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창우목사 106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22)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 / 그리스도인들이 정신적으로 고통당하는 3가지 경우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22)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인들이 정신적으로 고통당하는 3가지 경우 그리스도인은 언제 정신적 고통을 당하는가? 첫째, 죄가 있을 때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죄책으로 고통당한다. 둘째, 결백함으로 고통당할 수 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삶의 고난이 닥쳐올 때, 이렇게 고난당하는 자는 하나님께 잘못이 있다고 말한다. 셋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항상 죄책으로 고난을 당한다. 첫째, 그리스도인이 죄가 있을 때, 하나님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고통을 당한다. 이것이 주님과 나란히 십자가에 달린 강도의 상황이다. 그는 형벌을 당하고 있는 범죄자다. 물론 그 중에서 자신이 죄책으로 고단당하고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있는 강도는 회개하는 강도다. 불행..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21) 과업의 존재 “십자가 위 강도를 하나님이 버리셨다? 그가 하나님을 버린 것”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21) 과업의 존재 “십자가 위 강도를 하나님이 버리셨다? 그가 하나님을 버린 것” 십자가 위에서 강도가 설교한다.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마땅히 벌을 받는 것이지만, 이 분은 아무런 잘못을 행한 적이 없습니다(눅 23:41).” 복음에 의하면, 십자가 위에 세 명의 죄인이 있었다. 한 죄인은 죄 없이 고난당하고 있는 죄인을 보고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죄인이 이 죄인을 꾸짖으며 말한 것이 위의 설교다. 우리가 오늘 나누고자 하는 주제는 이것이다. 곧, 십자가 위에 매달린 저 죄인은 남은 과업이 있는가? 사형수가 사형장으로 끌려간다.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죽는 일밖에 없다. 그런 그에게 남은 과업은 ..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20) 언제 흔들릴지 모르지만 /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난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20) 언제 흔들릴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움을 증명하는 일보다 한없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랑인 것을 믿기보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것을 증명하기를 더욱 좋아한다. 언제 이런 증상이 생길까? 그를 괴롭히는 경쟁자나 그의 적이 나타났을 때, 혹은 실패했을 때나 인생의 고난 길을 걸을 때이다. 이럴 때, 그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고 싶다. 이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사랑인 것은 언제나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믿음은 언제 흔들릴지 모른다. 바울이 믿음의 파선으로 당하는 고난에 대..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19) 하나님은 사랑이다! / 고난당할 때 우리가 하는 의심… “정말 하나님이 계신건가요?”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19) 하나님은 사랑이다! 고난당할 때 우리가 하는 의심… “정말 하나님이 계신건가요?”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때가 있다. 말씀대로 살면서 고군분투하지만 언제나 패배의 쓴 맛을 볼 때, 여전히 믿음 안에서 행하지만 고통이 제거되지 않을 때, 믿음의 행군을 함에도 불구하고 방해하는 세력은 날로 증가될 때, 이유 없이 고통을 겪고 불의의 사고를 당할 때, 제일 의심스러운 것은 하나님이 계시냐는 것이다. 만일 계시다면, 하나님이 사랑인 것이 맞느냐는 것이다. 이때 큰 범주에서 문제를 찾자면 둘로 요약될 것이다. 문제가 나에게 있든가, 하나님께 있든가. 문제가 나에게 있다면, 나는 결백한 자가 아니다. 나에게 언제나 문제가 있고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그러나..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18) 죄책과 결백 /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고통을 겪게 하나요?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18) 죄책과 결백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고통을 겪게 하나요? 일반적으로 죄책감은 정신적 질병이다. 대표적인 예로 마조히즘이 있다. 이것은 타인으로부터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학대를 받고 고통을 받음으로써 심리적 만족을 느끼는 병적 심리상태를 말한다. 이런 감정은 어렸을 때, 부모에게 구타를 당하며 학대를 받으면서도 부모가 애착의 대상일 때,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그래 나는 맞을 짓을 했지. 그러니 맞아야지.” 이런 일이 반복되면, 부모가 때리는 일을 멈출 경우 스스로 때린다. 바로 이것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죄책감이다. 결국 마조히즘은 맞으면서, 고통당하면서 기뻐하는 것이다. 니체는 죄와 관련된 기쁨을 ‘의지의 광기’, ‘자기 학대의 기쁨’이라..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제자도 (17) 고난의 기쁨 / 우리 삶 속 ‘고난의 학교’, ‘졸업’은 언제쯤 가능할까?