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주간 넷째 날)
예수님의 세족식(요13:1-15)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1. 예수님의 언약 성취로서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시점인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을 발을 씻어주신 의미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은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보내신 새 언약의 중보자요 최종 성취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목전에 두고 베푸시는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순히 예언적인 죽음이라기보다는 언약의 성취자로서의 언약적 죽음이 치러지는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이다. 예수님이 죽으시면 그 피로 자기백성들의 죄 사함이 이루어진다. 예수님이 죽으면 자기백성들이 거룩하고 흠이 없어지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2. 구약 율법 아래서 물로 씻는 모든 규례들의 성취와 완성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인간적인 겸손이나 인간의 윤리 도덕적 차원의 모범적인 사례를 예시하는 사건이 아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들은 구속사적인 이야기다. 단순히 서로 낮아져서 섬기는 자가 되라는 육적 교훈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이미 구약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메시야 예언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결국 예수님의 세족식 교훈은 성경에 기록된 구약 율법 아래서 물로 씻는 모든 규례들의 성취요 완성이다. 나아가 그 모든 것을 배경으로 제자들에게 오직 예수님을 통한 죄 사함과 구원의 진리를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세상 만민의 죄를 씻고, 용서해 주시는 구원의 진리를 증거 하기 위한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노아의 가족이 홍수 심판의 물에서 방주를 통해 살아남은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세례에 비유했다(벧전3:20-21). 사도 바울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사건을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했다(고전10:1-2).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성도의 죄가 씻김 받는 것을 말한다.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을 발 씻는 것으로 말해 주고 계신 계시사건이요, 죄 사함을 보여주는 예표적인 사건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죽어야 할 때인 유월절을 앞두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죽어야 할 그때를 맞추어서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씻겨 주신다는 것은 죄 사함은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이루어 주시는 것이란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죄 씻는 일을 죄인에게 맡기지 않고 예수님에게 맡기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발을 씻기겠다고 하자 책망을 하신 것이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죄 사함의 권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인데 감히? 죄는 내가 너를 사해주는 것이지 네가 나를 사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책망을 하신 것이다. 의인이 죄인을 감당해 주어야지 어떻게 죄인이 의인을 담당 할 수 있느냐고 책망하신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많은 분들이 베드로처럼 세족식 사건을 겸손이나 회개로 이해하고 있다. 잘못된 행동을 고치고 돌이키고 반성하는 성화론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구원은 예수의 피로 받았지만 구원 이후에 살아가면서 짓는 죄는 발을 씻듯이 회개해야 한다고 한다. 이들은 목욕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 받는 것이지만! 발 씻는 것은 성도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짓는 죄들을 회개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 이 사건은 그런 차원의 이야기도 아니다. 성화의 문제는 그 다음에 이루어야 할 문제지 지금의 순서는 아니다.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Unless I wish you, you have no (part) with me) 이것을 번역하면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아무런 몫도(분깃)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곧 예수님의 유산으로 고귀하신 당신의 몸, 당신의 생명을 주신다는 것이다.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눠주신 것이다. 7절에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발 씻김이 남의 발을 씻어주는 선행, 친절 정도였다면 굳이 이렇게 말씀하실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발 씻김은 죄를 씻어줌을 뜻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더,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예수님이 제자의 발을 씻어주심'도 중요하지만, '너희가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예수님이 제자의 발을 씻어주심은 본을 보이신 것이다. '너희가 서로 서로 발을 씻어주라고! (전자보다 후자가 핵심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해석할 때, '예수님이 제자의 발을 씻어주심'에 초점을 두고 해석하는 것 이상으로 '너희가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에 초점을 두고 풀어나가야 한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4~15절) 즉 이 말씀은, 너희가 서로 서로의 죄를 용서해 주라는 것이다! 그래야 그 다음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성찬식이 즉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 진정으로 우리 삶에 은총으로 임한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서로 서로 발 씻김(용서)이 없는 가운데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성찬식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네 발을 씻지 않으면, 너는 아무 상관이 없다. 즉 너는 구원의 분깃을 못 받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을, 발에 묻은 때를 씻어주신 청결이나 예수님의 친절과 겸손에 초점을 두지 말고, '너희가 서로의 발을 씻김으로 서로 용서하는 일을 위해서 내가 본을 보인다!' 즉 내가 너희 형제로서, 너희 발을 씻긴다! 그래서 예수님은 발 씻김과 성만찬을 동시에 하신 것은 십자가에 수평적 화목과 수직적 화목의 의미가 둘 다 들어가 있듯이, 성찬식을 행할 때에도, 아니 우리 평소의 신앙생활에도 수직적 용서와 수평적 용서가 서로 입맞춤 하듯이 하라는 것이다. 그때 '너는 나와 함께 몫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유월절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것은 구약성경의 모든 물로 씻는 사건들을 통해 미리 보여주신 메시야 예언의 성취다. 예님의 세족식 교훈의 목적은 신약시대에 죄인 된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후에도 불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짓는 날마다의 죄를 씻는 회개의 진리를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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