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창우목사 106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33) 고백하기 /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도, 그리스도인인 척 하는 사람들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33) 고백하기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도, 그리스도인인 척 하는 사람들 이번부터는 키에르케고어의 에 실려 있는 일곱 개 강화 중 마지막 강화인 “고난당하는 자가 담대한 확신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능력을 빼앗고, 그 능력으로 능욕을 영광으로, 파멸을 승리로 바꿀 수 있는 기쁨”을 나눌 차례다. 이 강화는 사도행전 5장 41절을 본문으로 하고 있다. “그때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을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겼기 때문에 기뻐하며 공회 앞을 떠났다.” 키에르케고어는 이 구절을 다루면서, 고백에 대하여 심층적으로 고찰한다. 사도들이 핍박을 받던 시절부터, 초대 교회의 믿음의 선조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이 대중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기독교를 고백하는 일은 목숨을..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32) 비교 불가능한 기쁨 / 고난 중에 즐거워할 수 있는 기술, 이 측량 불가능한 기쁨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32) 비교 불가능한 기쁨 고난 중에 즐거워할 수 있는 기술, 이 측량 불가능한 기쁨 ⓒPexels “우리가 겪고 있는 짧고 가벼운 환난이 우리를 위해 측량할 수 없는 영광의 영원한 무게를 얻게 한다(고후 4:17).” 오늘 마지막으로 사도의 이 말씀을 묵상해 보자. 영광의 영원한 무게를 고난과 함께 같은 저울에 달 수 있는가?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절대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영원한 행복은 큰 무게가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의 눈곱만한 부분도 크고 영원한 무게이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저 사도의 말씀에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환란은 일시적인 것이고 이 환난 자체가 짧고 가볍지만 영원한 무게를 얻게 한다. 그러나 그 경우, 영원한 행복은 ..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31) 짧고 가벼운 환난 / 사도 바울은 왜 ‘짧고 가벼운 환난’이라고 했는가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31) 짧고 가벼운 환난 사도 바울은 왜 ‘짧고 가벼운 환난’이라고 했는가 “우리가 겪고 있는 짧고 가벼운 환난이 우리를 위해 측량할 수 없는 영광의 영원한 무게를 얻게 한다(고후 4:17).” 환난이 짧고 가볍다면, 영원한 행복이 지나치게 무겁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래서 한 마디도 말할 필요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짧고 가벼운 환난은 게다가 영광의 크고 영원한 무게를 얻게 하는 바, 확실히 균형을 잡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영광의 이 큰 무게와 비교할 때, 이것은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고 말해야 한다. 가장 참을성이 없는 자도 이것을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고난은 결코 짧고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30) 무게 달기 / 우리는 ‘영원한 행복’ 누릴만한 자격이 있는가?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30) 무게 달기 우리는 ‘영원한 행복’ 누릴만한 자격이 있는가? 양팔 저울로 무게를 달기 위해서는 두 개의 비교 대상이 필요하다. 곧 다른 사람의 성공과 자신의 성공, 다른 사람의 재산과 자기 재산, 다른 사람이 가진 재능과 자신의 재능과 같은 요소들을 비교하며 무게를 달아보는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비교 대상이 잘못되었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일시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의 무게를 달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일시적인 것들의 무게를 달아보기 위해 애쓰는 자들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일시적인 것들과 영원한 것의 무게를 다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본문 말씀을 나누고 이야기를 전개시켜 보자. “우리가 겪고 있는 짧고 가벼운 환..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28) 시간과 영원 / 자유로운 인간만이 지니는 독특한 감정 상태, 염려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28) 시간과 영원 자유로운 인간만이 지니는 독특한 감정 상태, 염려 키에르케고어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시간과 영원의 문제이다. 을 보면, 인간은 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의 종합이다. 하지만 에서는 시간과 영원의 문제를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다만 그의 강화집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시간적인 것, 또는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의 종합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종합할 수 없는 절망적 상태라는 점이다. 데카르트 이후 서양 철학에서 인간에 대한 사고는 긍정적이다. 학생들의 윤리 교과서에서 인간에 대한 규정을 찾아보라. 인간은 “이성적 존재, 도구적 존재, 유희적 존재, 문화적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키에르케고어는 이런 인간의 본질보다 인간을 ..