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낮은 곳에서 부르는 생명의 노래'

개판 오 분전

새벽지기1 2020. 2. 15. 07:20


개판 오 분전


개판 오 분 전, 아수라장(阿修羅), 난장판(亂場板), 야단법석(野壇法席) 등등

이런 언어들은 하나같이 나름의 의미와 유래를 지닌 말들이다.
6.25 전쟁이 발발한 지 거의 70년에 가까운 날이 되었다.

그동안 6.25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의 작품 수 또한 상당히 쌓여가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수많은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종말이 다가올수록 전쟁의 범위는 더 넓어지고 그 피해도 더해질 것을 성경은 예언하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성경은 전쟁도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임을 분명히 알려준다.


이스라엘은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의 원주민을 모조리 진멸하라 하셨지만

그들은 힘이 미치지 못하여 온전히 몰아내지 못하여 구석구석에는 여전히 아모리인들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아모리인들을 모조리 진멸시키지 못하고 남겨두도록 하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다.

“남겨두신 이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삿3:4)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전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아직 휴전의 상태로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현존하는 우리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개입과 간섭하시는 깊은 뜻을 알고 물으며

남북 분단의 아픔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고통과 고난이 읽혀지는 영적 전쟁사의 안목을 키워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참에 평소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알고 있는 지식들 중에 잘못 알고 오해되고 있는 것 중에

6.25와 관련한 상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개판 오 분 전”이라는 것에 대한 유래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개판 오 분 전의 유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흔히 무질서하거나 난장판이 되었을 때 “개판 오 분 전”라고 한다.

즉, 개들이 한데모여 난장판을 이루는 모양새가 되기 일보직전이란 소리다.

그러나 ‘개판’은 개(犬)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물론 개들이 설치면 난장판이 되지만 사실 개와는 조금도 관련이 없는 말이다.


이 말의 뿌리, 즉 유래는 우리의 아픈 상처인 6.25전쟁에 닿아있다.

6.25 당시 각지에서 피란민들이 낙동강 아래로 피난하여 부산으로 몰려왔다.

쩡한 날에도 밥을 굶기가 일쑤인데 전쟁 통이니 오죽했겠는가?

그래서 굶주린 이들을 위해 무료 배식을 하곤 했는데 시계를 가진 사람들이 거의 없던 때라

배식하는 사람들이 다 되어가는 밥을 나눠주기 전에 뚜껑을 열기 5분 전에 “개판(開鈑) 오 분 전”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러면 배고파 굶주린 피난민들은 밥을 배급받아 먹기 위해 몰려들면서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한다.


이 땅에 또 다시 전쟁으로 인한 개판 오 분 전과 같은 상황이 재현되어서는 결코, 결코 안 될 일이다.

요즘 우리 정치행태를 보면 밥이 익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솥뚜껑부터 열어 보자고 덤벼드는 모양새다.

정부와 국가가 추진하는 사업과 정책들은 아직 과정에 불과한데도 성급한 결과를 유추해
정치적 공세로 양극화 현상이 점입가경이다.

하나님의 질서가 깨진 곳에는 진짜 개(犬)판 오 분전이 재현 될 수 밖에 없는

끔찍한 전쟁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누군가 “전쟁은 죽은자에게만 끝난다”고 했다.

오늘도 이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현실 앞에

더 이상의 끔찍한 아비규환이 사라지기를 우리 모두 염원하자.

천하보다 귀한 진정한 생명의 고귀함과 인류애의 사랑과 관심이 아직은 더 많이

“개판 오분 전”의 희망찬 소리가 멀리 멀리 울려 퍼지기를 소망해 본다.