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그는 살아나셨다(31)(막16:6)

새벽지기1 2024. 4. 24. 07:02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16:6)

 

기독교 신앙은 “예수가 살아나셨다.”는 명제에 모든 것을 걸어두고 있습니다. 이게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도박과 같습니다. 이것이 옳다면 기독교가 진리라는 사실이 확인될 테지만, 그것이 인정받지 못하면 기독교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립니다. 부활이 아니라 도덕성과 정신수양을 신앙의 근거로 삼았다면 위험성은 훨씬 줄어듭니다. 도덕성과 정신수양은 보편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거니까요. 초기 기독교는 오히려 위험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아니 그걸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 아니면 기독교가 존재할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요.

 

예수 부활은 무조건 증명이 불가능한 사건일까요? 앞에서 한번 짚은 대로 예수 부활은 공공의 장소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며, 부활 장면을 직접 목도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예수 부활이 경험되었습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예수 부활을 확실한 사건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일까요? 부활을 경험한 사람보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확실하지 못한 것일까요? 궁극적인 진리조차도 다수결로 결정되어야만 할까요?

 

아닙니다. 진리는 존재론적인 사건입니다. 진리는 계시 사건입니다. 진리는 스스로 드러날 뿐이지 도구로 다뤄지지 않습니다. 예수 부활은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생명 사건입니다. 그것을 경험한 초기 기독교인들도 그 사건 앞에서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눈을 뜨면서 모든 것이 확연하게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거라고 말입니다. 지금의 생명 형식이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생명 형식이 시작될 종말에 그 부활의 실체가 드러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