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하나님의 약속 (창 50:22-26)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7. 6. 06:19

해설:

삼십 세에 이집트 총리가 되고 그로부터 십여 년 후에 온 가족을 가나안 땅으로부터 불러들여 고센에 정착하게 한 요셉은 그 후로 육십여 년을 더 살고 백십 세에 세상을 떠납니다(22절). 그는 증손에 고손까지 보는 장수의 축복을 누립니다(23절). 

 

임종이 가까워지자 요셉은 가족들을 불러 모아 유언을 남깁니다. “자기 친족들”(24절)은 직역하면 “자기 형제들”이 됩니다. 유언의 내용으로 볼 때 형들이 아니라 자손들을 불러 모은 것입니다. 요셉은, 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러내어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그 때가 되면 자신의 뼈를 가나안 땅으로 가지고 가라고 명령하고 맹세하게 합니다(25절). 그가 운명하자 자녀들은 이집트 식으로 그의 시신을 미이라로 만들어 보관합니다(26절).  

 

묵상:

요셉의 죽음 이야기로써 창세기의 대단원이 막을 내립니다. 하지만 창세기의 마지막은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합니다. 요셉의 시신이 입관되었지만 아직 하관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장례는 하관이 될 때 끝이 납니다. 이집트 땅에 이주한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언젠가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때가 오기까지 야곱의 자손들은 고센 땅에 머물러 살아야 했습니다. 

 

그 기간이 사백여 년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야곱의 자손들이 하나의 민족으로 충분히 자랄 때까지 그리고 가나안 주민들의 죄의 분량이 심판을 불러올 정도로 차오를 때까지, 하나님은 그들을 이집트 땅에 두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백 여 년 동안 이집트에 살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잊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결국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잊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주체이시고 우리는 객체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이루시는 분이고, 우리는 그 약속의 수혜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약속이 어떤 것인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실 것인지, 누구를 통해 일을 이루실 것인지, 그리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우리는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을 알려 하고, 때로는 알았다고 단정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신실하심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성경의 드라마를 읽는 이유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안다면 그분에게 선한 뜻이 있음을 믿고 하루 하루 그분께 맡기고 살게 됩니다. 때로 시험과 환난이 닥쳐도, 때로 시험과 환난이 길어져도, 때로 속절없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때도, 그분을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살아도 그분 안에 살고 있는 것이며, 죽어서 그분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