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기독교개혁신보컬럼

뒤로 호박씨 / 이은상 목사(동락교회)

새벽지기1 2020. 10. 8. 06:30

 

2002년 2월 6일

 

 

“착한 척, 깨끗한 척 혼자 다 하더니 뒤로 호박씨 까고 있네.”


다소곳하고 참한 이미지 때문에 온 국민의 아씨로 사랑 받아왔던 한 연예인이 마약복용 사실이 세상에 알려짐으로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최근 방송매체와 잡지에서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운운하며 신앙을 표현해왔던 메가톤급 크리스찬 연예인이 ‘병역기피를 위한 시민권 논란’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습니다.

물론 연예인 사건이 거룩한 성도들의 모임까지 오르내리락 해서는 안되겠지만 ‘사단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다’는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고 본다면 연예인이나 야만인이나 다 우리가 복음에 빚진 자로서 사건을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의 결점을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 만족으로써가 아닌 자기 자신 속에 감춰져 있는 죄의 깨우침의 도구로 살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이 사건에 대한 크리스찬의 해석도 구구합니다. 면도날로 아픈 살을 도려내는 듯한 비난의 소리도 높고 그런가하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감싸 도는 외침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은 ‘이미지와 실체와의 간격’이라는 것입니다. 마약사건은 여느 연예인들의 스캔들과 달리 그 자매의 지고지순한 이미지 때문에 사람들을 더욱 깊은 배신감에 빠지게 했고 한 크리스챤 연예인의 시민권 문제가 병역기피문제로까지 이슈화된 것은 그 형제가 그동안 보여줬던 모범적이며 두터운 신앙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삶에 있어서 이렇게 이미지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학력보다 면접시험을 더 중요시 여기는 요즈음 실제로 뼈를 깎아 내는 아픔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미지와 실체와의 ‘같음’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앞과 뒤, 겉과 속, 처음과 나중이 다를 때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나 봅니다. 가령 연예시절 종과 다름없던 그이가 결혼 후에는 폭군으로 군림하는 모습, 맞선 볼 땐 공주처럼 청순하고 요조숙녀였던 그녀가 어느날 큰 입을 열고 하품할 때 느끼는 감정처럼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진실의 수치는 이미지와 실체사이에 존재하는 직선의 크기로 표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지와 실체의 간격이 크면 클수록 정직은 떨어지고 배신감은 상승한다는 것입니다. 연예인들은 원래 직업이 이미지 가지고 사는 자들이고 세상 사람들은 원래 속이는 자(사단)들의 수하에 있어서 이미지와 실체의 간격이 큰 것을 이해할 만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이 간격의 크기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예수님 당시 교만과 세속과 폭력을 종교라는 허울로 가장했던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종교생활로 백성들의 우상적인 존재였고 심지어 두 사람이 천국에 가면 한 사람은 바리새인일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뒤로 호박씨’ 같은 사람들의 본색을 들추어내시며 꾸짖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겉과 속은 얼마만큼의 간격을 두고 살아가십니까? 강단에서 설교는 잘하지만 실상 밖에서는 상식도 갖추진 못한 설교자,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하지만 그 입으로 세속을 마셔대고, 종의 도를 외치면서도 화려한 의. 식. 주. 교회. 허울좋은 세력들을 좇아가는 우리들이 아닌지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구약의 이미지대로 신약의 실체를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도 헛된 이미지에 속임을 당하지 않도록, 세상의 허세에 자신들의 눈이 흐려지지 않도록 시선을 말씀에 고정해야 합니다. 또한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지만 손은 에서의 손이 되지 않도록 신자로서의 이미지와 실체의 간격을 좁혀야할 것입니다. 차가 밀리는 도로에서 앞차와의 간격을 조금도 내주지 않으려는 그 욕심으로 이미지와 실체의 간격사이에 아무것도 들어서지 않도록 힘써 봅시다. 그것이 곧 경건의 능력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