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제자도 (17) 고난의 기쁨 우리 삶 속 ‘고난의 학교’, ‘졸업’은 언제쯤 가능할까? 우리는 지금까지 ‘고난을 통해 배우는 순종’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순종을 배우기 위해서는 결국 고난의 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완전하신 주님도 고난당하심으로 순종함을 배웠을 때, 완전하게 되셨다(히 5:8). 고난 없는 순종은 없다. 오늘은 고난을 통해 배우는 순종, 마지막 시간으로 ‘기쁨’에 대해 말한다. 도대체 이 고난의 학교에 입학이 무엇이 기쁜가? 고난만 가득할 때, 기뻐할 수 있는가? 키에르케고어의 은 총 7개의 강화가 있는데, 모든 강화는 결론으로 기쁨을 다루고 있다. 고난의 학교에서 순종을 배움으로 누리는 기쁨은 이렇다. 먼저, 고난의 학교에서의 교육 기간을 생각해 보자. 고난의 ..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제자도 (16) 지혜의 완성 / 지혜 가르친다면서… 오히려 고난 회피 방법 안내한다면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제자도 (16) 지혜의 완성 지혜 가르친다면서… 오히려 고난 회피 방법 안내한다면 “기도가 지혜의 시작이라면, 순종은 지혜의 완성이다.” 침묵은 곧 지혜의 시작이다. 그리고, 침묵은 기도이다.” “순종은 영원한 진리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삶의 지혜를 원한다. 지혜가 삶을 더욱 윤택하게, 더욱 풍부하게 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마 이런 지혜에 관련된 서적들도 많이 읽을 것이다. 대표적인 책이 있다면, 탈무드이다. 이뿐인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온갖 지혜를 담은 명언집들이 출간되어 쏟아진다. ‘삶의 지혜’라는 단어를 네이버 같은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보라. 이렇게도 삶의 지혜를 다루는 책이 많은지 놀라게 될 것이다! 많은 책들이 지혜를 다루고 있음에도, 심지어는 ..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제자도 (15) 고난의 학교 /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고난의 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제자도 (15) 고난의 학교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고난의 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고난을 싫어한다. 고난이 온다면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정반대로 고난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에베레스트 산과 같은 높은 산을 등반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산을 등반하다가 때로는 동료를 잃기도 하고, 동상에 걸린 손과 발을 절단하기도 한다. 어느 삶이 더 풍요로울까? 고난을 회피하는 삶일까, 아니면 고난을 찾는 사람들의 삶일까? 이런 점에서 우리 삶의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복음은 말한다. “그리스도는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을 배웠다(히 5:8).” 그리스도인은 주님이 가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제자도 (14) 그리스도의 순종 / 완전하신 주님조차, 세상에서 단 한 가지 배울 것이 있었다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제자도 (14) 그리스도의 순종 완전하신 주님조차, 세상에서 단 한 가지 배울 것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분이시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다시 말해, 그분은 배울 것이 없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는 전지전능한 분께서 배울 것이 있다니! 그분은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웠다. 고난 없는 순종 없다. 순종은 고난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고난도의 진리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떻게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웠는지 생각해 보자. 그가 때가 차서 이 땅에 왔을..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제자도 (13) 고난을 통해 배우기 / 고난의 학교에서 가르치는 단 한 가지 과목, ‘순종’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제자도 (13) 고난을 통해 배우기 고난의 학교에서 가르치는 단 한 가지 과목, ‘순종’ 이 세상에 순수하게 고난당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혹은 고난이 그의 ‘소원’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고난은 소원을 빼앗는 것처럼 보인다.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소원이 있어도, 고난이 닥쳐오면 고난으로 인해 의욕을 상실하고 소원을 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람들은 고난당하기를 싫어한다.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도, 고난당하는 것이 싫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 종교생활을 하는 이유를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기독교든 천주교든 불교든 종교생활의 이유는 분명했다. 평안과 안식은 기본이요, 복을 받기 위해 종교를 갖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