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

공의의 십자가가 사랑을 선물하다.

새벽지기1 2023. 4. 22. 06:01

공의의 십자가가 사랑을 선물하다.

 

인류의 문제는 죄에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죄는 단지 의의 결핍이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반대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반역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행위가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이 있어야 할 자리를 빼앗고 자신이 그 자리에 앉고자 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죄는 반드시 죽음에 이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인은 누구나 다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아담이 범죄 한 이후로 모든 사람은 다 죽음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맺은 언약은 인류의 대표로서 맺은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범죄 하여 언약을 깨뜨린 것은 곧 아담의 모든 후손이 깨뜨린 것과 같습니다. 언약은 하나님 백성 되기를 작정한 것인데 하나님 백성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반역하였고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류를 다시 창조하지 않으시고 죽음에서 살리시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언약에 매이심으로 언약을 지키기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반역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이 죄값을 감당하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공의하시기에 죄에 대하여 반드시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누구도 죄의 대가를 치를 수 없습니다. 죄인이 죄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사람이 되셨습니다. 대신 속죄하는 방법은 죄 없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서 어린양으로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어 죽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을 구원하시고 다시금 자기 백성 삼겠다는 훈련을 구약시대 내내 시키셨습니다. 대 제사장들이 어린양을 대신 잡고 백성의 죄를 용서하는 속죄제를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는 모두 그림자였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오셨고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증거대로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들의 손에 의하여 어린양으로 속죄제물이 되었습니다. 인류를 위한 대신 속죄를 감당하였습니다.

 

십자가는 철저한 공의의 현장입니다. 죄에 대한 공의가 없이는 인류의 구원은 없습니다. 십자가는 인류에게 사랑을 베풀어준 공의의 증거입니다. 십자가의 공의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길이 십자가의 공의입니다. 공의가 시행되고 사랑이 베풀어집니다. 공의가 없는 사랑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공의로만 끝나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공의와 사랑이 바로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공의의 십자가가 사랑을 선물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공의가 베풀어준 사랑을 덧입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공의를 행하며,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공의와 정의에 대한 인식을 잘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인식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삶은 인간의 어떤 행위로도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가 임하면 의의 삶을 감당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공의와 정의의 삶을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사랑이 신앙의 핵심인 것은 분명합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이 살아가야 할 삶의 규범으로 명백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사랑은 공의가 기반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악인의 행위에 대하여 무조건 사랑한다고 감싸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어제 한 정치인의 아들이 집에서 마약을 하였는데 그 가족이 신고하였습니다. 이미 마약 전과로 집행유예를 살았습니다. 그런데 또 마약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결정이겠습니까? 이 가족은 신고를 하였습니다. 가족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인데 신고하였습니다. 삭막한 가족입니까? 아닙니다. 이 결정은 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결정입니다. 자식을 살리려는 행동으로 보았습니다.

 

공의가 없는 무조건적 용서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벌을 받아야 하고 용서는 마음으로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 밀양에 나오는 우스운 기독교가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아가페는 공의를 기반한 선물입니다. 십자가가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공의의 십자가가 사랑을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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