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묵상

새 백성의 삶의 규범 (신 19:1-21)

새벽지기1 2024. 4. 3. 05:10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말씀합니다. 모세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에서 새 백성의 삶의 규범을 말씀합니다.

우선 6개의 도피성을 말씀합니다. 부지중에 살인한 자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뜻하지 않는 실수를 합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용납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도피성을 통하여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진정시킵니다. 가해자는 목숨을 구할 수 있지만 고향집을 떠나야 합니다. 그것으로 생명을 구합니다. 물론 그해 대제상이 죽으면 도피성을 떠날 수 있습니다. 피해자는 자신의 동네에서 가해자를 볼 수 없음으로 시간이 주는 치료를 받습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복수로 인하여 무너지지 않게 합니다.

또한 계획적 살인에 대하여 반드시 징계하심으로 공의를 세우십니다. 도피성에 온다 하더라도 불의함이 드러나면 심판을 받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공동체의 정의를 세웁니다. 공의를 훼손하는 것은 공동체의 큰 해악이 됩니다.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공의를 나타냅니다. 죄인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됩니다. 대 제사장의 죽음으로 해방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자유를 얻습니다. 그러나 회개없는 죄인의 심판은 공의롭게 선고됩니다.

세번째, 조상들이 물려준 땅의 지계표를 옮기지 말아야 합니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토지는 삶의 기본입니다. 인류의 전쟁과 탐욕의 역사는 토지소유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희년을 통하여 본래의 주인에게 돌아가게 하여서 평화를 유지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새백성의 삶의 규범입니다.

네번째, 모든 죄의 판결은 두 세 증인의 입으로 확정해야 합니다. 일방적인 말로 판결하면 안 됩니다. 현대도 대법 판결이 날 때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습니다. 서로 재판장 앞에서 자신의 문제를 토론하고 결정받아야 합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여론 재판처럼 사악한 것이 없습니다. 경찰, 검찰, 판사와 같은 권력을 가진 집단들은 정말 두렵고 떨림으로 공의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죄가 확정되면 확실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정의입니다. 물론 이 땅에서는 완벽한 법이 시행될 수 없습니다. 마지막 하나님 앞에서 최후의 심판이 있을 때 모든 진실이 드러날 것입니다. 물론 그전에 역사적 심판이 앞서서 이뤄지기도 합니다.

새 백성의 삶의 규범은 하나님 나라가 어떠한지를 보여줍니다. 사랑과 궁휼과 공의와 평화가 충만한 나라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 나라를 상속받았습니다.

오늘도 새 백성의 삶의 규범을 다시한번 묵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합당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