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27) 환난이 길이라고 믿으라! / 기독교의 핵심 진리, “환난 자체가 길”이라는 점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27) 환난이 길이라고 믿으라! 기독교의 핵심 진리, “환난 자체가 길”이라는 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환난의 길을 싫어한다. 환난이 온다는 것은 인생에서 불길한 징조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생각은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이다. 환난이 닥칠 경우, 그 길로 가는 것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아마 함께 하는 사람들조차 환난이 올 때 계속 전진해야 할지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일단 가던 길을 멈추고 기도를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환난이 길인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환난이 제거되면 길이 사라진다. 환난이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환난의 길’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환난의 길은 마치 길과 환난을 분리할 수 있을 것처럼 ..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26) 환난이 길이다! /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환난 ‘제거’하러 오신 분일까?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26) 환난이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환난 ‘제거’하러 오신 분일까? “여러분, 환난을 경험하십니까? 아직도 고난 중에 있습니까? 믿음으로 이기십시오. 주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믿음으로 견딘다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겁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절대적으로 그분을 의지하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의 고난을 제거해주실 겁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이런 설교는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믿는 자들이 더욱 어려움과 고통 중에 그것을 견딜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맞다. 하지만 나는 이런 설교에 반대한다. 이것은 오히려 거짓 위로로 포장된 거짓된 길로 안내하는 지름길일 뿐이다. 한 마디로 결론부터 짓고 출발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곤경, 어려움,..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25) 아이의 능력 / 행동은 없이, 무엇이 옳은지 생각하는 데만 힘 90%를 낭비하는 어른들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25) 아이의 능력 행동은 없이, 무엇이 옳은지 생각하는 데만 힘 90%를 낭비하는 어른들 우리는 보통 환난이 닥치면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때 기도의 내용을 들어보면 대부분 환난에서 구해달라는 것이다. 환난은 우리에게 달갑지 않다. 우리의 앞길을 막는 장애물이기도하고, 때로는 마치 원수처럼 보인다. 우리는 인생의 큰 비전을 세울 수도 있다.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가도, 환난을 만나게 되면 잠시 멈춰야 한다. 왜냐하면 환난은 장애물이고, 장애물을 만났다는 것은 혹시 이 길이 맞는지 생각해 봐야 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주변 사람들부터 충고하기 시작한다. 욥에게 환난이 닥..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24) 만사형통의 개념 / 십자가가 성공 도구? 그리스도의 보혈 빨아먹는 흡혈귀 같은 행동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24) 만사형통의 개념 십자가가 성공 도구? 그리스도의 보혈 빨아먹는 흡혈귀 같은 행동 예수 믿으면 모든 일이 만사형통하는가? 예수 믿는 자들의 가장 큰 착각은 지금은 고난당하고 어려워도 언젠가는 형통하리라는 생각이다. 문제는 이런 ‘형통’의 개념에는 언제나 함께 하는 생각이 있다. “일이 잘 풀리는 것, 그래서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 고통당하지 않는 것”과 같은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찬송가 가사에도 나타난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지금은 고통당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언젠가는 형통한다. 이런 생각으로 성경 속에서 형통이라..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23) 길을 걷는 방법 / 우리의 삶이 생명의 길임을, ‘살아냄’으로써 입증하라

[키에르케고어를 만나다] 고난의 복음 (23) 길을 걷는 방법 우리의 삶이 생명의 길임을, ‘살아냄’으로써 입증하라 우리는 일반적으로 인생을 길로 비유한다. 인간은 태어나서 인생의 여행을 하다 결국 죽음에 이른다. 이런 점에서는 누구나 “인생 길”을 걷는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 따라서 이 길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길이라기보다 영적이고 정신적인 길이다. 이 길은 모든 각 개인들에 의해 시작되고 끝이 난다. 곧, 이 길은 이 길을 걷는 “방법” 혹은 “태도”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길로 비유했을 때, 얼마나 많은 오해가 있었는가!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조상들 역시 이 세상에서 “나그네”임을 증거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이 세상에서 여행자로 살았다. 이 세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