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창세기 묵상을 마치며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7. 7. 05:35

창세기의 이야기들은 인류가 왜 지금과 같은 실존 상황에 처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해 말해 줍니다. 인류의 현 실존 상황은 하나님의 선하고 아름다운 창조 질서가 인간의 죄로 인해 깨어졌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 보기에 좋았다”는 후렴구(1장 4절, 10절, 12절, 18절, 21절, 25절, 31절)는 하나님의 원창조가 지복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창조의 정점에서 인간을 창조하시어 위로 하나님을 모시고 아래로 다른 피조물을 보살피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며 살도록 지어 놓으셨습니다. 

인간의 죄는 이 아름다운 질서를 깨뜨려 놓았습니다. 피조 세계의 균형과 조화는 깨어졌고, 인간은 이기심에 사로잡혀 이웃을 도구로 삼으려 했습니다. 인간의 죄성은 세대를 거치면서 점점 악화 됩니다. 기회만 주어지면 인간은 세를 결집하여 신이 되려 했습니다. 인간의 죄악은 마침내 하나님의 전면적인 심판을 불러올 정도로 극한의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홍수 심판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다시 불어난 인류는 절대 왕국을 세워 신으로 행세하려 하거나, 인간을 신으로 세워 그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려 했습니다. 신의 자리에까지 이르려는 인간의 권력욕이 가장 악하게 표출된 것이 바벨탑 사건입니다. 바벨탑은 그 이후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나타났던 절대 왕국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 이후 인류를 흩으신 다음, 하나님은 한 민족을 세워 모든 민족을 구원하려는 계획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데라를 불러 내셨고, 그의 사명은 그의 아들 아브람에게서 이루어집니다. 그 이후로 이어지는 족장들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키워 내시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이주민 소수자로서 가나안 땅에 유랑하며 살아갑니다. 아브라함부터 야곱에 이르기까지 삼 대의 족장들은 가나안 땅에서 삼백 년 가까이 살았지만 아브라함이 묘지터로 사들인 막벨라 굴 외에는 한 뼘의 땅도 소유하지 못한 채, 이집트로 이주합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시작한 삼백 년 유랑의 삶은 이집트 이주라는 이상한 결말로 이어진 것입니다. 

 

족장들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은 자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분이 이끄시는 길은 형통하는 길이 아니라 불통하는 길입니다. 때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행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때로는 너무도 냉담하고 야속하게 행동하십니다. 그러다가도 가끔, 그분은 찾지도 않았는데 찾아 오시고, 구하지도 않았는데 복을 주십니다.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예측하면 어김없이 빗나갑니다. 포기하고 살다 보면 어느 새 곁으로 오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족장들을 다루시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십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완제품 성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주연과 조연으로 등장한 사람들은 모두 함량 미달이었고 약점 투성이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지 백수 년이 되어도 여전히 흠결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믿는다는 것의 최종 목적은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말 장난 같지만, 믿음이 믿음의 목적입니다. 그분의 처사가 아무리 이상하게 보여도 그분에게 선한 계획이 있음을 믿고 그분 안에서 살다가 그분 안에 죽는 것이 믿음입니다. 

 

창세기 1장의 장엄하고 화려한 시작에 비하면, 50장에 나오는 야곱 가족의 이집트 피신과 요셉의 죽음 이야기는 초라한 결말처럼 보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시작하신 선민의 역사가 실패로 돌아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사백여 년이 지난 후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새로운 일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우리의 눈에는 이토록 느리게 보이지만 결국은 그 일을 이루십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제사장의 나라로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만민을 구원하는 계획을 이끌어 나가십니다. 하지만 그 계획도 역시 이스라엘 백성의 고집스러운 죄악으로 인해 좌절되고 맙니다. 선민을 통한 구원 계획은 유다의 멸망과 함께 다시 오백여 년의 공백기에 들어갑니다. 다윗에게서 정점에 이르렀던 화려한 선민의 역사는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것이 깨어지고 하나님이 침묵하는 것 같았던 오백여 년의 공백기 후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예언자들을 통해 예언하신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고 새로운 선민을 세우셔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된 새로운 구원의 역사 안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창세기의 등장 인물들처럼 하나님의 커다란 구원의 계획을 믿고 매일 그분의 신실하심을 의지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를 힘씁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이 구원 계획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완성의 날을 요한에게 환상을 통해 계시하셨습니다.

 

창세기의 이야기는 이후로 이어지는 64권을 관통하여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 완결됩니다. 이것이 성서의 가장 큰 신비 중 하나입니다. 구약성서는 유대인들에 의해 쓰여지고 집대성 된 것이고, 후에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신약성서가 쓰여지고 형성되었습니다. 고대 교회는 유대인들이 경전으로 인정한 39권의 책들과 신약 27권을 묶어서 성경전서로 묶었습니다. 수 세기에 걸쳐 여러 시대에 속한 다양한 사람들이 쓴 책을 한 권으로 묶었는데, 창세기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요한계시록에서 완결된 것입니다. 66권의 성경 전서가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담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처음 네 장과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다섯 장은 완벽한 교차대칭구조를 이룹니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이 글을 쓸 때 자주 사용했던 문학기법인데, 성경전서 전체의 저자인 성령께서 그렇게 구성하고 완결한 것입니다.   

 

원창조                                                 창세기 1-2장

원창조의 타락                           창세기 3-4장

타락과 구원의 드라마         

타락한 세상에 대한 심판            요한계시록 18-20장

원창조의 회복                                      요한계시록 21-2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