) “이방 사람 가운데서 행실을 바르게 하라(12)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살아갈 , 우리로 인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조금씩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닮아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기를 권합니다. 나는 얼마나 자유 사람입니까? 나는 세상 사람들과 얼마나 다르게 삽니까? 물질과 육신과 세상이 전부라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를 , 나는 얼마나 다르게 보일까요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국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믿고 어떻게 알고 있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부디, 천국의 나그네로서 마음껏 자유 있기 바랍니다. 부디, 천국의 나그네다운 차별성이 저와 여러분의 생각과 말고 행실에서 더욱 분명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다고 말할 있다면, 그것은 오직 같은 변화가 일어날 때에만 그럴 있을 것입니다.  


천국의 나그네로 사셨던 주님,

저희에게도 삶을 주소서.

우리에게 주어진 보화를 보게 하시고

보화로 인해 자유하게 하소서.

우리에게 주어진 고귀한 신분을 알게 하시고

세상에서 구별되게 하소서.

천국의 나그네로서 

천국의 향기를 전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