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죄를 이기는 힘 (창 4:1-16)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4. 17. 06:06

해설:

1-3장과 4장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습니다. 1-3장은 현재 인간이 처해 있는 실존 상황에 이르게 된 과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고, 4장 이하에서는 타락 이후에 인간의 현실존이 확정된 이후에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창세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1-3장의 이야기는 현실도 아니고 비현실도 아닌, 신비적인 분위기로 장면을 연출하고, 4장부터는 현실적인 분위기로 연출해야 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가인과 아벨, 두 아들이 태어납니다. 후에 보면, 둘 사이에는 더 많은 자녀들이 생겼습니다. 구백삽십 년을 산 아담은 백서른세 살에 첫 아들을 낳고 나서 팔백 년 동안 아들딸을 낳았습니다(5:3-5). 가인과 아벨은 처음 태어난 자녀들입니다. 그들은 자라서 가인은 농사를 지었고, 아벨은 양들을 쳤습니다(1-2절). 그들은 각자 자신이 노동하여 얻은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십니다(4-5절). 7절에 의하면 가인의 제사가 올바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물에 문제가 있었는지, 제사를 드리는 그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동생의 제물은 받아 들여진 반면 자신의 제물은 받아들여지지 않자 가인은 하나님에게 분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잘못은 당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지 않은 제물을 드린 그 자신에게 있음을 밝히면서, 그 분노가 죄로 흐르지 않도록 하라고 경고합니다(6-7절).

 

불행하게도, 가인은 하나님의 경고를 가볍게 여깁니다. 그는 분노에 압도되어 동생을 돌로 쳐죽이고 숨어 버립니다(8절).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자(9절), 가인은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반문합니다. 그는 형으로서 아우에게 가져야 할 마땅한 의무와 책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의 죄를 꾸짖으시면서 그가 그 죄로 인해 무거운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0-12절). 그제서야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죄를 지었는지를 자각한 가인은 하나님께 자비를 호소합니다(13-14절).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누구를 만나든지 가인을 해치지 못하게 하십니다(15절). 가인은 주님의 낯을 피하여 에덴의 동쪽에 있는 놋 땅으로 이주합니다(16절). 이 대목에서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14절) 혹은 “가인을 죽이는 자는”(15절)이라는 표현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지구 상에는 아담과 하와 그리고 가인 밖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의 자녀들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미래를 두고 하신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묵상: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하신 말씀 즉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 하려고 한다.”(7절)는 말씀이 마음에 큰 울림을 줍니다. 죄 자체는 인격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죄를 인격적인 존재로 경험합니다. 사탄이 우리 마음을 교란시켜 죄를 탐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우리의 존재는 죄 성에 깊이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죄가 우리의 ‘존재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언제라도 들어와 사로 잡으려는 것과 같은 형국입니다. 사탄은 그것을 고리로 삼아 우리를 죄로 이끕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경계 하면서 죄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조심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죄를 도구로 하여 우리를 집어 삼키려는 사탄의 공격을 우리 홀로 당해 낼 수 없습니다. 자연인으로서의 우리는 죄의 공격에 너무도 무력하게 넘어집니다. 우리의 존재를 성령께 내어 드려 그분의 능력에 사로 잡히지 않으면 우리는 죄를 이길 수도 없고 죄 성을 치료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주기도’를 통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악’은 중성 명사로 번역할 수도 있고 남성 명사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신약학자들의 다수는 남성 명사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다만 악한 자에게서 구하여 주십시오”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만일 이 명사가 복수로 사용되었다면 “악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수 명사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그 악한 자”는 바로 사탄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가 말한 “영적 싸움”입니다. 사탄의 교란에 넘어가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죄의 유혹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의 영력을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존재의 문지방에 죄가 늘 도사리고 있음을 의식하고 늘 성령께 의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