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그는 살아나셨다(35)(막16:8)

새벽지기1 2024. 4. 25. 06:40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막16:8)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예수의 부활에 관한 마가복음의 보도는(막 16:1-8) 아주 간단하고 짧습니다. 세 명의 여성들이 무덤에서 천사를 만났다는 이야기뿐입니다. 거기에 어떤 교훈도 없고 결론도 없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이 부활 보도가 약간 확대되었습니다. 복음서의 구성으로만 본다면 복음서 기자들이 부활을 소홀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왜 그럴까요?

 

복음서 기자가 예수 부활을 소홀하게 언급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건 아닙니다. 부활 사건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종말에 가서야 확연하게 드러날 궁극적인 생명 사건을 그들이 무슨 수로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이 부활 경험 앞에서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는 건 아주 당연합니다. 그것이 오히려 부활 경험의 진정성을 보여줍니다.

 

오늘 예수 부활을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행하신 역사적 사건이라고 믿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책무는 무엇일까요? 여기에 딱 떨어지는 대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신앙적 관점에 따라서 다른 대답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관점에서 대답을 찾는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죽음을 넘어서 궁극적인 생명과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을 보편적 생명의 지평에서 역사적으로 해명해야 한다는 것이 그 대답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진리론적으로 씨름해야 할 대상은 많습니다. 생명, 현실성, 역사, 시간, 종말, 존재, 언어 등등의 개념들이 그것입니다.

 

종말에 우리는 그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생명의 세계로 들어갈 것입니다. 기존의 모든 경험들은 하늘이 종이두루마리처럼 말리듯이 폐기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립니다. 새로운 생명의 세계로 돌입하는 국면(카이로스)에서 예수의 부활은 열쇄말로 작용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