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정진규 시인의 시 「서서 자는 말」을 하나님께 드리며
‘넘어져도 주님이 손잡아 주십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서서 자는 말
내 아들은 유도를 배우고 있다 / 이태 동안 넘어지는 것만 배웠다고 했다 /
낙법만 배웠다고 했다 / 넘어지는 것을 배우다니!/
네가 넘어지는 것을 배우는 동안 /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 기를 쓰고 살았다 / 한번 넘어지면 그뿐 / 일어설 수 없다고 / 세상이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 잠들어도 눕지 못했다 / 나는 서서 자는 말 /
아들아 아들아 부끄럽다 / 흐르는 물은 / 벼랑에서도 뛰어내린다 /
밤마다 꿈을 꾸지만 / 애비는 서서 자는 말 /
절대로 부부싸움을 안 하는 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결혼하지 않으면 됩니다.
배가 파도를 만나지 않는 법이 있습니다.
바다로 안 나가고 항구에 계속 정박해 있으면 됩니다.
인생에서 실패하지 않는 비결이 있습니다.
죽어버리면 됩니다.
조화(造花)는 벌레 먹거나 강한 햇볕에 상처를 입은 모습이 하나도 없이 완벽합니다.
그러나 생화(生花)는 늘 상처 입은 몸 조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넘어지고 실패하고 상처 입는 것들의 연속입니다.
문제는 다시 일어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시인의 아들이 유도를 배우고 있습니다.
업어치기, 허리후리기, 빗당겨치기, 허벅다리후리기 등을 배우는 줄 알았는데, 이게 왠일입니까? “이태 동안 넘어지는 것만 배웠다”고 합니다. 낙법(落法)만 배웠다는 것입니다.
시인 아버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은 이제껏 넘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살았는데, 넘어지는 법을 배우다니!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험한 세상을 살면서 “한 번 넘어지면 그뿐 / 일어설 수 없다고” 느껴왔고,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그러기에 절대로 넘어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시인에게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진 아버지는, 잘 때도 눕지 못하는, ‘서서 자는 말’입니다.
마치 맹수가 나타났을 때, 어서 피해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서서 잠을 자는 얼룩말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살아온 아비는 둥글게 구르는 낙법을 배우는 아들을 보고 부끄러웠습니다.
넘어질 수도 있지, 다시 일어나면 그만이지! 하는 베짱을 가지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큰 벽이었고, 자신은 너무 작은 존재였기에 그러합니다.
그런 우리들의 아버지를 이해합니다. 사랑합니다. 응원합니다.
주저앉으면 마침표이고, 다시 일어서면 쉼표이고 느낌표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일곱 번 넘어져도 하나님의 은혜로 일어나는 존재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일곱 번이나 넘어진 사람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이솝우화》 의 “양치기 소년”이야기를 보십시오.
사람의 인내는 세 번을 넘기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곱 번이라도, 아니 일흔 번이라도 다시 일으켜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아버지, 또한 누군가의 아버지인 우리들은 서서 자지 않고,
주님의 품 안에서 편히 누워 잠을 잘 수 있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잠24:16)
'좋은 말씀 > -인문학을 하나님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리드 자카리아 : 하버드 학생들은 더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 / '하나님은 창의력의 원천입니다' (0) | 2021.12.27 |
---|---|
수잔 뉴먼 : 거절의 미학 / '아름다운 거절이 나와 이웃을 살립니다' (0) | 2021.12.26 |
조셉 텔루슈킨 : 힘이 되는 말 독이 되는 말 / '살리는 말로 살리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0) | 2021.12.23 |
정승철 : 방언의 발견 /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여주는 하늘 나라의 대사(大使)입니다.' (0) | 2021.12.22 |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셀 루트번스타인의 공저(共著) : "생각의 탄생" / '만물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십시오' (0) | 2021.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